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특별 좌담>
청년 이사 3인에게 늦봄을 묻다(2) (2025년 4월호)
▶평화통일 문제를 청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구시대적 통일관…새로운 논의 필요
▲예인: 통일 단체들이 지금 다 세대교체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제가 근래에 통일 단체 운영하시는 분을 서너 분을 만났어요. 근데 다들 이어갈 청년이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마 학생 운동이 점차 사라지면서 계보가 끊긴 탓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요즘 드는 생각은 통일운동이라는 거를 떠나서 뭔가 대북관, 통일관 자체가 너무 올드하다고 느껴요. 심지어는 북한은 두 국가론을 선포하면서 남북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였는데 남한 안에서는 북한의 관계나 통일관에 대해서 그만큼 새로운 논의를 그동안 진행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남한은 아직 너무 당위적인. 예를 들어 단순히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하나의 코리아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질 않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가는 수순이 맞는데. 진보 보수가 다 굉장히 구시대적인 통일관, 대북관을 가지고 있고. 이게 또 정치적으로도 너무 얽매여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을 받아요. 거기에 국가 보안법이 또 아직 남아있으니 이 담론이 계속 확장되지 못하고 있고요.
문익환 목사님은 통일 운동가로만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문익환 목사님을 가장 존경하는 포인트는 어떤 거냐면. 어떤 거냐면 통일을 위해서 북한에 갔다, 그 점은 아니에요. 문익환 목사님이 감옥에 계실 때 어떤 사람이 고문을 당해서 친구들 이름을 다 말해 버렸대요. 그 사람이 문익환 목사님을 복도에서 만났는데 너무 벌벌 떨면서 문익환 목사님 눈도 못 마주치더래요. 그때 목사님이 그 사람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난 아직도 몽정을 해”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해서 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너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걸 이야기해 주려고 한 거죠. 통일을 다들 잘 모른다고 하지만 모두 이 세상이 더 좋아지는 거,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거,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에 이바지하기 위해 사회 활동을 하잖아요? 그런 관점에서도 통일에만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문익환이라는 인물의 뜻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게 우리 사회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접근하면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주변에 통일을 의제로 하는 청년 없어
▲한솔 : 저도 거의 비슷한 견지로 이 문제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나이만 어려지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코어가 남아야 하는데. 시민단체라고 하면, 설득력 있는 담론을 계속 끌고 가는 애드보커시(의제활동)가 일종의 시민단체 본래의 업이잖아요? 그걸 위해 모금하고 기획하고 다양한 방법을 쓰는 건데. 과연 엄청 설득력 있게 통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게 안 됐다면 과거에 도그마(절대적 신념)가 있는 건가? 아직 깨지 못하고 있는 진영 논리가 있는 건가? 정파가 있어서 그걸 유지해야 하는 건가? 저도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서 고민인 지점이 많고요.
또, 이렇게 활동을 하다 보면 주변에 통일 활동 하는 청년들을 많이 데리고 와달라 이런 요청을 받아요. 근데 제 주변에는 통일을 의제로 하는 청년들이 없어요. 물론 있기는 한데 제가 몇 안 되는 그분들하고도 연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30주기에서도 늦봄통일상 회의에서도 나온 논의랑도 비슷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 계엄령 이후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계엄령 이전보다 통일에 대한 언급이 조금 더 늘었어요. 계엄이라고 하는 사태에서 사람들이 처음에 공포감 느꼈던 거는 ‘전쟁이 난다’라고 바로 인식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엄, 전쟁, 통일, 평화 이렇게 쫙 연결되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통일을 상기한 느낌이 있어요. 이걸 통일문제, 분단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청년들이 이게 분단 문제라는걸 인식하게 되었고요. 더욱 확장하자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폭력, 전쟁 이슈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통일이라는 의제가 조금 시대성을 덜 반영한다고 느껴지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지금까지 이사회로 함께하며 느낀 점은
받아주고, 열려있고, 들어주는 자세
▲윤재: 지금까지 기념사업회와 함께하면서 좋은 건 제 의사를 많이 존중해 준다는 점이에요. 청년을 상징성으로 쓰는 게 아니라 계속 의견을 묻고 참여하게 독려하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저는 다르다고 느꼈어요. 또 되게 색다르다고 느꼈어요. 영성 프로그램에서 하는 명상이나, 전시회나 그런 면에서도 참신하고 뻔하지 않은 기획들이 많아요. 또 함께하는 분들이 다들 받아주는 자세, 열려 있는 자세, 들어주는 자세를 가지고 계신다고 느껴요.
기념사업회는 가장 Young한 단체
▲예인: 저는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를 단순히 통일 단체라고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가정한다면 기념사업회는 가장 영(Young)한 단체라고 생각해요. 또 이사진들을 보고 되게 놀랐던 게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함께 계시더라고요.
▲한솔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표현을 영(young)이라고 했지만, 이 안에는 열려있고 유연하다는 표현이 다 들어가 있네요.
▲예인: 네, 영(young)이라고 표현했지만, 굉장히 열려있고, 유연하고, 포용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래서 문익환스러운.
▶앞으로 나아갈 길은
광장의 열기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힘으로
▲한솔 : 광장에서의 일이 끝나고 나면 각자 자리에서 이제 하나둘씩 주체적으로 성과를 낼 시기가 온 것 같아요. 탄핵 정국을 맞아 이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들을 광장에서 보였고, 이제 이게 끝나면 각자 할 일이 많을 텐데 그걸 충분히 이끌어갈 힘도 생기는 시기가 된 것 같아요. 다만, 이걸 파편적으로 성과를 내다보면 그냥 각개전투하다 끝날 수도 있으니까, 각자의 성과들을 어떻게 잘 엮을 수 있을까? 요즘도 비상행동 사람들 만나면 맨날 이 이야기를 해요. 이 광장 안의 열기를 한국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드는 힘으로 역할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
<글: 기림>
[📌여담 1] “윤석열 찍었다는 친구 많이 반성하고 있죠”
▲예인: 지금 누군지 이야기는 안 해주는데 제 친구 중 한 명이 윤석열을 찍었다는 양심 고백이 나왔어요. 누군지는 친구들이 저한테는 안알려주는데 근데 그 친구도 지금 많이 반성하고 있고.
▲한솔 :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라고 해요. 그럼 사회적으로 용서해 줄 수 있어(웃음).
▲예인: 저한테는 절대 이야기를 안 해주는 게 제가 초반에 윤석열 찍은 사람들에게 주기적으로 카톡을 보냈어요. 여의도 집회할 때는 “너무 춥다, 누가 윤석열 찍었냐?”, 윤석열이 계엄 선포하고 뭐 나올 때마다 “이제 기분이 어때?”하고 장난으로요(웃음).
[📌여담 2] “행진할 때 노래따라 부르느라 코인노래방 안 가”
▲예인: 요즘 시위 문화가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아이돌 노래며, 디제잉까지. 그래서 제가 원래 코인노래방 가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 코인 노래방을 안 가요. 행진할 때 노래 따라 부르느라. 그래서 늦봄학교 후배 한 명이 저보고 행진 중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비상행동 심규협 계좌에 500원씩 넣으라 그래요.
(일동 폭소)
송예인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다. 늦봄문익환학교 출신, 한신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문익환 통일의집과 인연이 깊다.
이윤재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 (사)바른선거시민모임중앙회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진천군협의회 자문위원으로 역임하는 등 지역에서 다양한 청년 활동을 했다.
이한솔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이사로 현재 사단법인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
월간 문익환_<특별 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