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귀에 경 읽기

당신께 

 

시국 사범들이야 나라를 위해서 소신을 가지고 살다가 감옥쯤은 제집 드나들듯 하는 사람들이니까 석방이 안 돼도 답답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정부이구요. 장기수들은 정말 많이 석방되기를 기다렸는데, 겨우 스무 사람이라니 안타까운 심정 금할 길이 없군요. 소신을 가진 좌익수도 좀 있기야 하겠지요. 그들도 그만큼 감옥을 살렸으면, 이제 인권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통일의 차원에서도 확 문을 여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은 일인데, 정말 너무들 소심하달까?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다고밖에 달리 생각되지 않는구만요. 그나마 억지로 만들어진 좌익수들은 왜 그리 봍잡고 있는지? 그나마 20명이라도 나온 이들과 그 가족들의 기쁨이 어떠랴 싶어 오늘은 밤잠이 잘 오지 않을 것만 같구려. 서승 씨는 갓난장이 조카를 안아 보는 감회가 어떤 것일까? 기쁘겠지요? 어린 생명은 무조건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니까요. 차풍길 씨처럼 억울하게 간첩죄를 쓰고 사는 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그의 석방이 기쁜 만큼 가슴이 답답하군요. 차풍길 씨 내외분과 그 자식들의 기쁨에 우리의 기도를 쏟아부어야지요. 

 

당신의 늦봄 

 

박원순 변호사님께

 

80년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육군 교도소 접견실에서 어머님이 통곡하며 기도하신 것이. 그 기도를 들으면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게는 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사가 송두리째 깜깜한 터널에 진입해 있다는 느낌 때문에 광주 문제에 별 관심을 쓰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82년 12월24일에 풀려난 후에도 사람들은 광주의 비극 이야기를 좀처럼 입에 올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83년 3월 1일 저는 광주에 3.1절 기념 강연하러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민주주의만 해 준다면, 대통령이야 박 씨면 어떻고, 전 씨면 어떻고, 김 씨면 어떻습니까? 광주의 민주 영령들은 민주주의만 이룩된다면 지하에서 눈을 감을 것 아닙니까?” 광주의 비극이 얼마나 크고 심각하고 아프고 쓰린지를 오늘의 반만큼만 알았어도 광주에 가서 그런 말을 할 용기를 못 냈을 겁니다. 그래도 광주에 가서 그 말을 했다가는 몰매는 몰라도 야유 정도는 받을지 모른다, 다시는 광주에 발길을 돌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쯤은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주 시민들은 그날 저의 강연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 문제의 발언 대목에서도 광주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좋은 일이 있거나 궂은 일이 있거나 광주는 언제나 저를 불러 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광주 학살의 원흉이지만, 민주주의만 해 준다면,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광주 시민들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김대중 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엄청난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일 년 동안 저는 전국을 누비며 그것을 강조했습니다. 83년 개학이 되어서 얼마되지 않아 서울대학교에 강연하러 갔습니다. 내 생애에 그때처럼 많은 박수를 받아본 일이 없지만, “민주주의만 해 준다면, 대통령이야 박 씨면 어떻고, 전 씨면 어떻고, 김 씨면 어떻습니까?”는 대목에서 제일 열렬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환골탈태 민주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서 전국을 누비며 외쳤지만, 그건 쇠귀에 경 읽기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4월 19일 KSCF와 카톨릭 청년회 공동 주최 4.19 강연에서도 그 말을 하고 박수를 받았는데, 다음 날 안기부는 저를 붙잡으러 왔습니다.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국가 원수를 모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안기부에서도 너무 했다고 생각했던지 하루 만에 풀어주었습니다. 84년 12월에 들어서면서 양심수 석방 문제로 당시 안기부장 노신영 씨를 만났는데, 그때 보고를 받고 제 강연 테이프를 몇 번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만하면 꽤 고위층에까지 나의 심정이 전달되었지만, 모든 것은 허사였습니다.

84년 5월부터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던 겁니다. 또 하나 대통령 실패작을 역사에 남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처량하기만 했습니다. 광주, 5공 비리 청문회를 보고, 지난 그믐날의 그의 철면피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느냐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 실패했지만, 훌륭한 존경할만한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사명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이만 총총.

 

문익환 올림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실패했지만, 그래도그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