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집중분석>

늦봄 詩에 스며든 동주의 흔적 (2023년 7월호)

늦봄과 동주 시의 공통언어 찾기
 
◇평양 숭실학교 시절의 문익환과 윤동주. 서로 모자를 바꿔쓰고 찍은 사진이다. 
 
 
동주형
형은 시집 한 권 남기고 갔는네, 난 다섯 번째 시집을 내게 되었군요. 꼭 죄를 짓는 것 같은 심정이군요. 나같이 평범한 시인도 감옥에 들어오면 시가 쏟아져 나오는데, 형같이 타고난 시인이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억울한 죽음을 날마다 숨쉬며 얼마나 절절한 시들을 짓씹었을까? 그 시들이 살아나왔으면, 형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습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을텐데, 그 절절한 시들이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간 걸 생각하면 난 죽고만 싶은 심정이 된다오.
형이 그리워 목울대 울컥 눈물을 삼키면서,
7월 20일 안동에서 아우 익환 올림
 
[편집자주] 1991년 7월 20일. 북한을 다녀온 문익환 목사가 안동교도소에 복역할 때 쓴 편지다. 73세의 문 목사는 옥중에서 다섯 번째 시집 『옥중일기』를 출간한 후 윤동주 시인에게 죄스러움을 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시와 관련해서 늦봄과 동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늦봄의 시를 읽다보면 동주의 언어가 곳곳에서 보인다. 늦봄이 의도적으로 그 단어를, 구절을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스며있던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함께 한 친구를 향한 진한 추억과 우정, 그리고 죽음의 애틋함이 동주를 떼어놓을 수 없게 했던 것 같다. 늦봄의 시 공간에 스며든 동주의 언어들을 살펴보자. 
 
 

‘암울한 미래’와 ‘내일의 기대’ 묘한 대조

▲<발바닥 얼굴>과 <새로운 길>
문익환 <발바닥 얼굴> 윤동주 <새로운 길>
더러는 크고 더러는 작다 뿐
더러는 길쭉하고 더러는 넙데데하다 뿐
 (중략)
굽이굽이 끝없는 길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 할
만신창이 우리의 역사이구나
찢어지고 터진 아픔 서로 싸매 주며
얼싸안고 일어서는 사랑이구나
너의 나의 어쩔 수 없는 얼굴이구나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발바닥 얼굴>(『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1984)에는 ‘굽이굽이 끝없는 길 /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 할’ 이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동주가 연희전문 입학 직후에 쓴 <새로운 길>(1938.5.10.)에서 보인다. 동주는 <새로운 길>에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이라고 하고 있다. 온전하게 동주의 시구절과 같지는 않다. ‘길’이라는 공간과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시점이 섞여 있다.

늦봄은 <발바닥 얼굴>에서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야 할’ 만신창이 우리 역사를 서로 얼싸안고 일어서는 우리나라 백성의 얼굴, 마음, 서러움, 사랑을 이야기한다. 동주는 <새로운 길>에서 무궁화가 피고, 태극문양이 곳곳에 있고, 우리 말을 맘껏 사용할 수 있는 연희전문에 입학 후 새로운 희망에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을 시점에 두고 볼 때 <발바닥 얼굴>은 오늘이 먼저, <새로운 길>은 어제가 먼저 나온다. 늦봄의 <발바닥 얼굴>은 암울한 미래를 사랑으로 싸매며 같이 가자고 한다. 동주의 <새로운 길>은 내일에 대한 기대로 어제와 같이 오늘도 내를 건너고 고개를 넘어가자고 한다. 시점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희망이 보인다.
  
 

‘실망’과 ‘결의’의 미묘한 간극

▲<방우>와 <눈 감고 간다>
문익환 <방우> 윤동주 <눈 감고 간다>
방우는 방우일뿐이지요. 어머니! 아버님은 바위를 방우라고 부르시지요. 방우는 그냥 방우로서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더 멋진 방우가 되려고 꾸밀 필요가 없어요. 그냥 생긴 대로 당당하니까요.
(중략)
그런데 그 진실에서 풋사랑의 내음이 풍겨 오는 것 같아서 눈을 와짝 떠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님은 푸실푸실 부서져 내리는 방우였습니다. 87년을 하루같이 튼튼히 걸어오시던 발걸음이 휘청하며 소나무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는 바람이었습니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중략)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늦봄의 <방우>(『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1984)를 보면 ‘그런데 그 진실에서 풋사랑의 내음이 풍겨 오는 것 같아서 눈을 와짝 떠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님은 푸실푸실 부서져 내리는 방우였습니다.’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동주가 연희전문 4학년 때 쓴 <눈감고 간다>(1941.5.31.)에서 ‘가진바 씨앗을 / 뿌리면서 가거라. /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에서 보인다.

이 두 시에서는 ‘눈을 와짝 뜬다’라는 행위의 시점이 다르다. <방우>는 눈을 떠 본 후의 시점이고, 동주의 <눈감고 간다>는 마지막에 감았던 눈을 와짝 뜨라고 한다. 늦봄의 <방우>에서 ‘방우’는 아버지를 상징한다. 언제나 당당하고 믿음직하고 정직하신 아버님이 어느 날 ‘눈을 와짝 떠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님은 푸실푸실 부서져 내리는 방우였습니다.’……‘그렇게도 기다리시던 민족 통일의 열망마저 푸실푸실 부서져 내리는데 말입니다.’ 로 끝이 나는 이 시는 임박한 아버님의 죽음을 보면서 안양교도소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글이다. 아버님에 대한 회한을 담담하게 그려낸 글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동주의 <눈 감고 간다>를 보면 1연 ‘밤이 어두웠는데 / 눈감고 가거라’ 에 이어 2연의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에서 보듯 눈감고 가다가 돌이 채이거든 눈을 와짝 뜨라고 한다. 동주에게 밤의 어두움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동주의 <눈감고 간다>는 성경에 기반한 시로 알려져 있으며, 마태복음 13장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이다. 

졸업반이던 1941년은 동주에게는 여느 때 못지않게 힘든 시기였다. 2월에 연희전문 교장으로 친일파 윤치호가 부임하고, 3월에 한국어교육이 전면 금지된다. 한국어로만 글을 써 온 동주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히 일치하는 북간도에 대한 그리움

▲<눈물의 마음>과 <별 헤는 밤>
문익환 <눈물의 마음> 윤동주 <별 헤는 밤>
앞집 씨암탉이 죽었다는 말만 듣고도
주루룩 흘리시던 싸가지 없는 눈물이지만
동네 개구쟁이들이 개천에서 물장구치는 것만 보여도
눈 둘 데를 못 찾고 주르륵
흘리시던 싸가지 없는 눈물이지만
 (중략)
할머니
하늘만큼 보고 싶은 할머니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중략)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후략)
 
늦봄의 <눈물의 마음>(『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1984)은 ‘할머니 / 하늘만큼 보고 싶은 할머니 /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로 끝이 난다. 이 구절은 동주가 연희전문 4학년 때 쓴 <별 헤는 밤>(1941.11.5.)에서 ‘어머님, /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와 일치한다. 여기서 늦봄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동주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시의 중심에 있다.

그들에게 북간도는 어떤 의미일까? 북간도는 늦봄과 동주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늦봄은 1918년 6월 1일, 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둘은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그리고 용정 은진중학교, 평양 숭실중학교를 같이 다닌다. 이후는 늦봄은 도쿄의 일본신학교에, 동주는 연희전문에 들어가 헤어지지만 방학이 되면 용정 중앙교회 하기성경학교 교사로도 만나고, 일본에서도 만난다. 어디를 가든 근간은 북간도였다, 무릉도원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명동을 둘러싼 북간도는 학문, 민족의식, 기독교, 시의 근간이다.
 
 

‘처럼’이 시의 한 행을 차지하는 이유는? 

▲<301호실>과 <십자가>
문익환 <301호실> 윤동주 <십자가>
부서진 번개불
까맣게 속이 타는 빛의 씨알들
처럼

왜 자꾸만
기도가 하늘에서 쏟아질까
이 작은 방에

쓰리고 아픈 눈물에 젖은 기도들이
뼈 마디마디 울리는 기도들이
하늘도 되돌려주는 기도들이

이젠 세상으로 흩어질 밖에 없어라
어두워 오는 하늘 아래
파아란 횃불로 타오르려고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중략)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늦봄의 시 <301호실>(『꿈을 비는 마음』, 1978)을 보면 ‘처럼’이란 부사격 조사가 단독의 단어로 시의 한 행을 차지하고 있다. 동주의 ‘처럼’은 동주가 연희전문 4학년 때 <눈감고 간다>와 같은 날 쓰인 <십자가>(1941.5.31.)에서 볼 수 있다. 

두 시는 기독교적 색채가 다분하다. 늦봄은 시 <301호>에서 기도가 빛의 씨알들처럼 쏟아진다고 한다. 301호는 민청학련 사건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피해자 가족과 여신도회 관계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활동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쏟아지는 어머니의, 가족의 기도, 시대와 호흡을 같이 한 기도를 경험했을 것이다.

동주의 <십자가>를 소리내어 읽다보면 ‘처럼’에서 한 호흡 쉬게 된다. 그리고 ‘처럼’의 의미를 생각한다. 동주는 구원의 희망이 없는 시대에서 예수를 닮겠다는 마음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늦봄에게 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의 친구라고만 할 수 없다. 늦봄은 동주 없는 자신을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늦봄은 27년 남짓 살다 떠난 동주 대신 동주의 시가 생활처럼 곁에 있었던 모양이다. 늦봄의 숨소리에 동주가 살아있다. 

<박영옥>

<월간 문익환_집중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