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0207-10 스승이시여, 큰 스승이시여

당신께 





너무 충격적인 죽음을 네 번씩이나 치르느라고 모두들 넋이 빠졌으리라고 생각되는군요. 우리는 오늘 아침, 점심을 거르고 2시에 묵념이나 올리기로 했지요. 가슴 아픈 일들이 언제나 멎을는지. 위해서 기도하는 길밖에.



김(재준) 목사님의 부음은 사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것이니까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민석의 형의 죽음도 그렇고, 주(재숙) 장로의 죽음도 지쳐 가고 있는 시대의 수레바퀴에 치인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민석의 어머니에게 전화로라도 위로의 말씀을 전해 주시오. 저번 날 진석이를 만나서는 형의 몫까지 두 몫을 살라고 했지요. 물론 천 몫 만 몫 살 사람이지만요. 



김 목사님 영전에 바치는 시는 당신이 왔다 간 다음 날 소식을 듣고 곧 쓰기 시작해서 밤 12시까지 완성해서 보내려고 했는데, 행차 뒤 나팔이지만 이제 여기 적어 보려오. 「나의 길, 당신의 길」을 만일을 위해서 준비한 당신의 순발력은 놀라울 뿐이군요. 내가 생각해도 그 시는 아주 적절했다는 느낌이군요. 김영일 박사(주재숙 장로의 아들)에게 나의 조의를 대신 전해 주시오. 김(정준) 목사(주재숙 장로의 남편)가 차표를 가지고 모시러 오셨는데 누가 막을 수 있었겠소. 그런 꿈 이야기를 들으면 영혼의 존재를 안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큰 스승이시여 





스승이시여!



큰 스승이시여



하늘 같은 땅 같은 스승이시여



당신이 가실 날이 이렇게 오고야 말았군요 



구만리 장공 훨훨 나르는 마음으로



이 강산 굽이굽이 안 가는 데 없이 불어 예는 슬픈 바람으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87년 긴 세월 당신을 떠메고 다니느라 늙어 버린 몸 



마침내 벗어 버리고 가셨군요



홀가분히 아주아주 홀가분히







오늘 아침에는



나의 샛별도 숨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가셨다는 하늘 무너지는 소식을 들으려고 



그러나 지금 여기 청주 미평동 148번지 



6사상 10방은 겨울답지 않게 온화하기만 합니다



자그마한 질화롯가에 둘러앉아



밤새우며 정담 나누듯 따뜻하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



오래 뜸하던 시정에 반짝불 붙이며



저를 잠자리에서 깨워 주신 건 



제 아버님만이 아니셨군요



두 분이 소리 없이 성큼 들어서시어



나의 두 어깨에 오른손 왼손을 넣으시고 



이마를 툭툭 치시며 일으켜 주신 거지요 



틀림없지요



저는 이제 여기서 아버님의 마음에 당신의 마음까지 만지며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 그리우면 볼을 비비며 소리 없이



고마운 눈물도 뜨겁게 흘리는 거죠. 뭐



뜨거운 눈물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허영심 같은 걸 지우는 거죠. 뭐







스승이시여



우리의 큰 큰 스승이시여



죽어서 사는 길을 몸으로 가르쳐 주신 스승이시여



우리를 죽음을 사는 길로 몰아넣으시고 그 길을 앞장서 가신 



지독한 스승이시여



너무 나무라지 마소서



저는 벌써부터 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죽일 놈이지요



스승의 부음을 기다리는 후레자식이지요



그래도 저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늘 무너지는 소식일 줄 알면서도



당신의 몸은 이제 할 일을 유감없이 다 했으니까요 



하고도 남을 만큼 해냈으니까요



날개 접힌 수리를 풀어놓아 



높푸른 창공 유유히 날게 하고



몸은 조국의 거름이 될 때가 되었으니까요 







캐나다에서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시던 사모님 



당신이 도착하시는 날로 쓰린 듯이 나아



이 방 저 방 분주히 들락거리시던 사모님이시지만 



세상에 다시없는 사모님이시지만



당신의 날개는 사모님께만 매여 있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당신의 날개는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우리의 마음이요 꿈이요 하늘이요 자유이니까요 



우리의 조국이요 사랑이니까요





아마 1975년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자리를 비우신 이 나라는



마치 기수를 잃은 군대처럼 갈팡질팡이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돌아오시라고 띄운 이 못난 제자의 편지에 



당신의 회답은 불호령이었습니다.



“너희 젊은것들은 뭐냐?



다 늙은 내가 나가야 한다면 싸움은 이미 진 싸움이 아니냐?”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꽁지에 불이 붙은 호랑이처럼



우리는 온통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꼭 미친놈 같았겠지요 



그러나 어쩝니까



당신에게 배운 게 그것뿐인데







스승이시여



눈물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어버이 같은, 아니 어버이보다 더한 스승이시여



당신은 함경북도 경흥에서도 전형적인 샌님 아니었습니까?



머리는 좋아 글공부는 잘하셨다지만



그 보잘것없는 몸매에다가 



꾸물거리기는 왜 그리 꾸물거리는지



가는귀먹은 사람은 한창 귀를 곤두세워야 



겨우 알아들을 소리로 웅얼거리는 못난이



그러나 그 작은 몸속에서는 두만강 푸른 물 소리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백두영봉에서 흘러내리며 쩌렁쩌렁 살아 퉁기는 물소리였습니다





풀려난 죄수들, 면천한 천민들이 땅을 파는 변방의 변방이었지만 



당신은 거기선 드물게 선비의 끄트머리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덕에 샌님이 되셨지만



당신의 글에선 흙내음이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억울한 죄수들의 울분이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천민들의 뚝심이 불끈불끈했습니다.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하며



코끝만 까딱거리며 백성의 고혈로 살아가는 



서울의 벼슬아치들의 좀상스런 모습을 껄껄 웃어 주는



말갈기 휘날리며 대륙을 주름잡던



고구려의 기개가 있어 죽은 역사를 일깨우고 있었습니다



  



그 흙내음에서



절대로 절대로 정직한 땅의 양심이 고요히 번져 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속이지 않는



남 속이느니 차라리 내가 속아 주는 양심



속아 주면서도 결코결코 속지는 않는 시퍼런 땅의 양심이 



불바람 타고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모든 간사한 유혹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양심의 소리 따위 껄껄 웃어 주며 짓눌러 오는 검은 손을 



가볍게 퉁겨 버릴 수 있는 순발력도 주셨습니다







그 흙내음으로



당신의 학문은 성리학이 아니라 실학이었습니다 



가시덤불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는 농학이었습니다 



감옥이란 감옥을 모두 허물고 그 자리에



아이들의 놀이터가 있고



즐거운 생활이 꽃피는 주택 단지를 세우는 공학이었습니다 



온갖 불의와 부정을 때려 부수는 군사학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자유와 정의를 기둥으로 평화의 나라를 세우는 정치학이었습니다





(2월8일)





이제야 겨우 징역살이가 궤도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이군요. 요새 5~6일 계속 새벽녘이면 선명한 꿈들을 꾸고는 눈을 뜨곤 하니까. 서울에서처럼 날마다 나의 의식을 퍼내지 못하니까, 그게 쌓이면서 농축되다가 마침내 꿈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이 땅의 빈곤의 밑바닥에 내던져지는 꿈을 꾸고 절벽에 머리를 찧고 얼떨떨해진 심정으로 눈을 떴군요.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떠나간 유다의 양심적인 인텔리의 심정이, 그 암담한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는 걸 이해할 수 있었군요. 어떻게 해볼 길이 없는 빈곤 앞에서 우리가 한다는 온갖 일이 모두모두 위선이요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도할 생각도, 성경 읽을 생각도 없어져서 그냥 오래 땅에 엎드렸다가 기상나팔 소리를 듣고서야 일어났다오. 대개 4시에는 일어나 냉수마찰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건데, 저 처참한 빈곤을 퇴치하는 데 이바지하지 않는 모든 일은 위선이요 죄악이라는 확신을 다짐하게 된 것 같군요. 신앙의 실천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도 물론 일차적으로 빈곤의 퇴치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졌군요. 정치적인 민주주의가 경제적인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민족통일도 빈곤퇴치에 일차적인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거죠. 어제 쓰다가 중단했던 조시를 계속할래요.



  



그 울분으로 당신은



선친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자유가 좋아서 기독교인이 되셨지만



거기도 툭툭 끊어 버려야 할 사슬이 많았군요 



되지 못한 우월감으로 콧대만 높은



서구인들의 전통과 풍습은 더 무거운 사슬이었습니다



공자 왈 맹자 왈에서 풀려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슬은 



그보다 결코 못 하지 않은 문자 주의였습니다



유교의 사슬을 끊어 버린 당신의 울분은 다시 



기독교의 사슬도 끊어 버리고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뼛속까지 길들여진 노예근성을 못 털어 버리고 



뒷걸음치는 우리를 이끌고 당신은 앞장을 서셨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자유의 황무지를 갈아엎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뚝심으로 당신은



기라성 같은 성자들과 지성들이 2천 년 걸려 쌓아 올린 



교리의 금자탑들을 허무셨습니다



이 겁쟁이들 세상이 무서워서 숨어드는 



도피성을 아무 미련 없이 무너뜨리시고 



길바닥으로 내모셨습니다





박봉랑 박사, 서남동 목사가 본회퍼의 비종교적인 기독교 해석을 



현영학 교수가 하비 콕스의 세속 도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당신은 종교적인 언어가 말끔히 가신 찬송가 가사를 지으셨습니다. 





‘어두운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 탑 놓아 간다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 가지 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기독교 2천 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하늘과 땅 그리고 세계를 울리는 그 격조 높은 가사는 



두 절로 끝나 있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 3절을 붙여 완성해 주기를 바라셨던 거죠 



그 메아리를 잡으려고 저는 몇 해 징역까지 살아야 했습니다





‘맑은 샘줄기 용솟아 거칠은 땅을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 되어 타거라’





권모술수로 온몸이 절어 있다는



같이 앉아 차만 마셔도 부정을 탄다고 기피해 오던 정치인들과 



민주수호국민협의횐가 뭔가를 만들고



의장이 되어 사회봉을 두드리시는 당신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지만



농담이라기에는 너무도 진지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당신은 내놓은 말이었습니다



이단이요 분열 분자로 파문을 받았습니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정신으로 손수 세우시고



온갖 정성 다 바쳐 키우시던 조선신학교는 풍전등화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걸 두려워할 당신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적 기독교라는 기치 아래 동지들이 혁신 교단이라는 걸 만들자 



단신으로 이와 결별하고 나오신 당신의 담력이



그 정도로 움츠러들 수야 없었지요 



남이야 성서 파괴자라고 하든 말든



이단이니 뭐니 하며 칼을 빼 들고 달려들든 말든 



당신은 그냥 아무 일도 없는 듯



오던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었습니다



속이 정 언짢으시면 며칠 잠적 정도는 하셨지만 



송창근 박사님이 찾아내시어



신앙과 학문을 교회 정치와 얼버무리지 않겠다고 한마디 하면 



평온한 모습으로 당신은 다시 나타나시어



우리와 허물없이 섞이셨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당신의 말소리는 



마냥 웅얼거림이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당신이 큰소리치시는 걸 들은 사람이 있다면 



천리 길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찾아가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고함 소리 길바닥에 밖으로 나가는 일 없는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고 



팔락이는 심지도 끄지 않는



야훼의 종의 모습이었습니다(이사야 42:2~3)





한국 신교 백년사에 당신만큼 많은 글을 쓰신 이가 없지요



마는 그 글을 다 모아 저울에 달아도



당신의 그 고요한 침묵, 당신의 그 웅얼거림에는 멀리 못 미칩니다 



그것은 역사의 증언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 고요한 침묵과 웅얼거림으로 



역사의 새 장을 여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역사의 실체가 되셨습니다 



위선과 독선으로 독기를 뿜는



살인과 전쟁으로 피비린내 나는



오만불손한 기독교의 역사를 당신은 툭 꺾어



민족사 속으로 겸손하게 끌어들이는 만용을 부리신 겁니다



드디어 두 역사는 소리치며 하나로 어울려 도도히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는 분단의 찌꺼기를 깡그리 쓸어내고 통일의 대해에 이를 것입니다





(2월9일)





스승이시여



만년 청청하게 우리와 함께 서 계실 스승이시여



낙락장송은 정몽주의 것만은 아닙니다 



당신도 낙락장송입니다



1987년 이 준열한 역사의 절벽에 온몸으로 버티고 섰는 



버티고 서서 역사를 증언하는 낙락장송이십니다 



정몽주가 옛 질서를 지키려다가 죽어 간



고풍 창연한  솔이라면



스승이시여 당신은 불어오는 바람과 맞서서 



내일의 꿈을 휘날리는 낙락장송이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영웅은 아니십니다







(2월10일)



당신은 우리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샌님이십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당신은 한국 교육의 풍운아 한신의 정신이요 창설자이십니다 



기독교 장로회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보다 전에 당신은 분명 예수의 제자요 



우리의 다시없는 스승이십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전에 당신은 우리의 형제이십니다 



종로 네거리에 나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우리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분명 우리와 한겨레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한



조금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겨레입니다 



겨레의 양심입니다





아 ─ 당신은 



저 두꺼운 역사의 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어렵잖이 무너뜨리시고



백지장 뒤집듯 역사의 새 장을 여셨습니다



마치 똥강아지 코끝으로 사립문을 밀고 길에 나서듯이 



당신이 하신 일을 우리라고 왜 못 하겠습니까?



갓 풀려난 죄수들의 울분이 가슴에 살아 있고 



갓 면천한 천민들의 뚝심만 있다면



당신이 지난날 해낸 일



우리도 내일 또 모레 해 보일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고마운 고마운 스승이시여



길이 우리와 함께 계시소서







1987년 1월 29일 자정에 청주에서 불초생 익환은 엎드려





사모님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땅이 꺼지는 것 같겠지만, 사모님, 유감없으시지요? 목사님과 살아오신 하루하루가. 그 하루하루가 몽땅 축복이요, 기쁨 아니었습니까? 그 숱한 고생까지도. 세상에 나서 목사님만큼 유감없는 생을 살고 가신 이는 별로 없습니다. 조시라고 써보았지만, 써도 써도 미진한 것만 같습니다. 제 아버님은 북간도의 역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가시는 유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은 한껏 당신의 뜻을 펴시고 가셨습니다. 



저의 가족이 피난 나왔을 때, 목사님과 사모님이 저의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저와 동환이가 학교 다니는 동안 안방을 내주셔서 한 식솔처럼 살 수 있었던 일도 꿈 같은 추억입니다.



저는 잘 압니다. 목사님의 공적의 반은 사모님께 있다는 것을. 사모님은 사모님으로서 우리 모두의 사표이십니다. 제 아버님과 함께 어버이로서 모실 단 한 분 스승이 김 목사님이시라면, 어머님과 함께 어버이로서 모실 단 한 분 사모님도 사모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어머님과 오가면서 여생을 보람있게 보내시기 빕니다. 두 분다 하실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까? 말동무가 필요하고 의지할 벗이 필요할 테니까요. 사모님이나 제 어머니에게 아직 남아있는 부덕(婦德), 의연하면서도 부드럽고, 굳건하면서도 너그러운, 80년 90년 풍상에 부대끼면서 더욱 원숙한 부덕 오래오래 쳐다보도록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익환 올림





관용씨 내외분께





두 분 정말 효자 효부였습니다. 설치는 기색도 없이 피곤한 모습도 보이지 않으면서 그 긴 투병을 하루 같이 보살펴드린 두 분의 모습은 정말 우러러 뵈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그 어머니에 그 며느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분이 번갈아 병원에 남아 밤을 새우며 간호하는데, 하루 저녁이라도 내가 대신 목사님 옆에 있어 드렸어야 하는 건데, 벼르기만 하다가 이렇게 마지막 가시는 길도 같이 갈 수 없는 처지이고 보니, 이 섭섭한 마음 무엇이라고 표현할 길이 없군요.



그러나 나는 기쁨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제자라는 것이 그리도 자랑스럽습니다. 끝까지 “익환이”라고 이름을 불러주시며 사랑과 격려를 주시던 일이.



두 분뿐 아니라, 모든 후손들은 기뻐하십시오. 세상에 그런 아버님, 그런 할아버님과 한 지붕 아래서 산다는 일이 예삿일입니까?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훌륭하신 아버님의 유감없는 일생을. 나도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정말 기뻤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승리인 거군요.



김 목사님 만세 만세!





늦봄 드림





어머님께





어머님이 김 목사님 사모님 찾아가서 하루 동무해 드리고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그렇게 자주 오가시면서 말동무하시고 의지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우정을 개발하십시오.



어머님은 제 이름을 안 불러 주십니다. 정말 제 이름을 불러 주시던 마지막 분이 가셨다고 생각하니, 그 섭섭한 느낌 무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걸 가지고 섭섭하니 어쩌니 하는 것 너무 사소한 개인감정이지요. 내일이면 뵙겠지요. 어머님의 건강한 모습을.





호근아!





시험 잘 보았겠지? 5일에 오는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었다. 너무 처참한 자동차 사고들이 연달았기 때문에. 의근이도, 너도 정말정말 운전 조심해라. 노이로제 될 것까지는 없지만, 언제나 만일의 사태에 대처하도록. 



대학원 공부가 시작되면 네 연구소는 어떻게 하는 거냐? 그대로 계속하는 거겠지. 성근의 새 연극은 어찌 되어 가는지 궁금하구나. 내일이면 소식을 듣겠지만. 정말 겨울이 다 가고 봄바람이 부는 것 같다. 해동은 정계에도 와야 하는 건데. 



한빛교회 32주년에 보내는 글을 아래 적겠다.





서른두 돌 맞는 한빛교회 교우들에게





서른두 해라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한 세월이라면 2부, 3부로 2천~3천 명 모이는 교회가 벌써 되었어야 하는 게 당연한데, 제가 여러모로 부족해서 큰 교회로 자랄 기틀을 잡지 못했고 전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한결같이 하루같이, 이 작은 교회를 저버리지 않고 지켜 주었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작은 무리에게 하늘나라를 맡기시기를 원하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넓고 큰 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복자루를 들고 교회로 모여들 때, 여러분은 민족의 축복을 위해서 땀 흘리는 수고로운 길을 택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천당에 가려는 일념으로 예수를 믿을 때, 여러분은 천국을 이 땅에 세우는 힘든 길을 택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 된 밥상에 모여들 때, 여러분은 곡괭이를 들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김을 매어 곡식을 거두는 농사꾼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목자를 치면 양 떼들은 흩어지는 법인데, 여러분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심히 모였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하느님의 교회라는 것을. 교회당은 작고 모이는 교인은 적지만, 여러분이 흩어져 나가 쳐드는 횃불이 바로 한빛, 하느님의 큰 빛이라는 것을. 꼭 있어야 할 곳에 있고, 꼭 타올라야 할 바로 그때 타오르고, 하느님이 원하시고 시대가 바라고 기다리는 바로 그 빛, 참 빛을 비추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타올라도 한껏 타오르는 빛이라야 절벽 같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새 시대를 이끌어 들일 수 있다는 것을. 한빛의 구실을 톡톡히 하면서도 나는 한 작은 빛이라고 겸손할 수 있어야 우리의 빛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이 드러난다는 것을.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눈앞에 삼삼한 그리운 교우 여러분! 더 많은 빛이 모여 더 큰 한빛으로 어두운 역사를 비추도록 한껏 타오르게 한껏 치켜드소서. 한빛의 한빛, 하느님의 빛을.





1987. 2. 문익환 드림







당신께





오늘은 오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내일 온다고? 덕분에 당신이 오기 전에 이 편지를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 당신 말대로 이 봄엔 모든 일이 활짝 풀려야 할 텐데.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세계는 슬슬 풀려 가는데.



중국의 자유화에는 소련도 충격을 안 받을 수 없는 거죠. 드디어 70년에 걸친 소련의 경직화 된 공산주의가 풀리기 시작하는 판이니까. 소련 공산당 중앙정치국이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민주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명문화했다는 건 정말 역사의 일대 사건이지요. 공산주의 세계가 말로는 ‘인민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실은 민주주의의 길을 가고 있지 않았다는 걸 이제 공적으로 고백한 셈이니까요. 그리고 이를 역사에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정말정말 대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세계사가 일대 전환점에 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세계사의 큰 매듭이 풀리는 것이 아니겠소? 고르바초프의 민주화 정책이 흐루시초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흐루시초프의 실패는 고르바초프에게 좋은 거울이 되겠지요. 또 그때보다는 교조주의적인 공산주의로 머리가 굳어진 세대가 더 많이 갔고 이를 탈피하려는 새 시대가 그만큼 더 자랐을 것이고. 소련으로서는 무시 못할 중국의 질적 변화를 보고 있으니까, 고르바초프는 흐루시초프처럼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군요.



이렇게 세계사의 큰 매듭이 풀리는 조짐을 보이는 판국에 우리의 매듭도 풀리기를 바라는 것이 과히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매듭을 맺은 편이 우선 그 매듭을 푸는 용단이 필요한 건데 정말 아쉽군요. 너무 굳어져 있으니까. 너의 살길을 열어 주면서 나의 살길을 찾는 슬기가 아쉬울 뿐이오.



택 목사가 나의 시 「땅의 양심」에 그렇게 감격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몇 차례 읽어 보았더니「자유」보다 깊이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김 목사님 조시를 쓰다가 양심의 새 면을 발견할 수 있었소. 양심이란 남을 속이지 않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온갖 거짓을 간파하고 속지 않는 마음이라는 점 말이오. 김종삼 씨 심장이 안 좋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계란 노른자위 기름을 쓸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제 지면이 다 했으니까 붓을 던져야겠군요. 아쉬운 대로 그러면 내일 만납시다.





1987. 2. 10.










스승이신 장공 김재준 목사님을 추모하는 장문의 조시.



김재준 목사님의 사모님과 아들내외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 한빛교회 설립 32주년에 보내는 축하의 메시지. 아내에게는 소련의 변화에 대한 생각를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