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기록지원단

좋은 제목의 [모범답안] 찾기

제목은 참 어렵습니다.  

편지글에 제목 달기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박용길 장로님의 편지글에 제목달기는 난이도가 매우 높은 작업입니다. 특정 주제를 서술하는 형식도 아니고, 일상에 대한 여러가지 내용이 한꺼번에 병렬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문체도 어려움을 더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카이브를 위해서 ‘일관성 있는 제목’은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통일의 집 기념사업회와 디지털 지원단의 고민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아키비스트마다 너무나 다를 수 밖에 없는 제목달기. 기본적인 지침이 필요했습니다. 

 


한신대 통일의 집 수장고에서 '제목 달기'의 기본 원칙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유서형 인턴, 오명진 교수, 조만석 총무, 박경혜 회원, 백문기 회원.

 

2021년 10월 26일. 한신대 수장고에서 이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아카이브를 총괄하시는 오명진 교수님이 3개의 편지글을 제시하셨고 참석자들은 각각의 관점으로 제목을 달았습니다. 한명씩 돌아가며 제목을 발표했고, 그렇게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 중 한 사례를 보면…

 

아빠께

1977. 4. 9

몇일 사이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어려운 일도 잘 견디시고 늘 좋다고만 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저를 조금 머저리라고 생각한답니다.

당신 수첩에서 예쁜 나비우표가 나와서 붙입니다. 요사이 봄비가 자주 내리고 마당에 목련이 처음으로 활짝 피어서 사진을 찍어두려 합니다.

두번째 맞으시는 부활절. 뜻 깊은 날리기를 빕니다.

구약성경이 8일에 나온다고 했는데 가보아서 곧 보내려고 합니다(*설명 참조). 교회도 다 평안하며 전 권사님이 미국 갔다 오시면서 곤색 셔쯔와 넥타이를 사오셨읍니다.

영금이에게서는 꽃으로 메운 십자가 그림 축하장이 왔읍니다. 민흡이가 5월 5일 결혼한다고 당신 생각을 한답니다.

4월 3일 주일부터 4월 4일 아침까지 제직수련회가 있었고 전주만 가면은 가까워서 좋은데 멀리 가시는 분 동행하느라고 늦게 가서 기대리시게해서 미안했읍니다. 신철 아빠는 본국으로 도라와 대기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직 언제 도라오시는지는 모릅니다.

소은이는 학교 다니고 황필이는 잘 뛰어다니고 집을 신일학교 근방으로 이사한다고 합니다.

소은아빠는 시험을 다시쳐서 합격했다고 합니다.

남길언니가 몹시 궁금해하고 자주 편지도 주십니다.

아모조록 안녕히 계시다가 봅기를 원 합니다.

창근네 집에 오래만에 와서 두어자로 소식을 드립니다. 케리총무가 오셔서 아버님 어머님 선희누이 소식 들었읍니다. 모두 안녕하시다구요.

삼춘한테서는 편지 왔는데 소식주시면 필요한것 보낼것 보내드리지요. 속옷을 원하셨드군요


(설명: 구약성경이 나온다는 것은 문익환 목사가 번역위원장으로 참여한 신구교 공동번역 구약이 출간되어서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1977년  4월 9일 박용길 장로가 옥중으 문익환 목사님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글에 대한 5명의 제목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1. 감옥에서 두 번째 맞는 부활절

2. 내가 조금 머저리?

3. 옥중 두번째 부활절, 창근네 집에 와서 

4. 두번째 맞이하는 부활절…마당에 목련이 활짝 피었어요

5. 목련에 담긴 4월

 

‘옥중에서 맞이하는 두번째 부활절’은 시점을 알려주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내가 조금 머저리’는 특이한 표현에 집중한 것입니다. ‘목련에 담긴 4월’은 편지의 감성을 포괄한 제목입니다.

모두 이유있는 제목입니다만, 아카이브를 위해서는 제목의 전체적인 통일성과 일관성을 위해 ‘제목달기’의 기본 원칙이나 지침이 필요합니다. 

열띤 토론을 거치면서 대강의 원칙들이 잡혀 나갔습니다. 

대체적인 의견들은 ‘일상적임’ 보다는 ‘특이함’에 주목 하자였습니다. 즉, 반복적인 신변잡기 보다는 해당 편지글에만 등장하는 이벤트를 주의해서 보자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논의 결과를 요약하면... 

 

1. 특별한 주제가 있다면 그것에 먼저 집중하자.

2. 시점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뽑아내자.

3. 1번과 2번이 명확하지 않다면 특이한 표현이나 감각적인 문구를 담아내자.

4. 키워드를 활용하고 제목에는 키워드와 중복되지 않는 내용들을 표현하자.

5. 내용보다 너무 앞서가는 제목은 피하도록 하자

 

물론 대강의 원칙입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겠지만 아카이브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이런 기본 지침을 갖고 제목을 달 수 있다면 보다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제목은 참 어렵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제목달기의 모범답안’을 찾긴 힘들었지만, 함께 토론하는 그 시간만큼은 적어도 그 방향성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디지털기록 지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