월간 문익환_8월 <옥중의 늦봄>

🈷️ 늦봄과 재소자

“청의(靑衣) 동포, 그들의 기도는 나의 기도가 되었다”



늦봄은 재소자들을 청의(靑衣) 동포라고 지칭했다. 열악한 환경을 감내하며 생활하는 똑같은 처지에 있었으니 동포라 부른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온갖 범죄를 저지른 재소자들을 통해 예수의 세계를 다시 보았고 믿음의 본질, 인생의 본질을 깨쳤다는 늦봄의 말을 접하다 보면, ‘동포’라는 말 속에는 같은 처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늦봄의 옥중 편지 속에 나타난 청의 동포, 재소자들을 향한 생각들을 따라가 보았다
 

▲ 자신의 모든 권리를 불행한 사람들에게 
첫 번째 수감 중 늦봄은 불행한 재소자들과 같은 입장을 딛고 서려는, 목회자다운 결심을 보였다.
 
어머니, 저는 지금 제 몸에 대한 권리 주장을 깨끗이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는 불행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제 생의 모든 권리를 이 불행한 사람들 손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도 저를 당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애를 태우지 마십시오. (옥중편지 1978. 12. 17)


▲ 전과자들을 도울 구체적 방안, ‘교육’
부모님의 결혼 70주년을 계기로 장학회 설립을 실행해 보겠다고 생각한 늦봄은, 일꾼 즉 교육가를 기르는 일이 중요하되 교육의 대상으로서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전과자들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요새는 이들이 새사람이 되어 주어야 이 사회가 밑바닥에서부터 새로워진다고 생각을 하면서 푹푹 썩어 냄새나는 바로 밑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새살이 바로 새로워진 전과자들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옥중편지 1981. 5. 6)

늦봄은, 전과자들을 도와서 그들이 일어서서 걷게 해주는 것은 그들 자신이기에, 이를 위해 전과자 중에서 작가, 교육가, 목사,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므로 우리(늦봄 가족)가 먼저 관심을 보이자고 권유하면서 한국의 교회도 이 일에 눈을 떠 준다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 그들의 어두움 속으로 뚫고 들어가야 
늦봄은 감옥 생활 하나하나를 재소자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했다. 자신이 성경을 읽는 것도, 기도하는 마음의 열도(뜨거운 정도)도 재소자들의 가슴과 마음에 다가가는 수준이 되지 못함을 자책하기도 했다.
 
지금 밖에는 순화 교육을 받느라고 남녀 재소자들의 구호 소리, 노랫소리들이 요란히 들리고 있습니다. 바로 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옥중편지 1981. 9. 17)
 
마음이란 나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을 만날 때 불타는 건데, 저 외롭고 서러운 재소자들을 보면서도 마음의 열도를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하느님 앞에서 안타까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소. 그들의 어두움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안타까움, … (옥중편지 1981. 12. 13)


▲ 지역교도소마다 전임의사 한 사람씩 배치를 
90년 1월 가족들의 농성에 힘입어 서울대병원에서 9일간 신병 치료를 마치고 교도소로 복귀한 늦봄은, 자신의 외부 진료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갈등이 재소자 진료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 관심사로 제기할 기회가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재소자의 진료 문제를 내 몸의 문제처럼 받아들여 그 문제의 해결을 내 생의 또 하나 커다란 과업으로 안고 살아가게 되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구 (옥중편지 1990. 1. 24)
 
◇서울의대 학생회 건물에 ‘병환 중인 문익환 목사는 즉각 석방되어야 한다’고 쓰여있는 모습


또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교계가 나서줄 것을 호소하며, NCC 박종기 신부에게 편지를 써서(2월) 지역교도소에 전임의사 한 사람씩 배치하자는 구체적 방법을 제안했다. 
 
전과자들의 세계에서도 가장 밑바닥이 교도소의 병동입니다. … 시설이 원시적이라고 할 정도도 안 됩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뻗어오는 따뜻한 손길이 여기만큼 절실한 데가 어디에 있을까요? (옥중편지 1990. 2. 5)


▲ 전과자들의 갱생에 전 사회가 달라붙어야 
안동교도소에 수감된 늦봄은, 재소자들의 평균 연령이 서른 살 안팎 정도이며 이들의 교육 수준은 이전 재소자들보다 엄청나게 높아졌다는 것을 인지한 후, 전과자들의 갱생 문제에 전 사회가 심각하게 달라붙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전과자들의 갱생 문제에 여생을 몽땅 바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더 큰 보람을 얻을 텐데. (옥중편지 1991. 10. 7)


▲ 그들의 기도는 나의 기도가 되고 
독방 수감으로 재소자들과 직접 대화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던 늦봄은 재소자들의 눈길을 통해 그들의 정직함을 알았다. 아침마다 방 앞을 지나며 ‘건강하세요’ ‘오늘 잘하세요’ 등으로 짧게 인사할 때 마주치는 눈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창구’였다.
 
21일 단식을 끝낸 후 운동장에서 야윈 몸으로 거닐다가 내 목덜미에 쏟아지는 눈길을 따갑게 느껴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청의 동포들이 창가에 나와서 나에게 뜨거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죠. 그 눈길에서 ‘와락와락 먹고 어서 빨리 회복해 달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거든요. 스무하루 단식이 나 자신을 위한 단식이 아니라 올바른 나라,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바라서 한 단식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그 눈길들은 말하고 있었어요. (옥중편지 1992. 3. 11)

늦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걸 기대하는 마음’의 눈길을 느꼈다. 온갖 파렴치범 ·흉악범들에게서 날아오던 바로 그 눈길이 ‘자신의 시각을 철저하게 민중 시각으로 뒤바꾸어’ 놓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들의 시각은 나의 시각이 되면서, 그들을 위한 기도가 그들과 함께 드리는 기도가 되더니, 드디어 그들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는 데까지 이르렀죠. (옥중편지 1992. 3. 11)


▲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기도함
 
(교도소에) 들어올 때의 파리한 얼굴과 (한 달이라도 세 번 끼니를 챙겨 먹어서) 살이 올라 불그레한 핏기 도는 두 얼굴이 눈앞을 스치는 걸 감은 눈으로 보다가 무릎을 탁 쳤지요. “아! 그렇구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중심에 있는 ‘일용할 양식’을 비는 기도는 쟤들의 기도구나.” 번개처럼 스치는 이 깨달음은 나를 처음 예수의 세계로 인도하였어요. (옥중편지 1992. 3. 17)

교도소 밖에서 일용할 양식은 재소자들에게 매우 절박한 문제였다. 이를 깨달은 늦봄! 그때까지 잠시 겉돌았던 일용할 양식을 비는 기도는 다시 절박한 기도로 변했다. 이때부터는 ‘나의’ 일용할 양식이 아닌 ‘우리의’ 일용할 양식으로, 즉 사회 정의를 비는 기도가 되었다. 

늦봄은 일용할 양식, 곧 생존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새 정치’에 있다고 보았다. 먹고살기 바쁜 갈릴리 민중이 예수에게 열광했던 바로 그것이 하늘나라의 새 정치였다. 하늘나라 새 정치의 기둥은 사회정의였고, 그것은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필요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늦봄은, ‘오늘 여기서’ 새 정치는 구체적으로 민주화 운동이요, 민족통일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재소자들에 관한 늦봄의 생각들과 깨달음을 따라가다 보면, 0.5평의 작은 방에서 10년 넘는 수감생활을 한 늦봄에게 재소자들이라는 존재는 그의 복음과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화운동도 통일운동도 저 얼굴들에서 웃음을 앗아 간 검은 손을 물리치고, 웃음을 저 얼굴들에 돌려주는 일에서 시작되어 그 일로 끝나야 하는 거구나. 복음의 실천은 바로 그 일이구나." (문익환, 1999)


<글: 조만석>
언제든, 누구와 함께든, 사람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든, 걷기를 즐겨 합니다.





[참고문헌]
문익환 옥중편지
문익환 (1999). 「감옥에서 깨달은 생명에 대한 외경」(한겨레신문 1993. 9. 1) 『문익환 전집 6권』 수필.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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