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0618 뼈를 바수어 보답해야 하는 거룩한 죽음

당신께





쉰까지만 살았으면 한이 없겠다던 사람이 어느새 결혼 50년을 4년 후로 바라보도록 살았으니, 모든 게 당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혼 46년을 아차 잊고 넘었는데 이철용 의원 덕에 당신을 안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방에 돌아와서야 그 생각이 났군요. 오늘은 꼭 이감될 줄 알고 있다 보니 그리되었군요.



72년이라는 생애에서 당신과 같이 살아온 46년이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그건 정말 황량한 것이었겠지요. 그나마 21세기까지 어쩌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만큼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건 거의 확실한 이야기. “나 21세기를 볼 거야” 하면 당신은 늘 “욕심도 많으셔” 그랬었지요. 그런데 그게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게 되었으니, 앞으로 10년 지나면 내 나이 여든둘, 우리는 결혼 56년을 맞이하게 되겠군요.



지난 46년을 회상하면 모든 게 덤이라는 생각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에게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구려.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약혼식을 올리고 결혼식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동해안을 거쳐 용정까지 여행할 때 당신 기분은 어땠는지? 통일이 되면 결혼 기념 여행으로 기차 타고 동해안을 거쳐 용정까지 갑시다. 금혼식에 그게 가능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의 첫 교역지 만보산이 우리 신혼 생활의 보금자리였지요. 만주가 내 잔뼈가 굵어진 데인데도 만보산은 정말 내게 황량하게만 느껴졌었는데, 당신에게야 얼마나 그랬으랴는 생각이 드는군요. 만보산 1년, 그리고 신경에 나와서 2년. 당신은 영실이와 같이 중국 땅 시골에 나가서 해방을 맞고 나는 신경에서 해방을 맞았지요. 영실이를 신경에 묻고, 다섯 달 된 호근이를 뱃속에 가지고 중공군과 국부군 전투 지대를 뚫고 압록강을 건너 평양을 거쳐 38선을 건너다가 영원히 갈릴 뻔하던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 



6·25가 터진 게 내가 서른두 살, 당신이 서른한 살 되던 때군요. 아버님과 당신을 공산군의 손에 잃을 뻔했는가 하면 호근이는 고아가 될 뻔했지만, 우리는 다들 무사했다는 걸 감사해야 하는지, 송구스러워해야 하는지? 성서 번역의 중책을 지게 됐을 때 하느님은 이 일을 위해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거라고 믿고 신학교에도, 교회에도 사표를 내고 달라붙었었는데, 그 덕분에 시인의 반열에 끼이게 됐지만, 성경 번역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져 당신은 다섯 번째 옥바라지를 하게 되었구요.



징역 사는 동안에 예수를 정말 알 수 있게 되었고, 「꿈을 비는 마음」, 「잠꼬대 아닌 잠꼬대」 같은 시를 남기게 되었고, 의사도 되고, 온 가족이 통일꾼이 되고, 남은 일은 1995년 안에 통일을 이룩하는 일뿐이군요.



우리의 인생은 결코 결코 실패일 수 없군요. 민족사의 빛나는 내일 속에 서 있게 되었다는 걸 무엇으로 다 감당하리오. 하느님의 승리가 우리의 생애 속에서 깃발로 휘날리고 있으니. 수많은 거룩한 죽음에 뼈를 바수어 보답해야지요. 우리의 생 속에서 나부끼는 승리의 깃발은 바로 그들의 승리인 거죠. 만세, 만세, 만세.





당신의 사랑








결혼 46주년을 맞아 46년의 삶을 뒤돌아보며 아내에게 감사하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