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임재와 활동을 위한 ‘여백’이 없는 기도 2

(어제 편지에서 계속) 

 

하느님께 관심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경모 씨와 나의 대화에서 섭리란 하느님의 섭리도 되고 역사의 섭리도 되었거든요. 역사의 섭리는 역사의 필연이라고 해도 되죠. 이 둘이 무리 없이 하나로 겹쳐진다는 말이에요. 섭리라는 게 우연이라는 것과도 겹쳐지는 거라고 할 때, 역사적인 필연은 우연의 총화라고 해도 되구요. 정경모 씨가 하느님의 섭리에 밀려 나와 같이 평양에 갔다 왔다고 느끼는 것과 내가 역사에 밀려 갔다 왔다고 느끼는 것이 빈틈없이 일치한다는 게 놀라운 일이더군요. 이것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가능해졌다는 것이 나의 경험인데, 이건 출애굽 경험과 일치하는 것 아니겠어요? 노예들의 해방 경험이 야훼를 역사의 주로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것, 그것은 또 갈릴리 민중의 신 경험과도 일치하는 것이었구요.

지금부터 3천여 년 전 출애굽에서 경험된 것이 그 후 1300년쯤 지나 갈릴리에서 경험되었는데, 그게 2천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전 인류의 일로 경험되기 시작하다니,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고 하신 예수의 이야기가 실감이 나는군요. 어제 27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만델라 내외의 사진을 보면서, 민중의 시대는 아무도 못 막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사회적인 부흥가들의 모임에서 드리는 기도는 압력용이라는 곽 박사의 말은 너무나 정곡을 찌르는 말이군요. 그게 어디 기도냐는 거죠. 나도 그런 기도를 너무나 많이 해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압력용이 되어 온 건 긴 역사가 있죠. 자기들이 섬기는 신의 상을 새끼로 묶어다가 바닷가 벼랑에 세워 놓고 기도를 올리고 그대로 안 해주면 바다에 집어넣겠다고 했다면 그건 압력의 정도를 지나 공갈 협박이죠. 적에게 포위된 성을 구원해 달라고 빌면서 왕이 아들을 제물로 바쳤다면 이건 신을 매수하는 일이구요.

성경에도 이런 매수·압력·공갈 협박조의 기도는 얼마든지 있지요. 성서 전체에서 경건의 표본이라고 하는 욥의 기도가 얼마나 불경스러운 압력용이었느냐는 건 곽 박사도 잘 알 거예요. “당신의 눈은 사람의 눈과 별다를 게 없군요. 사람이 보는 것 정도밖에 못 본단 말입니까?”(10:4) 이건 숫제 모욕이죠. 이 이상의 압력이 어디 있을까요?

하느님은 이 모든 걸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눈물로 글썽이며 받아 주시는 게 아닐까요? “아빠, 오늘 저녁에 사탕 사다 주지 않으면 난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이런 어린애의 압력을 받아 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미루어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까 싶군요. 하느님을 야수라고 부른 욥(10:16), 폭군이라고 부른 욥(10:17)의 심정을 하느님은 헤아리셨던 거죠.

기도가 압력용이 된다는 건 다른 면에서도 볼 수 있지요. 기도가 전연 하느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악한 권력가나 부자들을 향한 압력용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회에는 정보원들이 끼여 앉아 녹음까지 해가는 판이니까, 정부를 향한 압력용으로 기도가 이용돼 왔다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지요. 그러나 그게 어디 기도냐고 비난하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예수는 우리에게 할 말을 주는군요.

누가복음 18장에 있는 악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에서 기도는 악한 재판관에 대한 압력으로 이용되었거든요. 민주도 통일도 관심 밖인 역대 정권이 입을 열었다 하면 민주요 통일 아니었던가요? 역사는 결국 그들로 하여금 민주의 문, 통일의 문을 열게 할 거라고 나는 확고히 믿고 있어요. 그동안 역대 정권을 향해서 외친 우리들의 민주화와 통일의 주장은 무서운 압력용 기도였다고 해서 나무랄 것이 없지 않을까요?

쏟아지는 눈을 내다보며 강의실로 발길을 옮기지 않은 교수, 찾아온 학생에게 말하기를 “사방에 눈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내가 왜 입을 열어야 하는가?” 얼마나 감명 깊은 정경이라고 해야 할까요? 말, 말, 말이 흰 눈에 덮이는 광경! 흰 눈발을 받으며 연탄 낱개를 들고 판잣집으로 돌아가는 아낙네의 모습까지도 그 교수의 눈에 보인 건가요? 그리고 그건 말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는 걸 쏟아지는 흰 눈은 말해 주는 걸까요?

곽 박사의 날카로운 눈이 한국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면서 재치 있는 필치로 쓴 많은 글, ‘이놈들아, 내가 낄 틈은 어디 있느냐?’는 식으로 흐뭇한 글 많이많이 읽고 싶군요.

성경 번역을 같이 할 때 점심을 먹고는 댁에 들러서 부인이 끓여 주던 커피의 향기가 코끝에서 다시 살아나는군요. 아이들 때문에 부인은 아직 그대로 미국에 남아 계시는 건가요? 그동안 아이들은 몇이나 받았는지? 두루 궁금하군요. 어머님 병환을 가서 봐 드린다고 벼르다가 끝내 못 봐 드려서 죄인이 된 느낌이군요. 소식을 주세요.

 

함께 성서번역에 종사하였던 곽노순 박사가 사회적인 압박용으로 둔갑했다고 기도를 비판한 글을 읽고 이를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반박하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