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후원자 특집>

감사의 글2: 송경용 이사장 (2023년 12월호)

[후원자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글1] 사업회 대표: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송경용 이사장

한 세대를 이어온 30년… 
후원자들 ‘사랑의 힘’에 “굉장히 감사하는 마음”

 
◇서울 합정역 인근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사무실에서 만난 송경용 이사장. 송 이사장은 이 단체의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사단법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 이사장인 송경용 성공회 신부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직함을 갖고 있다. 송 신부가 이사장으로 있는 또 다른 기관인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사무실에서 기념사업과 후원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30년 지나도 전국에서 목사님 기억

▶2024년이 문익환 목사 30주기로 지난 10월에 ‘늦봄 문익환 30주기 기념위원회’ 발족식도 있었는데요, 기념위원과 후원회원은 사업회에 어떤 의미인가요? 
30주기면 돌아가시고 한 세대가 지났다는 말이잖아요. 발족식 때 사회자가 서른 전후인데 막 태어났던 아이가 이제는 청년이 되어 가정도 이룰 만큼 긴 세월이지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때 청년이었던 이들은 이제 장년이 되고요. 생각해 보니 현재 청년들에게 문익환 목사님이라는 존재는 저희 세대로 치면 김구 선생님인 셈이죠. 30년이 지났는데도 전국 각 부문에서 목사님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생명력의 원천이 뭘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목사님이 보여줬던 영성과 정신, 인간적인 따뜻함,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역시 사람에게는 그런 사랑이 중요하다는 걸 기념위원과 후원위원들을 보면서 많이 느끼고요. 

 ‘평화’와 ‘통일’이 좀 무거운 주제가 되고 이야기되지 않는 최근의 상황에서 기념위원으로 참여하고 후원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단순히 숫자로 따질 게 아니고 후원자 한 분 한 분의 마음과 기억의 힘이 대단한 것이고요,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에요. 30주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후원자들의 특별함을 정말 많이, 또 새롭게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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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교회 교육관 제가 직접 지었어요”

▶이사장님은 어떻게 사업회의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제가 청년이었을 때 수도교회에 강연 들으러 가면 문익환 목사님께서 저를 보고 따뜻하게 인사해 주셨던 게 생각나는데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일할 줄은 그땐 상상도 못했네요(웃음). ‘건설노동자 협동조합 나레건설’ 활동을 해서 문 목사님 시무하신 한빛교회의 교육관을 제가 직접 지은 일도 있고요. 2011년 박용길 장로님 돌아가시고 2016년에 ‘사단법인 통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편집자 주: 2021년 사업회명 변경) 그때 이사직을 맡았어요. 당시는 기념사업의 체계가 없이 기념일에 작은 행사가 그때그때 열리는 정도였어요. 유택인 통일의 집은 비가 새고, 정리되지 않은 곰팡이 핀 자료 상자들이 군데군데 쌓여있었고요. 목사님은 너무 큰 분인데 그분을 기억하는 것에 대한 체계가 없었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꼈어요. 체계를 가지려면 일단 자료가 정리되어야 하고, 공간이 확보되고, 홍보하고, 지속적으로 뜻을 계승하는 일이 차근차근히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제가 주임사제로 있는 걷는교회에서 봉사자 한 명을 보내서 2~3년 동안 먼지 털고 자료를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차근차근 정리해 갔어요.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딱 맞는 표현

▶사업회의 여러 사업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소감은? 
유족, 이사회, 직원, 봉사자, 후원자, 관련기관 및 개인 등 사업회와 관계된 여러 조직이 있어요. 그런데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가 특별한 것은 한 그룹이 일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 두드러지는 곳 없이 조화롭게 일을 진행해 나간다는 점이에요. 문 목사님 유족들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겸손하게 헌신하면서 돕고 계시고요. 성서에 나오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표현이 딱 적합하죠. 

 

늦봄의 다양한 캐릭터 표현해보고 싶어

▶ 문익환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우선 문 목사님의 캐릭터를 좀 다양화해서 알리고 싶어요. 진취적인 운동가로 많이 인식돼 있는데 시인으로서도, 성서번역가로서도 탁월한 분이시기도 하고요. 또 박용길 장로님하고 주고받은 편지에서 드러나는 사랑꾼의 면모 등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들이 많아요. 외모에서도 카리스마가 드러나면서도 천진한 면이 있는데 이 캐릭터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청년과 이야기할 테마로 잡은 것이 문 목사님의 표현인 ‘벽문박차: 벽을 문이라고 박차고 나가는 사람’인데, 이 마음가짐은 단순히 통일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살면서 직면하는 여러 어려움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에 대한 큰 교훈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젊은 세대가 겪는 취업, 출산, 주거, 정체성 등의 문제에 도전하고, 좌절하고, 극복한 이야기들을 모아보려고 합니다.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문익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 중에서
 
 문익환 목사님은 우리를 훨씬 뛰어넘는 ‘대륙적 풍모’가 있었다고 봐요. 시간적, 공간적, 역사적으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산 인물이지요. 문 목사님이 지닌 시야와 마음, 그의 힘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대륙적 영성’을 내년 30주기를 맞아 구체적으로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박에바>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쓰는 것 보다는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수동적 내향인, IS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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