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셋, 손녀 넷의 행복한 할아버지

문칠, 문숙아

 

오랜만에 제 나라라고 돌아오니 더워서 죽겠지? 할아버지는 갇혀 있고. 요새 어지나와 시워나와 함께 신나게 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좀 마음이 놓이는구나. 호랑이처럼 힘 있고 용감 하라고 호랑이를 그려준 문칠이 고맙다. 서늘해지면 오너라. 이번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만날 수 있겠지. 얼른 가을이 돼서 학교에 가서 새 동무들을 사귀게 되고 원하던 제 나라 공부를 마음껏 해야지. 카나다 보다는 제 나라가, 불편한 점이야 더러 있겠지만, 좋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우선 너희를 사랑해 주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벌씩이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또 보자. 

 

할아버지 씀

 

보라야

 

네가 이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니, 난 정말 신난다. 덥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내가 혼자 쓰는 방만한 방에 여덟, 아홉 사람씩 들어 있으니, 그 사람들은 얼마나 더우랴 싶은 생각을 하면서, 난 괜찮다고 생각을 한다. 문칠, 문숙이네가 와서 같이 오가며 지낼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좋으냐? 나라가 입을 쫑끗하며 찍은 사진 너무너무 귀엽지 뭐니? 엄마는 이 더운 여름에도 쉴 새 없이 바쁘겠지? 물론 아빠도. 나만 이렇게 한가하구나.

 

어지나, 시워나

 

할아버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겠지? 문칠이, 문숙이와 함께 노느라고 정신이 없을 테니까. 아니예요. 틈틈이 할아버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저께도 TV 에서 할아버지를 보았거든요. 그래, 고맙다. 아무튼 오랜만에 제 나라를 찾아온 문칠이, 문숙이와 좋은 동무가 되어서 잘 놀아라. 며칠 있으면 이모네와 같이 설악산에 가겠구나. 설악산, 산도 좋고 물도 좋다. 잘 놀다가 오너라.

 

바우야

 

요새도 책만 읽고 있겠구나. 무슨 책들을 읽고 있는지, 책 이야기들을 좀 적어 보내려무나. 문칠, 문숙이 와서 동기가 많아져서 좋지? 그새 며칠 굉장히 더웠는데, 오늘은 그런대로 바람이 좀 불어서 한결 지내기 좋다. 네 편도선이 안 좋다고 해서 오늘 급히 꼬마들에게 편지를 쓰고, 네 치료법을 적어 보려고 한다. 팔에 폐경락을 내가 치료해 주던 것을 기억하겠니? 팔 네 군데, 그리고 둘째손가락 손톱마디 안쪽으로 두 군데에 파스를 붙여 보아라. 아침 한 시간, 오후 한 시간, 밤에 한 시간씩 붙여라. 그렇게 며칠 하다가 효과가 있는지 알려다오. 그것으로 편도선이 분명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녁에는 비장경을 치료하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비장경 치료는 엄마가 잘 알 테니까, 엄마에게 치료해 달라고 해라. 

 

창근아

 

네 청춘사업이 제 곬에 들어선다니 정말 기쁘다. 그 기쁜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없어서 정말 섭섭하구나. 너희 두 사람의 인생이 성공이기를 여기서 한껏 빌어 줄게. 언제 괌으로 떠날 거니? 가기 전에 한 번 왔다 가거라. 큰 조카며느리 절은 못 받아도 얼굴이라고 보아야지. 너희 아빠, 엄마,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그대로만 살면 틀림없을 거야. 모든 일이 그렇지만, 부부생활에서는 타성처럼 경계해야 할 적(敵)이 없다. 타성만 경계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살아가도록 해라. 날마다 처음 만나듯이만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 행복을 빈다. 

 

큰아버지.

 

카나다에서 손주 문칠과 문숙이 귀국하면서 모든 손주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편지를 보내고, 조카 창근의 결혼을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