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이달의 사건>

1991년 4~6월 분신 투쟁 (2023년 6월호)

1991년 분신과 시위 진압으로 잇단 젊은이들의 희생
장례위원장 늦봄, 6월 6일 여섯 번째 수감생활 시작

 
◇ 1991 6월 2일(수감되기 4일 전) 노태우정권 타도 집회에 참석한 늦봄과 계훈제 선생. 시위 진압으로 압사한 김귀정 열사의 장례위원장을 맡고 있던 시점이다.
 

강경대 군 사망 후 5월 분신 투쟁 이어져

1991년 5월을 전후하여 학생과 청년, 노동자의 분신자살이 이어졌다. 소위 ‘분신 정국’, 아니 ‘5월 투쟁’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봄이었다. 그 시작은 4월 26일 명지대 강경대 군이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를 하다가 전경들의 방패에 맞아 사망하면서부터다. 재야는 ‘고 강경대 군 폭력 살인 규탄과 공안 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대책회의’를 결성해서 대정부투쟁에 돌입했다. 사흘 뒤 4월 29일 전남대에서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노태우 정권 퇴진 결의대회’ 중 박승희 양이 ‘노태우 정권 타도하고 미국 놈들 몰아내자’를 외치며 분신했다. 5월 1일 안동대 김용균에 이어 3일에는 경원대 천세용, 이후 청년 김기설과 노동자 윤용하 등 5월에만 모두 8명이 분신하였고, 1명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에 이르렀다. 6월에도 2명의 노동자가 분신했다. 

연속적인 분신은 6공화국 정권에 대한 항거의 몸부림이었다.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정권은 1989년 문익환 목사, 임수경, 문규현 신부의 방북에 대해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탄압했고, 전교조 설립 노력에도 대대적인 억압을 가했다. 1990년 1월 3당 통합이라는 보수세력 야합으로 5공 청산도 흐지부지되었고, 물가와 부동산값 폭등, 노동 탄압, 대학 등록금 인상 등으로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해지면서,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정권에 대한 분노에 강경대 살인 사건이 불을 붙인 셈이었다. 

 

늦봄, 열사들의 장례위원장으로 정신없던 5월

늦봄은 분신한 열사들의 장례위원장이 되어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4월 27일 강경대 살인 규탄대회에서 연설하며 장례위원장을 맡았고, 천세용 열사와 김기설 열사의 장례위원장도 맡았다. 늦봄은 옥중 편지에서 ‘꼭 죄인이 된 심정으로 꽃 같은 젊은이들의 장례식을 치러’ 주느라, ‘그 슬픈 아버지, 어머니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붙들어 주느라고 난 제정신이 아니었’고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형집행정지 취소, 여섯 번째 수감생활 시작

늦봄의 활동을 당국이 그냥 두었을 리 없었다. 방북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형집행정지 상태였던 늦봄에게 경찰은 계속 재수감될 수 있다는 압력을 넣었다. 5월 25일 경찰의 토끼몰이식 시위 진압 도중 압사당한 김귀정 열사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늦봄은, 결국 6월 6일 아침, 열사가 안치된 백병원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는 순간 경찰에 연행되고 말았다. 21개월에 걸친 늦봄의 여섯 번째 수감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글: 조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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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감 후 늦봄 - “처참함”과 “용기” (1991년 6월 24일 옥중 편지)
 
“젊은이들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쳤는데 그 결과가 이 모양이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어요?...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만 하면… 죽는 길 밖에 무엇이 있으랴 싶지만, 그것 역시 책임을 벗어 던지는 일 같고…”
(아내에게 쓴 글)
 
“지난 21일 이후로 저는 퍽 처참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때에 마침 장 형이 쓴 『돌베개』를 읽으면서 용기를 다시 얻고 좌절감을 털어 버릴 수 있었습니다. … 6천 리 죽음의 길을 걸어 중경에 가서 겪었던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이 아니던가요? 그 후 30년의 장형의 생은 죽음으로 … 제 아버님이나 어머님, 김구 선생이나 장 형은 바라던 민족해방을 못 보고 가셨지만, 그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이 어둠을 뚫고 나가는 후세인들에게는 별빛처럼 빛나기 때문에 저는 장 형의 『돌베개』를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는 겁니다.”
(장준하 부인 김희숙 여사에게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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