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임재와 활동을 위한 ‘여백’이 없는 기도 1

우리 해바라기님!

 

오늘 수경이 어머니와 언니를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빨리 나와서 수경일 포옹해 주셔야지요.” 수경이 어머니의 허락이 없었더라도 물론 뜨겁게 안아 주어야지. 그날은 민족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금 긋는 날이 되겠지요. 수경이 언도받으러 법원에 들어서는 사진을 오려 두고 들여다보곤 하는데 나의 사진과 견주어 볼 때, 한 시대는 가고 맑고 신선하고 싱싱한 새 시대가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수경의 아름답고 신선한 모습, 매인 데 없이 발랄하게 춤추는 자유가 경직화된 북쪽의 젊은이들 가슴에 찍혀져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내 몸은 가볍게 날 것만 같군요. 자유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걸 우리는 일찍이 몰랐던 것이 아닐까요? 그 아름다운 자유는 같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군요. 그래서 아름다운 거죠. 열린 마음의 아름다운 자유라고나 할까요?

오늘 해바라기 편지 넉 장에 해바라기 언니의 편지까지 들어와서 갈테야를 기쁘게 해주었다오. 

 

1990. 2. 13. 당신의 갈 테야

 

곽노순 박사

 

곽 박사의 귀국 소식 정말 나를 기쁘게 해주더군요. 한데 이번 『살림』에 기고한 글을 읽고는 정말 흐뭇하더군요. 그 번쩍번쩍하는 날카로움과 반짝반짝하는 재치가 짧은 연륜 사이에 그렇게도 원숙한 생과 신앙으로 다듬어진 걸 보면서 내 어찌 흐뭇하지 않았으리오? 날카로움과 재치를 과시하고 싶은 젊음이 익어 있다는 말도 되겠지요.

곽 박사는 정말 하느님을 진지하게 문제 삼고 있군요. 집단적인 노이로제 증세를 ‘은혜’라고 부르는 경건파들, 그들의 광적인 기도는 절대자의 응답을 배제한 채 ‘카타르시스용’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거군요. 한편 세상의 비리와 불의에 의분하는 영혼들을 상대로 하는 사회적인 부흥가들(나도 아마 이 부류에 분류되겠지요)의 기도회는 주재자가 개입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진지함이 형식화되어 사회적인 ‘압력용’으로 둔갑해 버렸다는 분석이군요. 살아 계신 이의 임재와 활동을 위한 ‘여백’이 없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죠.

사실 솔로몬은 그런 위장술도 쓰지 않았죠. 숫제 하느님을 지성소의 어두움 속에 유폐해 버리고 세상만사를 제 수중에 거머쥐려고 했죠. 

 

“야훼께서는 몸소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언제까지나 여기(어두움 속에) 계십시오. 제가 주님을 위해서 이 전(殿)을 세운 건 그 점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왕상 8:12~13).

 

곽 박사가 하느님을 위해서 ‘여백’을 남겨야 한다고 했을 때, 우리 사람들이 모든 일을 나누어 맡으면서 하느님께도 한몫 남겨 두어야 할 게 아니냐는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닌 줄 압니다. 곽 박사가 장자의 무위(無爲)를 말할 때도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팔짱을 끼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그런 무위가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그걸 나의 경험에 미루어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 되지 않나 싶군요. 70여 년을 살고 보니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된 게 없다는 걸 발견합니다. 10대의 소년일 때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오늘의 나는 염두에도 없었죠. 여러 가지 경륜도 세우고 그걸 이루어 보려고 무던히 땀을 흘리며 살아왔어도, 무엇 하나 내 경륜대로 이루어진 게 없이, 하느님의 경륜은 전연 딴 데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놀랍니다. 나의 경륜을 이루자고 노력한 모든 일이 하느님의 엉뚱한 경륜을 이루는 데 이바지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죠. 일종의 허무감마저 느끼는 데 불만은 없어요. 사실 그게 모두 좋았다고 생각되어 오로지 감사할 뿐이거든요.

나와 같이 평양에 갔던 정경모 씨는 40년 전에 어쩌다가 나를 만나 내 덕분에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된 게 퍽 고맙게 생각되었나 본데, 이번에 나와 민족사의 중대한 고빗길을 같이 걸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길을 느낌과 동시에 몸이 오싹할 정도의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잊었던 (다음 편지에 계속)

1990. 2. 13.

 

 

함께 성서번역에 종사하였던 곽노순 박사가 사회적인 압박용으로 둔갑했다고 기도를 비판한 글을 읽고 이를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반박하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