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비는 마음

나의 코스모스에게

 

오늘 아침 시편 131편을 읽다가 “젖 떨어진 어린 아기, 어미 품에 안긴 듯이 내 마음 평온합니다”라는 구절을 만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오. 바로 그것이 지금의 나의 심정. 그러니 나 때문에는 너무들 마음 안 쓰는 게 좋을 거요. 그 대신 나도 어머님이 입석표로 어떻게 서울까지 가셨을까, 도중에 자리라도 잡으셨을까, 이틀에 걸친 노독이 풀리셨을까, 그런 걱정은 않기로 했소. 저번 면회 때 어머님이 어찌나 싱싱해 보였는지 몰라. 당신은 좀 안돼 보였지만. 그저께는 당신이 와서 꽤나 걱정을 하고 갔나 보죠? 보안과장, 소장님까지 와서 병문안을 하고 가셨으니.

어제 링거액에 이뇨제를 넣어서 한 대 맞았더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리에 부기가 완전히 가셨군요. 이것이 일시적일지 아닐지는 며칠 두고 봐야 하겠죠. 당신이 내 말을 믿는 것을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나 본데, 웃기지 말라고 하시오. 나는 지금까지 몸이 안 좋으면 언제나 안 좋다고 했지 그걸 감춘 적이 없었으니까, 한 번도. 저번 날 내가 너무 먹어서 성근이는 좀 걱정이 되었나 본데, 사실 그날은 점심을 걸렀다오. 그동안 소화에 지나치게 자신을 갖고 마구 먹은 것이 좀 안 좋아서 1일2식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차에 어제는 기어코 속탈이 나고 말았지 뭐요. 그래서 어제 하루 단식하고 났더니 속이 그렇게 깨끗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군요. 난 이제 하루 이틀 단식하는 것쯤은 오히려 즐거울 정도요. 오늘 점심부터 한 사흘 죽을 먹겠소. 무엇이나 지나친 자신은 안 좋은 일인 것을 깨달았소. 단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강창순 집사도 단식 요법을 써 보는 게 어떨지. 한 번 내가 그러더라고 하며 생각해 보라고 하시오. 단식 전문가 옆에서 하면, 강 집사 같은 경우 근본 치료가 될 거라고 생각되는데, 어떨는지.

저번 면회한 후에 내 가슴을 스치는 검은 그림자가 생겼소.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우리 전 국민이 그렇게도 자유를 외쳤건만 완전한 자주독립은 아직도 우리를 외면한 채로 있거든요. 이제 민주적인 민족통일이 우리 전 민족의 염원이긴 하지만, 우리 민족사가 또다시 이 염원을 외면한 채 지나쳐 버릴 것이 아닌가 하는 한 가닥 검은 그림자가 자꾸만 머리를 드는군요.

민주 원칙으로 이 나라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정부와 국민이 다를 수 없죠. 광적인 공산주의자를 제외한 대다수 이북 동포들의 염원도 우리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되구요. 그리고 이 민족의 염원에 기도의 불길을 붙여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구교의 장벽이 있을 수 없고 보수·진보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없죠.

그런데도 ‘통일’이라고 하면 한 가닥 불안을 느끼며 선뜻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요? 다른 두 이데올로기, 두 체제의 통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느냐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이건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일, 미루면 미룰수록 문제는 그만큼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겠소? 통일의 문빗장은 내려졌는데도 굳게 닫혀 있다고만 생각하고 이 민족은 그 대문 앞에 그대로 지나쳐 버리려고 하지 않는가, 또 그럴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만 하면 몸살이 날 것 같군요. 불신앙(不信仰)인지도 모르지만. 이 불신앙을 이기는 길도 기도하는 길밖에 없겠죠. 이런 심정에서 오래 마음속으로 궁글리던 시 한 편을 미흡한 대로 아래와 같이 읊어 보았소.

 

 

개똥 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남도 몰래 저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 놓고

진주 같은 꿈 한 자리 점지해 주십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소?

155마일 휴전전을

해 뜨는 동해 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동해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다라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소?

철들고 셈들었다는 것들은 다 죽고

동남동녀들만 남았다가

쌍쌍이 그 앞에 가서 화촉을 올리고

그렇지, 거기는 박달나무가 서 있어야죠

그 박달나무 아래서 뜨겁게들 사랑하는 꿈,

그리고는 동해 바다에서 치솟는 용이

품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얻어 딸을 낳고

아침 햇살을 타고 날아오는

황금빛 수리에 덮치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소?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 바다로 서해 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의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산과 들을 뛰노는 짐승이 되고

신나게 하늘을 나는 새들이 되고

펄떡펄떡 뛰며 날쌔게 헤엄치며

강물과 바다를 누비는 물고기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비나이다.

밝고 싱싱한 꿈 한 자리

멋지고 아름다운 꿈 한 자리

평화롭고 자유로운 꿈 한 자리

부디부디 점지해 주사이다

 

「꿈을 비는 마음」이라고나 제목을 붙이죠. 짐승들도 꿈을 꾸는지 모르지만, 꿈이야말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소. 우리를 과거에 매는 꿈 말고 미래를 향해서 끌고 가는 꿈, 그런 꿈이 없는 민족은 이미 앞날이 없는 민족이지요. 릴케의 기도 한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당신 (하느님)이 꿈을 꾸신다면, 나는 당신의 꿈이지요.” 내가 송두리째 하느님의 꿈이 된다는 생각, 얼마나 기막힌 신앙인지! 요새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나는 이런 기도를 드린다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지금 먹는 것이 내 몸속에서 당신의 뜻이 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정의의 목소리, 당신의 사랑의 몸부림이 되게 해주십시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이름으로, 또 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같이 헐벗고 굶주리는 당신의 아들, 딸들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정말 김경수 목사의 『이 상투를 보라』는 10년 체증이 떨어지는 시집이었소. 왜 그 시집이 이제야 들어왔죠?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풍토가 되어 있는 우리 시단에 영일의 시와 함께 굵직한 남성적인 (좀 거칠지만) 목소리를 울려 주어서 오뉴월 가뭄에 소낙비 맞듯 시원했었소. 영일의 시가 무서운 현실 비판이라면, 김경수의 시는 적극적인 자기주장의 시라는 점에서 두 시인은 각기 제 나름의 목소리에서 흐뭇하군요. 안 박사의 跋文도 멋지고. 안 박사도 제법 시를 알거든. 무시 못 하겠어.  요새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안 박사 세타 애용한다는 말과 함께 跋文 칭찬도 전해 주시오. 대부분 시인이 詩란 무력한 거라고 하지만, 그건 정말 시가 무언지 모르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소. 

나의 「마지막 시」는 나의 몸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을 때마다 나를 거뜬히 밀어 올리는 힘이었거든요. 저번 「모래알들의 기도」 같은 시를 얻고 나면 1년 6개월 영창 생활이 보상되고도 남는다는 기쁨에 들뜨거든요. 우리를 밀어 올리는 힘, 모든 아픔과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기적, 주저앉은 우리를 앞으로 끌어가는 꿈이 시로 나타나는 건데, 그것이 어떻게 무력하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죠.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요. 내가 성서를 번역하다가 시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뿐. 빨리 나가고 싶다면, 지금 속에서 굽이치는 시들을 적고 싶다는 생각, 그것을 친우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어 같이 울고 웃고 싶다는 생각에서라고나 할까.

성수 덕에 앞으로 영금의 소식도 전보다 더 잘 알게 될 것 같군요. 사귀기 시작해서 결혼 후까지 그렇게 자세하게 써 보내 주어서 거기서 본 것만큼은 안 되겠지만, 궁금하던 생각이 말끔히 가셨다고 하겠소. 내가 미국 있을 때, 날마다 일기를 써서 보내던 그 솜씨 아니겠소? 빨리 사진들도 와야, 더욱 속 시원할 텐데. 신철 아빠, 엄마에게 문안해 주시오. 어떻게 좀 미안하게 된 게 아닌가도 싶으나, 언젠가 손잡고 흔들며 맺힌 이야기들을 할 날이 오겠죠. 뉴욕 언니에게도 진정으로 고맙다고 말씀 전해주고요. 성근이 결혼한다고 공부 못할 것 아니니까, 꾸준히 매진하라고 하시오. 나도 학업을 마친 것이 성근이까지 난 다음이었으니까요. 더구나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하는 건데, 염려할 것 하나 없어요. 보일러는 다 되었는지? 방수는 방수제를 많이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한 번 바르고 얼마 있다 바르고 해야 하는 건데, 그대로 하지 않으니까, 안 되는 걸 거요. 겨울 동안에야 괜찮겠지만, 내년 봄에 방수를 제대로 다시 해야죠. 

신 신부, 윤 목사님 건강은 어떠신지? 친지들 여러분 모두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고 전해주시고, 한빛 교회, 갈릴리 교회, 사랑방 교회에 격려를 보내오. 얼마 전에 이희호 여사가 5천 원 보내 주셨어요. 고맙다고 해 주시오. 사돈 댁에도 문안 전해주시고. 아직도 집안일 돕는 사람을 못 구했는지?

다 같이 명랑하고 씩씩하게 확신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합시다.

 

 

당신의 둥근 달

 

통일에 대한 의구심과 열망을 “꿈을 비는 마음”이라는 시로 표현하다

신현봉 신부, 윤반웅 목사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의 공범)의 안부를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