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

박우섭 전도사 (2025년 4월호)

늦봄이 ‘어른’으로 살아계셨다면
광장의 ‘청년’에게 무슨 말 했을까? 

 
◇지난 1월 모란공원 문익환 목사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는 박우섭 전도사
 
 
청년이 뭘까요? 

지나간 세대의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 이것이 미래라는 십자가로 만들어져 새로운 세대에게 씌워진다면, 그게 청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자랐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고난을 겪고, 그럼에서 세상을 변혁시키는 어떠한 계층을 청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청년들은 어디를 가서 말문이 막히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곳에 가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지요. 광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외치는 ‘청년’들은 그런 점에서 존경스럽습니다. 청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말하면서 진보 ‘어른’들은 정작 청년들이 가져오는 새로운 가치와 방법론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을 기특하다, 대견하다 부르며 ‘어른’이 아니게 취급하지요. 그러나 광장의 청년들은 그것에 굴하지 않는 용기로 마이크를 뺏어 쥐었습니다. 그런 용기가 없는 저는 청년이라 하기에는 부끄럽기만 합니다. ‘어른’들 앞에서 늘 입을 다물고 말거든요.
 
 

해맑게 웃는 어르신은 누구?

어느 겨울 입학했던 한신대 수유리 캠퍼스에는 문익환 목사님의 시비가 있었습니다. 저 해맑게 웃는 어르신은 누구실까, 머리와 눈썹에 눈이 소복히 쌓인 초상 앞에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그게 문익환 목사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기숙사 방에서 뭐하는 분인가 찾아보다가 악수하려고 손 내미는 김일성을 끌어안는 목사님의 영상을 보고 청승맞게 눈물을 흘렸지요.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평화는 단순히 중립을 말하며 무기를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장벽을 허물고 경계를 넘어 서로의 안녕을 챙기는 것이니까요.

 

광장의 ‘청년’ 문익환으로 

지난 추모식에서 ‘청년’으로 발언해달라고 했을 때, 문익환 목사님이 지금의 ‘어른’으로 살아계셨다면 오늘날 광장의 청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 하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른’으로 불릴 나이에 고난을 택했습니다. 미래를 새로운 세대에게 떠넘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짊어지고 경계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지금 이 땅에 있었다면 ‘어른’이 아닌 광장의 ‘청년’ 문익환으로 오늘도 미래를 짊어지고 경계를 넘어서겠지요.
 
 
 
※박우섭
30대 청년, 창신동 청암교회 전도사, 그리고 무지개신학교 기획단원을 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이며, 예비군 대체복무로 매년 4일씩 구치소에 들어간다.

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