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편지

정말 정말 보고픈 당신께

 

어느새 40일이 되었군요. 그동안 너무 애를 태우느라고 머리가 백발이 되지 않았나 하고 걱정해 본다오. 걱정도 팔자지? 전에 다른 목사님들이 안달하는 것은 바깥 사람들이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사태평이라던 말이 얼마나 참이냐는 것을 머리카락만큼도 에누리 없이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소. 벌을 줄 수 없는 법은 아무도 얽맬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어디까지나 자유롭다는 것을 날마다 느끼고 있소. 저번 한일 축구전 방송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갇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성서번역의 중책을 감당 못 한다는 책임감만 어깨를 누르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은 정말 조금도 부자유를 느끼고 있지 않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자문해 본다오. “내가 정말 갇힌 것인가?”고. 

건강은 말할 수 없이 좋소. 40일 동안 두통으로 약을 먹어 본 일이 한 번밖에 없었다면, 나의 건강, 정신 상태를 알고도 남음이 있겠지요. 그것도 바로 오늘. 음식은 사식, 간식 등으로 아무 불편이 없구요. 저녁이 3시30분에 들어오기 때문에 점심은 안 먹기로 했소. 앞으로 나가서도 이렇게 하루 2식을 했으면 썩 좋을 것 같은 느낌이군요. 내가 있는 棟이 여기서는 특등 棟이요. 햇빛 잘 들고, 공기가 잘 통하고, 냄새로 하나 없고. 하루 세 번 더운물을 한 바께쓰씩 주어서 몸도 집에 있을 때보다 더 깨끗하죠. 옷은 내복을 벌써 다 벗었소. 하나도 춥지 않군요. 내복이나 세타 가지고 있는 것을 베개로 쓰고 있소. 혹시 싸늘한 날이 있을 때를 생각해서 얇은 메리야스 내복을 (내가 입던 것) 아래위 한 벌 들여보내 주시오. 

거의 밤마다 당신 꿈을 꾸지요. 지난밤에도. 그 흰 양복을 입은 모습, 얼마나 신선해 보였는지 모른다오. 언제 나갈지는 모르지만, 나가면 륙색에 간단한 차림으로 코스모스 길을 당신과 같이 정처 없이 걷고 싶은 생각이요. 가다가 피곤하면 냇가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저녁때가 되면 어느 마을에나 들어가 묵기도 하고, 버스가 오면 올라타고 가다가 또 내리고, 이런 식으로 말이요. 우리 지난 여름 강릉에서 돌아올 때 일 생각나지요?  이건 꼭 실천해 보고 싶은 생각이요. 처음에는 집 생각, 카나다 생각, 꽤 궁금하더니 “모르겠다. 하느님께 맡기지” 하고 나니, 마냥 마음이 편하구려. 죄를 짓고 들어왔다면야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요. 재판 같은 건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소. 당당할 따름이니까.

 

중간에 편지 일부가 분실됨

 

나는 이렇게 차분히 오랜만에 기숙사 방에 처박혀 공부하는 심정이니까 하나도 염려하지 말고 밖에서는 명랑하게 잘 먹고, 잘 지내며, 즐거운 날을 기다려 주시오. 견우직녀의 즐거운 날을.

하느님의 은총이 하루도, 한 시간도 우리 위를 떠나지 않을 것이오.  굳나잇.

 

1976 4.11 밤

 

감옥에서 보낸 첫번째 편지로써 건강과 수감생활에 대한 얘기과 아내에 대한 애뜻한 감정을 표현. 총5장의 편지 중 중간 두장이 분실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