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1월 <늦봄의 별세>

🈷️ [현장르포] 모란통일동산 문익환 목사 묘소

겨레의 벗으로 누워 영원한 통일의 꿈 

 
◇모란공원 통일동산 문익환 목사 묘역을 찾은 참배객이 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어느 이름 모를 참배객의 눈물

잔설이 하얗게 묘역을 감싼 12월의 어느 날, 중년의 이름 모를 참배객이 늦봄을 마주했다.
‘통일의 선구자 겨레의 벗’이라 쓰인 늦봄의 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동행한 또다른 참배객은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저 학생 때 시위에 참여해 본적이 있는 정도죠. 늦봄과 대면한 적도, 그의 실물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지만 그를 존경하는 마음에 발길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유원호 정경모 선생과 나란히 영면

경기도 마석의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의 해방을 위해 온 몸으로 역사를 살다 간 늦봄 문익환 목사가 영면하고 있는 곳.
1994년 1월18일 타계한 늦봄은 동지들이 누워있는 이곳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됐고 이후 2011년 9월 25일 부인 박용길 장로가 별세하자 합장하였다. 2021년 박용길 장로 10주기에 늦봄과 봄길의 묘를 같은 모란공원 내 정경모 선생 묘역 옆 양지바른 곳으로 이장하였으며 이날 유원호 선생과 그의 부인 안순심 여사의 묘도 함께 모셔 합동 묘역을 조성하였다. 평생 동지였던 문익환, 정경모, 유원호 세 분의 공적을 기리고 ‘4.2남북공동성명’의 의의를 되새기기 위해 모란통일동산을 조성했다. 2022년 6월 12일엔 추모벽이 완공되어 제막식을 가졌다. 묘역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모란통일동산 추모벽에는 ‘백두산 천지' 조각 왼쪽으로 ‘4.2 남북공동성명’과 추모벽 제작에 성금으로 함께한 단체와 개인 이름, 오른쪽으로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다’ 라는 문익환 목사의 글씨와 낙관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기둥 역할을 하는 모퉁이에는 김형수 시인의 추모시가 새겨져 있었다.
 
◇추모벽에 새겨진 늦봄의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다’ 글씨와 김형수의 새김글
 
 
기적이었다.
공동체가 길을 잃을 때
한 나라가 길을 잃을 때
폭풍우 속 눈보라 속
가장 험한 날 가장 환한 길을 밝힌
문익환 정경모 유원호
지던 꽃도 피어난다
해도 달도 숨고 없을 때
온 세상이 깜깜할 때
하나 둘 여기 올 것이다
와서 물을 것이다

김형수

 
이부영 묘역 추진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아무리 신냉전의 태풍이, 국내의 역풍이 거세더라도 우리가 오늘 여기 세우는 세 분 통일꾼의 모란통일동산은 우리들의 든든한 거점이자 아득한 세월 한반도에 깃들이고 살아온 겨레의 거센 숨결을 내뿜는 숨구멍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민족의 길고 긴 기다림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장소가 마련된 것이다. 
 
 

전태일-김근태-계훈제-백기완 등 함께해 

늦봄은 “기다림은 일어서서 난관을 헤치며 걸어가는 것이며 그 일은 대를 이어서 계속되는 전진”이라고 했다. 또한 “기다림은 통일을 향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걸어가는 일인 동시에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통일이 아주 성숙한 것이 되도록, 통일된 조국이 더 커가기 위한 차분하고도 실속있는 준비를 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는 그의 동지들이 함께 하고 있다. 전태일, 김근태, 계훈제, 백기완, 문동환 등 그와 평생을 함께 했던 이들과 함께 하기에 더 이상은 외롭지 않은 영면의 시간을 갖고 있으리라.

“요즈음 나라 상황을 보면 전쟁 날까 너무 무섭고 그래서 통일을 꿈꾸신 문목사님이 더욱 그리워요” 
눈물을 훔치며 마치고 돌아서는 참배객의 말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늦봄이 장준하의 못다한 통일을 이어 받아 실천하는 삶을 살면서 “돌베개” 에서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늦봄의 기록 또한 남은 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팔천만 겨레 가슴에 그 큰 뜻 살아나서 한 발 한 발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 한반도의 평화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늦봄의 동생이자 동지였던 문동환의 묘
 
◇전태일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의 묘.
 
◇문익환의 민주화운동 동지로서 민주통일국민회의를 함께 한 계훈제의 묘.
 
◇늦봄이 아끼던 ‘민주주의자’ 김근태와 그의 형 김국태의 묘.
 
◇ 백기완의 묘. 뒷면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비문이 쓰여있다. 
 
◇성유보의 묘.
 
3월 9일 오늘이 바로 서대문구치소로 들어가던 날이군요. (중략)
마침 6방인가 7방에 성유보 씨가 들어 있었는데 담요 한 장 보내 주어서 그것으로 몸을 싸고 그날 밤을 견디었지요. (옥중편지 1992.3.9 )
 
◇박종철과 그의 아버지 박정기의 묘.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참고 문헌]
모란통일동산 추진위원회 자료집


※ 모란통일동산은 우리들의 솟대 
4.2 남북 공동성명을 통해 조국의 평화 통일의 혈로를  뚫어내신 문익환 정경모 유원호 세 분의 묘역에 한국과 일본의 독지가들의 정성을 모아 통일동산이 마련됐습니다. 이곳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라는 우리의 꿈을 비는 솟대입니다.
 

※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  
🔗 홈페이지 '모란공원 사람들
 
◇'민주열사추모비'는 신영복 글씨. 오른쪽 추모문은 글은 서해성, 글씨는 박용길이 썼다. 
 
만인을 위한 꿈을 하늘 아닌 땅에서 이루고자한 
청춘들 누웠나니
스스로 몸을 바쳐 더욱 푸르고 이슬처럼 살리라던 
맹세는 더욱 가슴 저미누나
의로운 것이야말로 진실임을 싸우는 것이야말로 양심임을
이 비 앞에 서면 새삼 알리라 어두운 
세상 밝히고자 제 자신 바쳐 해방의 등불 되었으니
꽃 넋들은 늘 산 자의 빛이요 볕뉘라
지나는 이 있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불멸의 영혼 
이들에게서 삼가 불씨를 구할지어니

1997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월간 문익환_1월 <늦봄의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