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현장탐방>

도쿄의 윤동주, 그의 자취 따라가기(1) (2025년 3월호)

지난 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윤동주 80주기를 맞아 도쿄를 찾았다. 동주는 1942년 4월 2일부터 9월까지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해 6개월 정도 다녔다. 이후 1942년 10월부터 1943년 7월 14일 체포될 때까지 10개월 정도는 교토의 도시샤대학을 다녔다. 

일제는 1941년 조선청년징병제도를 시행했다. 이에 윤동주는 귀국하려고 차표를 예매하고, 짐을 수하물로 부쳐놓은 상태였지만 끝내 체포되어 시모가모 경찰서에 구금되고야 만다.

반면 도쿄 신학교에 다니던 문익환은 신학교 교장과 싸워가며 전학허가증을 받아, 동생 문동환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1945년 문익환은 만주에서 목회 중에 윤동주가 후쿠시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을 나올 때 동주와 몽규를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땅을 치고 통탄했다고 한다. <글: 박영옥>
 
 

늦봄의 기억 “동주 하숙집은 2층 6조 다다미방” 

문익환은 도쿄의 동주의 하숙집을 간 적이 있다. “그 집은 이층집이었고, 동주의 방도 2층에 있었다. 6조 다다미 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동주는 경도(교토)로 옮겨가려고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윤동주의 릿쿄대 학적부의 주소는 ‘칸다구 사루가쿠쵸 2쵸메413. 히라누마 영춘’이라고 적혀 있다. 히라누마는 당숙 윤영춘의 창씨개명한 성이다. 이곳은 한국기독교회관(현재 재일본YMCA한인회관)으로 당시 메이지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윤영춘이 살고 있었다. 동주는 릿쿄대 입학 수속을 위해 임시로 이곳에 머물렀다가 하숙집을 구해 이곳을 떠났다. 
 
  

학적부에 기록된 주소로 찾아가보니…

윤동주 연구가이며 ‘윤동주 시인을 기념하는 릿쿄회’ 공동대표인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가 찾은 하숙집은 두 군데다. 하지만 윤동주의 학적부에는 앞서 말한 윤영춘이 살던 주소만 있었다. 

이즈음 황석영 작가가 1989년 3월 29일 북한 조선문학예술 총연맹 초청으로 방북한 후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출판했다. 

황석영은 북에서 백인준(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을 만났는데 백인준과 대화에서 윤동주가 하숙하던 곳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다음은 황석영의 책에 나온 내용이다.  
 
“백인준 선생은 금년 일흔둘이며, 연희전문을 나와 윤동주와 동경 시절 같이 하숙을 했다고 한다. 시의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남의 땅 남의 나라에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보니, 삶은 어려운데 시가 왜 이렇게 쉽게 써지느냐고 하는 – 그 유명한 시를 쓸 무렵에 백 선생과 윤동주는 함께 살았다고 한다.” 

백인준은 해방 후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 북한 문예계에서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95년 북한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를 맞이하기도 했다. 

야나기하라씨는 백인준과 윤동주가 같이 하숙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백인준의 학적부와 예과 명부에 기재된 주소를 가지고 하숙집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예과 명부에 기재된 하숙집은 신주쿠도츠카 제2소학교 담을 따라가다 왼쪽 골목길로 걸어가면 맞닿는 곳에 도쿄 디자인 테크놀로지센터가 나온다. 이곳이 윤동주 하숙집 지번과 같은 장소이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플라워디자인학원’이었다. 
  
◇백인준 예과 명부에 기재된 주소는 요도바시구 스와쵸209 키쿠스이관, 현재 도쿄 디자인 테크놀로지센터다. 
 
 
두 번째 학적부에 기재된 주소는 첫 번째 하숙 집터에서 나와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면(약간 오르막길) 쇠고리가 연결된 독특한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현재 일본 점자도서관이다. 두 곳의 거리는 걸어서 5분 정도이다. 
 
◇백인준 릿쿄대 학적부 기재 주소는 요도바시구 스와쵸 212 이시카미댁, 현재 일본점자도서관이다.
 
  

이철 선생 도움으로 쉽게 찾아

두 곳의 장소를 찾는 중에 두 번째 하숙 집터는 점자도서관 자리라서 쉽게 찾았는데, 첫 번째 하숙 집터는 ‘일본 플라워디자인학원’으로 알고 가서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2020년 2월 16일 윤동주 추모식에 참석하려고 준비하다 코로나로 취소한 적이 있다.  이번에 도쿄에 가면서 ‘일본 플라워디자인학원’으로 검색하니 없는 장소로 나와 난감했다. 그래서 5년 전 구글맵에서 ‘일본 플라워디자인학원’로 찾아 캡처해 출력해둔 지도를 가지고 갔는데 지형에 익숙하지 않아 헤매다가 이철* 선생님의 도움으로 찾을 수 있었다.
 
 
*이철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로 『장동일지: 재일한국인 이철의 옥중기』의 저자이다. 『월간 문익환』 2024년 1월호 <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24년 1월호 인터뷰 읽기
 

[(2)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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