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시인께
시집 감사합니다. 아픔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군요. 그 아픔은 진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솔이라는 말에는 때 묻지 않은 진실이라는 뜻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마산 가는 일이 있으면 선관 시인과 함께 들러 대접을 받고 싶군요. 이영자 님의 시정에 울려 오늘 저녁 이런 시를 얻었습니다.
단호하게 되살아난 초승달
서릿발 날리는 광명
검푸른 하늘 가슴 하나 그득 안고
흰 눈 덮인 솔 언 잎 스치며
먼 항해 길에 오른다.
좋은 시 많이 써 주세요.
늦봄 드림
어지나에게
오늘 할아버지 보러오지 못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는 기뻤다. 네가 얼마나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지. 기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큰 자동차 사고였는데, 네가 그만큼만 다쳤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하느님께서 너를 도와주셨구나. 네가 다 나아서 만날 수 있게 되는 날, 꼭 안아주고 뽀뽀도 해 줄게.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그런 아슬아슬한 일이 많단다. 그런 세상을 큰할머님은 95년이나 사셨고, 나도 72년이나 살았구나. 그동안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얼마나 많이 만났겠니? 그래서 하느님을 더욱 굳건히 믿게 된 거란다. 너는 이번에 처음으로 그런 일을 경험한 거지. 앞으로도 더 많이 경험하면서 하느님을 더욱 굳게 믿게 될 거다.
앞으로 얼마 동안 일어나 다니지 못할 텐데, 아빠더러 좋은 책을 사달라고 해서 책을 많이 읽어라. 학교 성적 같은 거 걱정할 것 없다. 바우형도 얼마나 오래 입원해 있었니? 그런데도 성적이 껑충 뛰어서 일등을 했거든. 할아버지도 밖에 있을 땐 바빠서 책을 별로 못 읽는데, 여기 들어와서 실컷 책을 읽는단다.
뛰어다니지 못하는 대신에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기도를 많이 해라. 네가 기도할 일이 생각해 보면 많을 거다. 우선 큰할머니도 편찮으시고 이 할아버지도 몸이 안 좋으니까 위해서 기도해 주려무나. 그냥 속으로 “하느님, 하느님, 예수님, 예수님” 하고 있어도 기도가 되는 거야. 하느님으로, 예수님으로 네 작은 마음이 그득그득 넘쳐날 테니까. 나도 너를 생각하며 기도할 게
할아버지는 기도하면서
성심이
얼마나 놀랐니? 그러나 얼마나 다행이니? 오늘 소식을 들으면서 운전하시던 형부는 다치시지 않았는지, 얼마나 다치셨는지 물어보지 못했구나.
난 요새 이 나라의 법을 맡은 사람들이 저희가 얼마나 국민에게 불신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의사들을 형편없이 불신하는 걸 보면서 정말이지 몹씨 분개하고 있다. 주(主) 의사의 진단이 났는데도 제 눈으로 보고 결정을 하겠다는 판사, 이번에 서울대 병원 의사를 못 믿겠다고 선서를 받고야 나를 넘겨주겠다니, 이렇게 의사들에게 수모를 받게 하면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전화위복이라고 어지나와 마음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빈다. 이만 총총.
아버지 씀
교통사고를 당한 손자 어지나와 며느리 (어지나 엄마)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편지. 이영자 시인에게 좋은 시를 많이 쓸 것을 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