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니와 늦봄>

김준엽 지방정부 국회/중앙부처 대외협력관, 전 통일의집 직원 (2026년 1월호)

“나에게 통일의집은 궁궐보다 더 아름답고 위대해”

 

목사님은 못만나도 ‘그분의 삶’을 만나


▲만남


‘월간 문익환’을 만드시는 분들이 저에게 글을 요청하시며 주신 타이틀이 ‘나와 늦봄’입니다. 감히 늦봄 문익환 목사님(이하 ‘늦봄 목사님’)과 동반의 반열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부담감을 백 배 느끼면서 ‘만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늦봄 목사님과 단 한 차례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나 혼자만의 경험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단어입니다. 상대가 있어야 하고, 상대 또한 나를 경험해야 성립되는 단어입니다. 고로 늦봄 목사님과 저의 관계에선 ‘만남’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용기를 내는 것은 비록 늦봄 목사님과 직접 만남을 가진 적은 없지만 그분이 살다 가신 통일의집과 그분의 삶이 묻어 있는 수천 점의 유물과 사료를 통해 ‘그분의 삶’을 만났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늦봄과 나를 연결해준 ‘통일의집’

 

 

◇지난 2016년 4월 9일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열린 사단법인 통일의집 창립총회에 함께 한 김준엽 대외협력관(제일 오른쪽).


▲20150406


2015년 4월 6일 비 오던 월요일은 제가 통일의집에 첫발을 내디딘 날입니다. 머릿속을 짜내 첫날 만난 통일의집의 기억을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인수봉로에서 이어진 낮은 경사의 골목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통일의집’이라는 봄길 박용길 장로님(이하 ‘봄길 장로님’)의 친필 현판, 대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왼쪽 화단에는 라일락, 그리고 그 오른편에 수호신처럼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감나무, 그 앞의 작은 마당, 마당 안쪽 끝에서 끝없이 자라고 있는 목련 나무, 그 앞에 자리 잡은 아담한 단층 주택,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제가 사무 보던 오래된 멋진 책상을 품고 있는 거실, 현관 바로 옆 작은 방은 늦봄 목사님의 모친이신 김신묵 권사님께서 기도하시던 방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의 주방과 건넌방, 건넌방 맞은 편에 있는 작은 복도를 지나면 늦봄 목사님과 봄길 장로님의 안방이 등장합니다. 이곳이 바로 저와 늦봄 목사님의 삶을 연결해 준 오늘 제 기억 속 통일의집 입니다.

 

독립과 통일로 세워진 늦봄의 집


▲통일의집


늦봄 목사님께서 험준한 시대 준령을 넘기 위해 종일 애쓰시다 몸을 누이시던 ‘집’, 그분과 평생 동행하신 봄길 장로님께서 독서하고 기도하시던 ‘집’, 부모의 고난과 투쟁을 지켜보기 위해 남다른 용기와 신념으로 무장했을 네 남매가 숨 고르며 휴식하던 ‘집’이 바로 통일의집 입니다. 또한 목사님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통일의집은 북간도이고, 교회이며, 민주주의고 통일입니다. 저에게 있어 독립과 통일로 세워진 통일의집이 어느 왕조의 궁궐보다 어느 시대의 성당보다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김준엽

2015년 4월 6일부터 총 908일 동안 통일의집에서 일하며 늦봄 문익환 목사님과 봄길 박용길 장로님의 삶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현재는 작가이자 지방정부 국회/중앙부처 관련 대외협력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