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승리가 아닌 민족의 승리

어머님께





어머님의 맑은 얼굴, 그렇게도 환히 빛나는 걸 생전 처음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맑은 목소리라니. 어제는 6.25 서른아홉 돌을 맞아 온종일 가슴을 앓았는데, 오늘은 백범 김구 선생이 이승만의 흉탄에 가신 지 마흔 돌이어서 또다시 슬퍼졌었는데, 어머님의 힘찬 목소리에 부쩍 힘이 났습니다. 



김구 선생이 가신 날, 저를 그 법정에 세워주신 하늘의 뜻, 역사의 뜻을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일본놈들 앞잡이로 독립군을 토벌하던 박정희가 죽은 날이 이등박문이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진 날과 같은 날이라면, 그게 또한 그냥 우연일 수가 없는 것처럼, 오늘 저도 그냥 우연히 법정에 서게 된 게 아니죠. 오늘 기사를 읽으면서 정경모가 눈물을 글썽이며 “섭리”를 읊조리던 모습이 눈에 환합니다. 



40년 전 흰눈 즈려 밟고 가시던 님의 발자국들이 푸른 하늘 울리던 총성에 붉은 피 흥건하더니, 오늘 제 발바닥에서 끈적끈적 묻어나는 걸 느꼈습니다. 오늘 법정에서 만난 얼굴들, 그립고 반가운 얼굴들, 저에게 너무나 뜨거운 영감을 주었습니다. 



오늘 법정에 같이 앉아서야 유원호 선생이 누구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의 사명으로 투철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새 기계들이 들어와서 이제 사업이 궤도에 막 오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걸 내팽개치고 저의 수행원으로 북에 갔다 왔습니다. 겸허하게도 나의 수행원으로 분단의 장벽을 깨는 데 한몫하겠다는 정치인다운 사명, 그것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를 사업을 초개처럼 여기게 했습니다. 오늘도 그가 말했지만, 그는 이 역사적인 여행에 동참하게 된 걸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먹지 않고 배부르다는 걸 또다시 경험합니다. 이번 법정에서 저는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요. 그러나 중요한 건 제 개인의 승리가 아니죠. 민족의 승리가 이제 막 눈앞에 보입니다. 



이 확신으로 내일도 모레도 살아갑시다. 





아들 익환 올림 






방북사건의 첫 재판을 끝내고 느낀 소감과 수행원이었던 유원호 선생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