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이달의 사건>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 (2023년 7월호)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날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25명 열사와 광주 영령을 불러내다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

  
◇1987년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대신해 희생된 25명 열사의 이름을 절규하듯 외친 늦봄.
영화 <1987>의 마지막 장면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720만여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1987>.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 2018년 개봉작으로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던 영화다. 1월의 사건 발생 상황으로 시작한 영화는 고문 은폐와 조작을 밝혀내는 과정을 풀어냈는데, 6월 항쟁과 이한열의 장례식까지 보여준다. 1987년 이후 출생한 청년 세대가 87년 당시 민주화 투쟁 대열에 섰던 대학생들의 모습에 공감하고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영화였다.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장면이 그려진 영화의 엔딩에 늦봄 문익환 목사가 등장한다. 늦봄은 민주화 투쟁에서 희생한 25명 열사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절규하듯 불러낸다. 실제 장례식 현장에서도 모든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물짓게 만든 명장면이다. 이 장면은 젊은 MZ세대가 늦봄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늦봄은 네 번째 수감 생활 14개월을 보내던 중 진주교도소에서 7월 8일 석방되었다. 곧바로 서울로 이동하여 이한열 열사를 조문하였고, 9일 장례식에서의 조사를 요청받아 피 끓는 심정으로 광주 영령들과 열사들을 불러낸 것이었다.

 
▲늦봄의 ’고 이한열 열사 민주 국민장’ 조사 전문
 
 전 나이 일흔 살이나 먹은 노인입니다. 이젠 살 만큼 인생을 다 산 몸으로 어제 풀려나와 보니까 스물한 살 젊은이의 장례식에 조사를 하라고 하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아까 백기완 선생도 지난밤 한잠 못 잤다고 했지만, 저도 한잠 못 잤습니다.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왜 나왔던가.
 어제 저녁에 여기서 박수를 치는데 제가 거절을 했습니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들의 박수를 받을 것이냐? 밤을 꼴딱 새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많은 열사들의 이름이나 목이 터지게 부르고 들어가려고 나왔습니다. 모두 사십여 명 된다고 하는데, 제가 스물다섯 사람의 이름밖에는 몰라서 스물다섯 사람의 이름을 적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빠진 이들이 있다고 하면 제가 다 부른 다음에 그 가운데서 누구나 일어나서 불러주세요.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김태훈 열사여-!
황정하 열사여-!
김의기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
이동수 열사여-!
김경숙 열사여-!
진성일 열사여-!
강상철 열사여-!
송광영 열사여-!
박영진 열사여-!
광주 이천여 영령이여-!
박용만 열사여-!
김종태 열사여-!
박혜정 열사여-!
표정두 열사여-!
황보영국 열사여-!
박종만 열사여-!
홍기일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오동근 열사여-!
김용권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 (영상 링크)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에서 조사하는 늦봄
https://youtu.be/XAq5GkQQwrk
 
◇1987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후 곧바로 이한열 열사 빈소에 찾아가 절하고 있는 늦봄

 
<글: 조만석>
언제든, 누구와 함께든, 사람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든, 걷기를 즐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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