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2월 <인간적인 문익환>

🈷️ MBTI로 본 늦봄

정열적이고
활기 넘치며
상상력 풍부,

청년 문익환은 ENFP('재기발랄한 활동가형')?

 
 

 
최근 자기소개를 할 때 MBTI(마이어스-브릭스 성격유형 지표)를 종종 이야기하게 된다.  ‘저 사람은 계획적이니까 J일 거야’라고 추측하는 건 예사이고, 알파벳 4개만 듣고 ‘저 사람은 나랑 상극이야!’하고 선을 그어버리는 ‘과몰입’ 현상도 겪는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어떻게 단 16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냐며 MBTI 검사를 믿지 않거나 관심 없어 한다(이런 사람들의 대개는 ○STJ 유형이라고 한다).  더러는 MBTI가 문항을 읽고 자기가 점수를 체크하는 ‘자기보고식’ 검사이기 때문에 결코 나를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지표가 아니라고도 한다. 이 이유로 김영하 작가는 본인의 MBTI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그는 나를 잘 아는 타인이 나의 검사를 대신해 본다면 자신을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 해 동안 수장고에 있으면서 문익환 목사 관련 기록을 틈틈이 읽었다. 대면하고 대화해 본 적도 없는 인물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알게 된다는 것이 오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특히 80여 년 전 박용길 선생과 주고받았던 연애편지를 읽으면서부터 더욱 그랬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기록에서 발견한 ‘인간 문익환’에 대해 객관적 지표를 세우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청년 문익환의 성격 유형을 보여주는 문장들을 모아보았다. 이 방식은 타인보고식도 아닌 ‘타인-기록관찰식’정도가 되겠다. 

 
◇청년 문익환의 20대가 고스란히 담긴 연애편지 
   
 

“칸타타 듣고 새벽까지 담화” 대화와 사귐 즐겨

▲에너지 방향: E(외향형) vs I(내향형)
에너지 방향이 외향인지, 내향인지는 분명치 않다. 사람과 있을 때는 대화와 사귐의 시간을 즐기고, 또 홀로 있을 때는 그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듯하다. 1941년 성탄예배 후에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밤을 새우고 여럿이 헨델의 <메시아>를 들은 일을 좋은 추억으로 남겼다. 동생 문동환은 이야기가 도무지 끊기지 않는 대화 상대이기도 했다.    
 
마즈막 칸타타에서 모도들 감탄을 가지고 돌아갔읍니다. 끝난다음 예정대로 메시아를 한 시 반까지 듣고 새벽까지 담화로 밤을 새웠읍니다. 메시아를 늘 듣기는 했어도 여럿이 모여 앉아서 조용하게 듣는 것이란 참 좋왔읍니다. 헨델에게 대한 감사. 위대한 신앙에 대한 감격으로 하로 밤을 지났읍니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1. 12. 26)
 
동환이가 와서 이얘기가 너무 많어서 걱졍입니다. 우리는 이얘기만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시작하지 않을려고 힘씁니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1. 7. 13)
  
 
40년 뒤의 옥중편지를 보면 길고 긴 수감생활에서 요가와 명상을 하며 홀로 시간을 견뎠지만, 곳곳에서 외로움이 묻어난다. 감옥, 게다가 독방이라는 고립된 상황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아버님께
… 한 달에 한 번 혹은 이렇게 한 번 더 편지를 쓴다는 기쁨이 홀로 사는 생활의 외로움을 무지개로 날려 버리는군요. 이 작은 흰 지면은 저에게는 금싸라기같이 소중합니다. 
(옥중편지 1982. 11. 24) 

당신께
…  일하고 먹으면 밥이 맛이 있다는 몸의 진실 외에 남과 같이 먹어야 밥이 맛이 있다는 몸의 진실의 새 면을 요새 깨달을 수 있었소. 나는 워낙 잘 씹어 먹기 때문에 혼자 먹어도 얼마든지 맛있게 먹지만 여럿이 왁자지껄하면서 먹는 옆방 친구들의 모습에서 몸의 진실의 새 면을 발견할 수 있었소. 몸의 진실의 사회성이라고나 할는지요.
(옥중편지 1987. 2. 18)
 
  

직관과 영감에 먼저 의존하는 경향 

▲인식기능: S(감각형) vs N(직관형)
다음은 정보 인식의 방식인데 오감을 통해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직관과 영감에 의존하여 사실 이면을 파악하는 경향이 꽤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한 성정을 스스로도 잘 인지하고 있는 듯 하다.
 
어제는 하로종일 지난 밤새도록 비가 오고 오늘 아침 끊었읍니다. 빗소리 대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방글방글 꽃방울이 피어오르는 사구라 나무 위에서 지저귄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 성정에 맞을 것입니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1. 4. 21)
 
 

때론 지나치게 솔직… 감정형

▲판단기능: T(사고형) vs F(감정형)
의사결정이나 판단을 내릴 때는 어떨까? 결혼이 성사되기 어려운 고비에 처할 때마다 청년 문익환은 자신의 괴로움과 방황, 고민거리 등을 거침없이 써서 전했다. 아무리 믿고 의지한다고 해도 연애상대인데, 지나치게 솔직하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대목을 읽노라면 21세기 독자는 안타까운 탄식을 흘리게 된다.
 
재작일(*그제) 편지를 받았읍니다. 몇 번 회답을 썼다가 중지하고 오늘 많이 생각하든 끝에 붓을 들었읍니다. … 저도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을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읍니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1년 말경)
 
글씨는 성격과 그때의 기분을 나타낸다는데 다시 읽어보고 놀랐읍니다. 그러나 무리로 감추는 것도 회칠한 무덤(*위선을 뜻하는 성서 속 비유)인가하며 차라리 솔직한 편이 좋은가 하면서 난필을 그대로 휘날립니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2. 2. 19)
 
 
◇첫 페이지는 달필로 시작하지만 점점 감정이 격해지면서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알아보기 힘든 난필이 된다.
 
 
비교적 뚜렷한 것은 N과 F인데 NF를 묶어서 ‘이상주의자’라고 구분한다. 인류애를 중시하고 상담에 능하며 상상력이 풍부하여 성직자, 교육자, 예술가에 잘 어울린다. 목사, 교사, 시인을 모두 거쳤으니 우연이라기엔 매우 공교롭다. ‘코쓰모쓰’에게 바친 꿈 이야기에서 그의 상상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나의 성격이 여기에서도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나의 성격이 이러한데 비유해서 푸른하늘을 사모 할 겝니다. 지난밤 꿈에는 정말 오래간만에 명랑한 꿈을 꾸었읍니다. 다만 혼자였읍니다. 확실히 푸른하늘 밑이였읍니다.
힌 뭉게구름이 푸른하늘을 부드럽게 물들였었을 겝니다. 거기에는 조고마한 검은 구름도 있을 수 없는 그저 명랑한 날세였읍니다. 그리고 종용한 산골잭이, 새소리와 시내물소리까지도 끊어진 정적한 산골잭이. 그러한 아름다움과 평화속에서 저는 무엇을 발견한줄압니까.
“피여 있는 서너송이 코쓰모쓰―.”
이런 곳에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코쓰모쓰. 지금도 너무나 똑똑하게 나의 마음의 눈은 볼 수 있읍니다.
참말 이쁩니다. 아름다워요. 정말 어쩔 줄을 몰랐읍니다.
가―는 실바람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허리를 가졌읍니다.
장미와 따―ㄹ리아가 정숙을 다투는 곳에 있지는 않었읍니다.
다른 꽃이 그 곁에서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모독입니다.
속에 있는 붉은 빛을 활짝 드러내지 않는 엷은 분홍!
이 꿈은 끝나지 않었읍니다. 지금도 나의 마음은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코쓰모쓰 앞에 이 꿈을 송두리채 드리나이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1. 9. 2)
 
 

“자유롭게 그때그때 기분에 맞게 변경” 즉흥적 

▲생활양식: J(판단형-계획적) vs P(인식형-자율적)
마지막으로 유형을 가르는 기준은 생활방식이 계획적이냐, 즉흥적이냐 하는 것이다.  이 구분은 직장생활, 일상생활에서 잘 드러나므로 MBTI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다음을 읽고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어제는 중학주일학교도 다른 이에게 맡기고 예배시간에도 중도에 나왔댔읍니다. 그러나 오후에 강변에 나가서 딩굴고 드러왔드니 아주 기분이 회복되여서 저녁예배는 아동예배와 어른예배에 다 참석했댔습니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1. 8. 1)
 
오늘은 나의 일과를 알려드리겠읍니다. 규칙적 생활을 해야 한다지만 나는 극히 자유롭게 나의 그때그때의 기분에 맞게 변경합니다. 이 일과도 무슨 계훽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자연히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침에는 퍽 늦습니다. 나무램 마십시오. 차츰차츰 빨라질 테니까. … 오후는 마음 나는대로 퇴마루에서 딩굴기도 하고 이렇게 편지도 쓰고 풍금 치고 싶으면 풍금도 치고 산보도 하고 독서도 합니다. 할 수 있는대로 즐겁게.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2. 2. 17)
 
 
1942년은 건강 때문에 일본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외금강으로 이주한 때였다. ‘할 수 있는 대로 즐겁게,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를 되새기며 휴양객으로서 모범적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다. 일의 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던 일에서 다른 일로 전환하는 방식은 적잖이 즉흥적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문익환 청년(혹은 목사)의 MBTI 유형은 ‘ENFP’일 가능성이 크다. ENFP는 ‘재기발랄한 활동가’, ‘사랑을 좇는 피터팬’ 등의 별명이 있다. 정열적이고 활기가 넘치며 상상력이 풍부하다. 온정적이고 창의적이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시도하는 유형이다. 유명인 중에는 이효리, 방탄소년단의 RM과 뷔, 쿠엔틴 타란티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고 한다.

다른 편지에서는 ENFP답지 않은 모습이 간혹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에는 냉정하고 무뚝뚝한 신학생 문익환(INTP)이 등장한다. 
 
냉정해 질려니까 어느새에 신학생의 버릇이 또 나온 것 같습니다. 사실 그리 흥분한 것도 아닙니다. 어덴지 모르나, 참으로 결렬이라는것은 상상에 지내지 않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과거, 여러번 결렬이라는 것을 생각도해보고, 말도 해봤으나, 결국 한번도 뱃속 깊은데서는 승인해 본 일이 없읍니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1년 말경)
용정은 아직도 꽤 쌀쌀한 날이 많습니다. 정말 쓸쓸한 곳입니다. 저와 같이 무취미하고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가 생겨남직합니다.
(박용길 선생에게  보낸 편지 1941. 5. 13)
 
 
타인-기록관찰식으로 MBTI 유형을 찾아보겠다는 시도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인가? 아직은 정답을 빈칸으로 남겨두는 편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 발견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발견되지 않은 기록들이 있어 서두를 이유가 없다. 새로운 근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즐거움을, 반세기나 앞선 그가 남긴 단서를 추적하는 이 추리게임을 아직은 끝내고 싶지 않다. 
 
 
<글: 박에바>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쓰는 것 보다는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수동적 내향인, IS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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