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나가 유가족들 손잡고
생명 위협받는 시대의 죄악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했을 듯
◇박영진 열사의 어머니를 위로하는 문익환 목사.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삼풍백화점, 세월호, 이태원, 무안 제주항공…
삼풍백화점, 가습기살균제, 대구 지하철, 세월호, 이태원, 무안 제주항공.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각자의 소우주(小宇宙)이다. 내가 나의 우주를 지키고 싶듯, 타인의 우주 또한 그만큼의 넓이와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타인의 우주가 상처받고 사라질 때, 우리가 슬퍼하고 위로하는 이유는, 그의 아픔 속에 투영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의 우주를 온기(溫氣)로 지켜내고 싶어 하는 간절함 때문이다.
늦봄은 단순한 사고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
늦봄의 주요 활동시기 당시의 가장 큰 시대적 모순과 투쟁의 대상은 제도적 빈곤, 군사독재, 민족분단이었다. 하지만 오랜 사회운동과 투옥 등에서 비롯된 육체적 한계가 실제보다 늦게 찾아왔다면, 늦봄은 앞서 언급된 참사들에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했을 것이다. 그는 무너진 백화점 더미, 섬유화된 폐, 뜨거운 지하, 차가운 바닷속, 어두운 골목길, 황량한 벌판에서 스러져간 생명들을 보며, 그것을 단순한 사고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보다 이윤을 앞세운 시대의 죄악, 내 이익이 남의 생명보다 소중하다는 천박함을 강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지위 유지를 위해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거나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행위,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려고 특정 개인에게 과도한 공격적 언행을 하는 행태까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광장에서 유가족과 생존자의 손을 잡고, 국가의 존재 이유가 고통받는 소우주들을 지키는 데 있음을 외쳤을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의 안전이 무너지고 생명의 존엄이 위협받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모순들을 맞이하고 있다.
정신은 사회가 기억하지 않을 때 사라진다
기존의 정치, 법 제도가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을 가중한다면,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류는 언제나 과거 거인들의 어깨 위에 있음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정신은 개인이 사망했을 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기억하지 않을 때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삼풍백화점 붕괴 등 참사를 언급한 1995년 통일맞이 7월 서신.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대구 지하철 참사, 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화려함과 세련됨을 과시하던 삼풍백화점의 붕괴, 이런 사고들이 우리 겨레가 통일되지 않으면 풀리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통일에 대해 거는 기대가 너무 높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삼풍 백화점 붕괴는 중앙정보부 창설에 관여했던 회장의 경력이나 사람의 생명보다 매출을 앞세운 돈 중심의 사상에서부터 붕괴위험을 사전에 과학적으로 타산하지 못했던 기술자들의 보신주의까지 분단 50년을 이끌어온 질곡의 역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995년 통일맞이 7월 서신)
<글: 김진성>
김진성
사회적 참사에 관심이 많은 40대 대한민국 남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