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을 청산하고 맞이해야 할 1990 년

당신께

 

어제오늘 젊은 여성들을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즐거웠던지. 그러나 한명숙에게서 안 박사 수술 이야기를 듣고는 아찔했어요. 그래도 수술 결과가 좋아서 살아 돌아온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북쪽 김 주석의 신년사 내용이 밝혀지면서 내 예감이 맞은 것 같은 감이 드는구만요. 북쪽에서 한반도의 얼음을 녹이는 봄바람이 일 것 같다는 예감이. 자유 왕래 이야기는 내가 이산가족 이야기를 꺼냈을 때 했던 이야기예요. “자유 왕래가 되면 이산가족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게 아닙니까?”라는 것이 그의 반응이었거든요. 자유 왕래 제안에 대해서 북쪽 내에서부터 자유 왕래를 허락해라 말라 할 것 없는 거죠. “그래, 좋았어. 합시다”고 환영하면 되는 건데. 개방하라 개방하라 하던 사람들이 전면개방하자고 하면 무조건 환영할 일인데, 무슨 까닭이 그리 많은지. 그것이 정치적인 제스츄어에 지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환영하고 하자고 나서면 그것이 정치적인 제스츄어가 될 수 없는 거 아니겠소? 한다고 하다가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고 후퇴를 하면 그만큼 그쪽이 손해를 볼 텐데. 아무튼 10일 노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기다려 볼 일이지요. 아무튼 90년은 그냥 89년의 연장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고 해야겠군요. 12월31일에 쓴 102신이 불허가 났어요. 89년에서 90년으로 넘어가는 것은 예사 해 바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 한 편을 지어서 벗들에게 보내려고 했던 건데, 이젠 내가 나갈 때나 가지고 나가야지요. 어머님이 요새 어떠신지 염려되는군요. 오랜 농성에 당신의 지친 모습 역력하였어요. 길어야 닷새 기다리면 되겠지요. 그러면 이만.

 

당신의 사랑  

 

신영복 선생님께

 

한겨레 신문에 실린 『주소 없는 당신에게 띄웁니다』를 읽고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그 글에 마음의 메아리가 없다면 목석도 못 되는 거죠. 우선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가슴 찡하는 걸 느꼈습니다. 같은 노모를 모시는 입장에서 무엇이라 위로의 말씀을 드릴 길이 없군요. 그래도 아들이 종명(終命)을 시켜드릴 수 있었으니 유감없이 눈을 감으실 수 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버님의 건강은 어떠신지요?

다음으로는 축하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신 선생님의 근엄하던 얼굴이 퍽으나 온화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안경도 잘 어울리고요, 글도 종래의 좀 무거운 듯 고요하고 고요한 듯하면서도, 깊은 바다의 저류 같은 힘이 그대로 있으면서도, 다양한 색깔이 속에 맑음마저 지니고 반짝이는 것 같아서 읽는 사람들 마음 마음에서 은은한 희망을 메아리로 울려내리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희망’이라고 쓰려다가 ‘은은한 희망’이라고 썼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음향 울리는 희망이 가슴에서 울리는 걸 느끼겠지만.

우선 말의 해를 맞아서 김유신이 천관녀의 집 앞에서 사랑하는 말의 목을 치던 이야기로 이야기가 시작되는군요. 모든 말이 주인의 뜻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걸어오던 익숙한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생각해야 하는 새 아침이라고 하셨군요. 신 선생님! 제가 무오년 말띠라는 걸 미처 모르셨지요? 제목이 뎅겅 떨어지는 것 같은 조금은 섬뜩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12월29일 제 아버님 기일을 잊어버릴 정도로 역사에 밀려오다가 89년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지 뭡니까? 89년에서 90년으로 넘어가는 그 시점은 예사 해 바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눈앞에는 천길 벼랑으로 단절된 저쪽 언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90년대의 통일을 향한 새 언덕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눈을 지끈 감고 건너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차라리 숨이 막혀 천길 벼랑 밑으로 곤두박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떨어져 몸은 박살이 나서 썩어버리고 새 마음 새 몸으로 저 언덕에 날아올라 우뚝 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새해를 맞으시는 심정과 어쩌면 그리도 일치하지요? 분단에 길들고 익숙한 자기를 청산하고 맞아야 할 새 해가 바로 90년이라는 점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지면이 다 했군요. 선생님은 민중이기보다는 선비시군요. 그런데 민중의 밑바닥에서 20년을 사는 동안 모든 걸 민중의 시각에서 보고 민중의 절망을 품어 희망의 알을 까는 민중의 어미 닭이 되셨군요. 열다섯 자 흰 담 안과 밖의 세계가 당신 품에서는 하나이군요. 음지가 양지고, 양지가 음지인 걸 선생님만큼 신선하게 보여줄 사람이 없을 것만 같군요.

아무튼 좋은 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고두고 읽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창문과 문』과 『서도와 필재』를 읽었습니다. 좋은 글 더 많이 써 주세요. 

 

문익환

 

 

아내에게 북의 제안을 받지 못하는 남쪽 정부를 비판. 

신영복 선생에게 새 해을 맞는 감회를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