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이달의 기록>
1964년 6월에 떠난 늦봄과 봄길의 ‘허니문’ (2025년 6월호)
“결혼 20년 만에, 신혼여행 떠나듯…”
대구, 해인사 거쳐 마산 3·15의거탑과 거제 애광원 방문
1964년 6월 13일 늦봄과 봄길은 결혼 20년 만에 기회를 얻어 여행길에 올랐다. 서울역을 출발, 대구, 해인사, 마산과 진해, 거제도(애광원)를 잇는 여정이었다. 21일에도 거제 장승포 거리를 거닐었다는 걸 보면 10일 정도의 긴 여행이었을 것이다. 아래는 여행기의 일부다.
“언젠가 다시 해인사를 찾을 생각을 다짐하면서 우리는 다시 버스로 마산을 향해 떠났다.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는 곧장 마산에서 배를 타고 최종 목적지 거제도로 가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여행의 매 순간을 즐기는 아내는 마산에서 보고 가야 할 것을 벌써 단단히 마음에 간직하고 왔던 것 같았다. 그것은 4·19의거탑이었다.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던 자신이 좀 어처구니없게 부끄러웠다. 의거탑 쪽으로 가는 합승을 타는 아내의 얼굴에는 벌써 흥분과 감격의 홍조가 감도는 것이었다. 그러나 4·19의거탑을 찾아간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은 뜻밖에도 3·15의거탑이 아닌가? 3·15는 우리에게 치욕의 날이지만 마산 사람들에게 그것은 영광의 날이었다. 마산에서는 3월 15일 투표함이 개표소로 가는 도중에 이미 ‘의로운’ 불길이 일어났다고 일러주는 사진사는 퍽 자랑스러워 보였다. 지금은 고요한 이 마산의 지층 속에선 3·15의 의로운 일이 지금도 뜨겁게 굽이치렷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내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옛 어른들이 거룩한 곳을 찾아 순례 행각을 한 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익환 전집6』 수필3. 「보고 듣고 느끼고」 1964년 6월)
◇늦봄과 봄길이 4·19의거탑으로 알고 찾아갔던 3·15의거탑.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의거 2년 후 1962년 7월에 세워졌다.
“한 여인의 무서운 뜻으로 이룩된 애광원의 친절과 환대는 거제도의 명물 중에도 명물이다. 나는 그 애광원에 넘치는 뜻을 ‘무섭다’는 말 한마디로밖에 나타낼 길이 없다. 한 여인의 정성 어린 뜻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느냐는 것을 이처럼 강렬하게 보여 주는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유산될 수 없는 풍만한 뜻의 잉태, 이것이 때늦은 허니문에서 받은 귀중한 선물, 실의의 시대에 주고 싶은 우리의 선물이다.”(『문익환 전집6』 수필3. 「보고 듣고 느끼고」 1964년 6월)
◇ 1964년 6월 여행 후 봄길이 남긴 거제도 애광원 방문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던 『새가정』 1964년 9월호에 실렸다. 글 속의 김인순(김임순의 오기임) 애광원장은 1925년생으로, 2024년 한신대학교에서 ‘한신상’을 수상했다.
◇ 2006년 7월 19일 다시 애광원을 방문한 박용길 장로가 김임순 원장과 방문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용길이 1987년 옥중의 문익환 목사에게 보낸 편지.
애광원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글: 만당>
월간 문익환_<이달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