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님
우리 바우님이 시인이 되셨어. 손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북간도 고향 가실 날을 생각하며 시를 썼는데, 할아버지는 어떤 시를 썼는지 알어?
해묵은 솔방울 위에 앉아서
세상 좋아라 까부는 참새 한 마리
네겐 외로움 같은 거 있을 리 없어
마냥 푸른 하늘이어라.
난 네가 컴퓨터로 그려 냈다는 그림 넉 장을 보면서 영 옛날 사람이 된 것 같구나.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연 상상이 안 되니 말이다. 바우가 시인이 되자면,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그림 그리는 것도 그렇고, 컴퓨터 이상의 컴퓨터, 나무 이파리의 생리, 사람 몸의 신비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천문학에 관한 책을 사서 읽으면서 밤하늘의 별자리들도 공부해 봐. 사실 컴퓨터란 그런 걸 공부하려고 만든 것이었으니까. 안 그래?
바우가 컴퓨터에 빠져 있는 동안 할아버지는 지금 바둑에 빠져 있다구. 바둑은 옛날 도인들이 산간 나무 그늘에서 땅에 금을 그어 놓고 흰 돌, 검은 돌을 가지고 놀던 거거든. 그 도인들이 상대편 말을 잡아먹는 악취미를 가지고 바둑을 놀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당치도 않은 말이지. 그런데 바둑책을 보면, 바둑의 재미는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재미라고 쓰여 있단 말이야.
썩 잘 둔 바둑, 그걸 명국(名局)이라고 한다. 그런 명국보를 검토해 보면 잡아먹고 먹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오직 닦은 기(술)와 예(술)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각기 자기의 세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몰입하는 게 바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걸 혼자 한다면 얼마나 싱겁겠니? 도전해 오는 또 하나 다른 세계와 부딪혀 가면서 전개되는 나의 세계. 그건 돌 하나하나 놓을 때마다 미지의 세계를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일이 되고, 상대방이 전개하는 세계는 나의 세계에 도전해 오는 힘이고, 새 세계를 열게 하는 기회요 가능성이란다.
흑을 쥔 사람도 백을 쥔 사람도 50:50의 권한과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바둑은 시작된다. 바둑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욕심을 부리다가는 지나친 수를 쓰게 돼. 그걸 과수라고 한다. 과수는 누구를 망치느냐 하면 자기를 망쳐. 상대편에게도 50을 준다는 자세가 바둑을 바로 두는 자세야. 그런 공정한 자세로 최선을 다한 대국이 반집으로 승부가 결정되었다면 그게 바로 명국이지. 불계승·불계패로 끝난 대국은 별 가치 없는 대국이고.
바둑돌은 평등이다. 그 가치가 똑같아. 그러나 놓이는 자리를 따라 그 값이 엄청나게 달라진단다. 다른 돌들이 빛나기 위해서 기꺼이 희생되는 돌들도 있다. 그건 그것대로 고귀한 희생을 치른 값진 돌이 되고. 바둑판은 자유이지. 열린 자유의 공간이라는 말이다. 흑백의 공동의 공간이고. 흑의 세계만도 아니고 백의 세계만도 아니고, 두 세계가 어울려서 이룩한 세계가 바둑의 세계이다.
그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정복하는 일이 아니야. 기와 예의 힘을 겨루며 조화 있게 공존하면서 한 세계를 이루는 거지. 이게 바로 우리가 이룩해야 할 통일이란다.
컴퓨터로도 바둑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별 재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컴퓨터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자연의 세계가 있다는 것, 바둑이라는 또 하나 다른 기막힌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아 두어라. 모든 것을 기계가 결정하는 컴퓨터와 모든 걸 하나하나 사람이 결정하는 바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겠지.
아빠, 엄마가 요새 무지무지하게 바쁜가 보지? 할아버지는 느긋하게 바둑 공부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너 건강해야 한다. 좋은 시를 많이 써라. 시야말로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일이니까.
할아버지 씀
손자가 컴퓨터롤 그린 그림을 받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