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12월 <통일꾼 늦봄>

🈷️ 어록으로 본 늦봄의 통일론

“통일은 곧 민주다”


    
◇ 통일은 머지않았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문익환 목사
 
 

평화운동이자 생명사랑 운동

▲통일운동은 신앙운동이다
 
나의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 운동은 정치 운동에 멎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전 존재를 투입한 신앙 운동이요, 기독교의 화해의 복음, 평화의 복음의 실천이다. (옥중편지 1990.1.9)
 
문익환 목사에게 통일 운동은 최고의 가치인 평화 운동, 곧 생명 사랑 운동이었다. 자신의 전 존재를 투입한 신앙 운동이요, 기독교의 화해와 복음, 평화의 복음의 실천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일이 생명을 사랑하는 일, 곧 평화운동이며 이는 모든 종교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생명을 죽이는 전쟁을 막는 것으로 시작하여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통일 운동에 헌신하였다.

문익환은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발해, 고구려의 넋이 곳곳마다 스며있는 그곳의 역사를 잃어 버리는 것도 안타까운데 국경을 또다시 휴전선으로 끌어내리고 이것을 조국이라고 생각해 국토 수호에 열을 올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전쟁 중 휴전의 현장을 통역하던 늦봄은 2022년 현재까지 분단 상황이 지속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화도 통일 없이는 안 돼

▲통일과 민주는 하나다
 
“통일이 우리가 실현해야 할 구체적인 민주 과업이라면 그것을 이루어가는 절차도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 이것은 통일도 다른 모든 일과 같이 민 주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고이유서」, 전집5권 236쪽)
 
“저의 온몸을 철퇴와 같은 무게로 강타하는 충격이 거듭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젊은 학도들과 노동자들의 분신·할복·투신 자살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40여 년에 걸친 분단,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분단,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가는 분단의 장벽, 깊어만 가는 불신의 심연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민족의 제단에 초개처럼 버리는 걸 보면서, 이 젊은이들의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라도 나라는 사람이 무언가 이 장벽을 깨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휘말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상고이유서」, 전집5권 94쪽)
 
일제 강점기를 지나 맞이한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분단을 안겨 주었으며, 분단 상황은 독재의 구실이 되어 인권은 짓밟히고 자유와 평등을 갈구하는 많은 이들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리하여 분단은 독재와 함께 민족 비극의 근원이 되었다. 인권의 문제도 민주화의 문제도 결국은 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궁극적인 해결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은 한 운동의 두 면이라고 보았다. 민주만이 갈라진 겨레를 하나로 통일해 가는 힘이요,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였다. 분단의 극복은 민족적 과제가 되었다.
 
 

관 주도 통일운동은 불통일운동

▲관 주도가 아닌 민 주도로
 
“이것은 결코 관을 밀어내자는 말이 아닙니다. 관은 어디까지나 민의 뜻을 받아 민과 함께 민을 앞세우고 민에 밀리면서 통일의 문을 향해 걸어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민을 배제하고 관이 독점한 관 주도 하의 통일 운동이 불통일운동이었다는 것을 지난 45년의 민족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고이유서」, 전집5권 236쪽) 
 
통일 논의가 관 주도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민의 대표(정확하게는 전민련의 대표)로서 방북을 결행하였다. 또한 분단 상황에서 자유와 평화를 향한 민주화 운동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분단의 극복은 시급한 상황이었다. “남한 민중의 입장을 바탕으로 하고 동시에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향에서 남북관계의 기본틀을 처음으로 제시하여 4.2 공동성명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 4.2 공동성명(1989)은 기본적으로 남한의 정치사회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전면에 나서서 만들어낸 합의문이며 이후 6.15 공동선언(2000)의 기초가 되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길 찾아왔다”

▲중립성의 원칙
 
“나는 이번에 말로 하는 대화가 아니라 가슴과 눈으로 하는 대화를 하러 왔습니다. … 한편이 이기고 한편이 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길을 찾아왔습니다.” (「상고이유서」, 전집5권 124쪽)
 
“남과 북이 아웅다웅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손해를 봤어요? 한 나라가 될 때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무시못할 큰 나라로 자라나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되는 노력을 한다는 것은 피차 커지는 노력을 하는 거죠. 그것은 상대의 장점을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면서, 서로서로 배우면서 모든 장점을 살려가는 일이지요. 그 전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엄청나게 커지죠.” (옥중편지 1992.8.14)
 
통일 운동은 기본적으로 “남북한 당국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북쪽과 해외가 남한 정부를 비난 공격할 때, 우리도 덩달아 하게 되면 한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건 안 됩니다”라며 중립성의 원칙을 강조했다(『정세연구』, 1994년 2월호). 
 
 

칠천만 겨레운동 통해 통일준비

▲통일 준비의 필요성
 
“우리가 ‘95년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95년에 통일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민주주의가 각기 다른 생각과 권익을 통합해 가는 과정이라고 하면, 민족을 통합하는 민주적 과정은 지속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영원한 과제인 셈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이고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나는 95년에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로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일은 반드시 오는데, 오는 통일이 우리가 바라고 노력해 왔던 자주적인 통일운동의 완성이냐, 아니면 그것을 멈추고 미국의 구도대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집어 삼키는 흡수통일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합니다.” (『정세연구』, 1994년 2월호)
 
방북 이후에는 통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다가올 통일에 대한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준비 없이 맞이한 해방은 분단의 고통을 안겨 주었기에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늦봄은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을 시작했으며 별세 후에는 부인 박용길 장로가 통일 교실, 통일 출판, 통일 여행, 통일 공연, 통일 자료실 등을 운영하며 남북의 이질적인 것들을 통일시켜 나가는 통일은동을 지속하였다. 

비통한 점은 여전히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늦봄의 헌신과 희생으로 통일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부디 너무 늦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 통일맞이
통일맞이는 ‘예정된 미래’인 남북통일을 민족공동체의 대화합 속에서 평화적으로 이룩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운동체이다. 통일맞이 칠천만겨레모임(1994년 4월 21일 창립)과 문익환목사 기념 사업회(1995년 8월 8일 창립)가 1998년 6월 1일 통합하여 재창립했다. 이후 1999년 2월 3일부로 통일부로부터 법인 설립을 인가받았다. 현재는 다시 기념사업 활동을 분리하여 통일맞이는 통일운동에 전념하고,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는 통일의 집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 리모델링 후 개관한 통일의 집에 붙인 통일맞이 안내문(1997. 4. 19)
 
45년이라니

문익환

45년이라니
이건 너무 길었습니다
일제 통치 36년도 지긋지긋했었는데 분단 45년이라니
이건 너무 길었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이대로는 눈을 감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아니 이건 너무 부끄러운 일입니다
너무너무 부끄러운 일입니다
푸른 하늘 흰 구름을 쳐다보기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능라도 휘늘어진 실버들에서 뿜어 내던
젖빛 신록의 피어나는 희망이
지금 여기선 녹음으로 짙어 가는데
우리는 부끄럽기만 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서러운 눈을 들여다보다가
이거 꼭 죽고만 싶어집니다.
 
얼마나 못났으면
45년이나 이렇게 앉아 뭉개고 있었나요 남들이 어쩌다 멋대로 그어 놓은 금 그게 뭔데
그게 대체 뭔데
아직도 못 지우고 있나요.
비바람이 지우면 이번엔
우리 손가락으로 더 깊이 홈을 파면서 그게 뭔데
그게 대체 뭔데
하마 지워질세라
2백만 군대를 무장시켜 지켜야 한다니
서로 건너다보며 눈이나 흘기고
서로 괴뢰니 주구니 욕지거리를 해대면서 욕되게 욕되게 살다가
하나씩 둘씩 개처럼 죽어 가야 하다니
이건 정말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군요
너나없이 모두모두 머리를 쥐어뜯으며
 부끄러워나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방북사건 재판에서 검사가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이 없냐는 질문에 대답 대신 쓴 시, 「상고이유서」>
 


[참고문헌]
문익환 (1999). 『문익환 전집 4권: 통일-2』 사계절출판사
문익환 (1999). 「상고이유서」, 『정세연구』  『문익환 전집 5권: 통일-3』 사계절출판사
문익환 옥중편지

월간 문익환_12월 <통일꾼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