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

영등포산업선교회 손은정 목사 (2025년 11월호)

제 발에 파스를 붙여주시던 목사님, 내겐 잊지못할 ‘세족식’

 
 
◇지난 8월 23일 늦봄산책길-“늦봄과 노동자의 새봄” 참가자들과 함께한 손은정 목사. (왼쪽에서 3번째)

 
 

#1. “너무 목적에만 이끌려서는 안 된다” 따끔한 한마디

저는 문익환 목사님을 가까이서 뵐 기회가 딱 한번 있었는데 1990년대 초반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장신대 비상총학생회 임원이었던 저는 문익환 목사님을 사경회 강사로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아뿔!!! 목사님을 그냥 돌아가시게 하고 말았습니다. 구약성서의 최고 권위자이신 문 목사님이 사경회에 오셨는데, 당시 학장님은 문 목사님의 방북전력을 문제 삼아서 강연 불가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 날 목사님은 강연장 대기실에서 학장의 허락을 기다리며, 몇몇 학생들에게 감옥에서 배우신 파스요법을 전수하셨습니다. 제 발에도 그 작은 파스 5-6조각을 붙여 주셨는데, 잊지 못할 세족식처럼 남았습니다. 그 날 들려주신 따끔한 한마디 충고도 잊을  없는데, ‘너무 목적에만 이끌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였고, 그 말씀은 지금도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2. “전태일의 마음은 늦봄에게 새봄”

저는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산선)에서 일하며, 7・80년대에 문 목사님께서 우리 산선에서 설교와 강연을 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올 여름 8월에 <늦봄길 산책>에 초대를 받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이것을 언급했고, 송효순 집사님(70년대 대일화학 노동자, 노동수기 서울로 가는 길 저자)께 들은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문 목사님은 산선에 오셔서 주로 구약의 미가, 아모스 예언서들을 가지고 말씀하셨어요. 늘 노동자의 편을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두려움이 싹 사라지고 용기가 솟았어요.” 
 
노동자에 대한 목사님의 마음은 몇 권의 시집에도 잘 담겨있습니다. 시집 『꿈을 비는 마음』, ‘부활절 아침에’라는 시에서, 목사님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사랑하다가 한 줌 재가 된 전태일의 마음에서 새봄을 보셨고 부활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전태일의 마음은 늦봄에게 새봄이었습니다. 1980년 8월에 쓰신 <정병환씨>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습니다.  
  
마흔네 살
한창 나이도 훨씬 넘은
정병환씨에게
서울 서초구 화물터미널 정기화물취급소는 창살 없는 감옥이란다
2.5톤 트럭 쉰 대에 실릴
화물을 지어 나르는 하역 작업은
하루 열여섯 시간 뼈 빠지는 초중노동 월수 40만원
부부 맞벌이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단다.(후략)
 
1980년에 쓰신 시인데, 이 시는 45년이 지난 지금도 과로, 과속, 과적에 내몰리는 화물노동자들과 플랫폼 택배노동자들의 현실과 흡사합니다. 이 시를 읽다보니 로켓 배송, 당일 배송을 위해 야간노동을 하다가 작년 5월에 사망한 故정슬기님과 지난 5년 사이 쿠팡에서 사망한 25명이 넘는 노동자들과 유족들의 고통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문 목사님께서 계시다면,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갉아먹는 야간노동은 지금 중단해야 한다고 매섭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 새벽배송을 거부할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연대가 노동의 새봄을 불러오지 않을까요?  
  
  

#3. 1980년 8시간노동쟁취 승리 예배때 목사님이 설교

영등포산업선교회는 내년에 ‘8시간노동쟁취기념탑’을 세우려고 합니다. 매일 12시간씩, 주말엔 18시간 곱빼기 노동을 했던 1970년대에 하루 8시간 노동제는 법에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참 이상적이고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 과자, 껌, 사탕을 만들던 해태제과 여성노동자들이 회사의 온갖 구타와 회유와 탄압속에서 쟁취한 것입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5년 동안 싸워서 1980년 3월 2일에 쟁취했습니다. 이것은 한국노동운동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8시간 쟁취를 축하하며, 승리 잔치와 저녁예배가 3월 23일에 있었습니다. 이때 설교자가 누구셨을까요? 문익환 목사님이셨습니다. 3월 9일, 노동절 기념예배 설교도 문 목사님께서 하셨다고 나오는데 이 당시 문 목사님은 영등포산선의 협력목사이셨나 싶을 정도입니다.  

한 가지 꼭 공유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 운동의 기초에는 영등포 산선의 100-150여개의 소그룹 모임과 노동교육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부모를 만나 못 배운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사회가 공순이 공돌이라고 폄하했던 그 시절, 노동자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자랑스런 노동자가 되고, 정의와 평화의 일꾼이 되는 과정. 거기에는 생활세계에서 출발하여 노동자들의 권리인 근로기준법을 생생하게 배우고 익힌 소그룹 교육이 탄탄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교육학자 문동환 목사님은 산선의 이 노동교육이야 말로 탁월한 민중교육의 모범이자 페다고지(교육) 현장이라고 하셨다지요. 앞으로 세워질 ‘8시간노동쟁취기념탑’은 지난 시절의 역사 기념탑이 아니라, 노동・인권교육과 그 저항과 승리의 역사를 되새김질하는 푯대가 될 것입니다. 전자단말기와 앱을 통해 고용과 해고, 작업이 지시되고 통제되며 책임자는 보이지 않는 비정한 노동현실에서 노동자의 새봄을 불러오기 위한 깃발과 호각소리가 여기저기서 나부끼고 들려져야 할 것입니다. 저희도 다시 연대의 깃발과 호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손은정 목사 
손은정 목사는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6개월간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노동훈련 받았다. 그 후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며 협동조합에서 대속의 은총을 배웠고, 산재문제 현장에 연대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껴가고 있다. 최근에는 1970년대 노동교육 자료를 읽으며, 청년 전태일이 마지막에 자신을 내놓으면서까지 지키라고 했던 그 근로기준법이 무엇인지를 익혀가고 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 (1998), 590쪽을 보면 ‘8시간 노동쟁취 승리 예배’에서 문익환 목사님이 설교자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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