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같은 처형

이모님께

 

오늘은 뜻밖에 이모님을 뵙게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외로울 새 없이 외로운 용길이를 정을 푹푹 쏟아 사랑해 주시지요. 한편 오랜만에 푹 쉬시지요. ‘다워라’ 삼 형제를 보살피시느라고 힘드셨을 테니까요.

지금부터 21년 전이었습니다. 우리가 결혼 25주년 여행을 떠날 때 마실 것 먹을 것을 장만해서 명열이와 같이 서울역에 나와 주셨지요. 저는 그때 장모님의 사랑 같은 걸 얼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동주는 몽규 앞에서 열등감을 느꼈고 나는 동주 앞에서 열등감을 느꼈다”고 했더니 “지금은 몽규와 동주가 지하에서 열등감을 느낄 거예요”라고 하셨지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사위를 대견스러워하시는 장모님의 모습을 뵙는 것 같았습니다. 몽규나 동주가 지하에서 무슨 열등감을 느끼겠어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박수를 쳐 주겠지요.

명훈이 차이코프스키상을 탔을 때는 그냥 명훈이 예외적인 특출한 음악가이려니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또 최현수와 박엘리사 둘씩이나 상을 타는 걸 보면서, 그 몇 개인의 음악적인 소질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음악 예술이 남달리 뛰어나다는 것이 증명된 것 같아 한없이 기쁩니다. 특히 최현수 씨의 경우는 악기라는 보조 수단을 쓰지 않고 천부의 목소리만으로 최우수상을 탔다는 것은 보통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예술은 미술이 아니라 음악과 춤이라는 것이 우리 옛 조상들의 유목민 전통과 관계가 깊다는 이야기를 오늘 제가 했잖습니까? 방에 돌아와서 생각하니까 유목민은 밤이면 불을 피워 놓고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밤을 새워 가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수는 있어도, 그림을 그려 붙여 놓고 감상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예술이 아무리 음악이라고 하더라도, 명훈이가 이룩한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아무도 따를 수 없이 위대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명훈이는 모스크바를 정복한 데 멎지 않고 세계에서도 최고요, 문화적인 우월감을 가진 프랑스에서도 파리를 정복했습니다. 프랑스가 국력을 쏟고 프랑스의 명예를 걸고 창설한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감독 겸 지휘자가 되었다는 데 멎는 게 아닙니다. 작곡된 이후 한 번도 제대로 공연된 일이 없는 작품에 도전해서 그 진가를 프랑스인들과 세계인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정말 장하고 또 장합니다.

교향악이라는 게 모든 음악의 대종합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명훈이 피아노 연주자에서 교향악 지휘자로 전신하는 것이 좀 아쉬웠었습니다. 저번에 서울에서 만났을 때 본인에게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알았습니다. 명훈이는 피아노 건반이나 두드리고 있을 음악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음악의 대종합인 교향악에서 모든 예술의 대종합인 오페라에까지 뛰어넘을 만큼 명훈이는 그 세계가 컸습니다.

명훈이는 피아노나 교향악 음악이 갖는 추상성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군요. 인간의, 그것도 민중의 희로애락이 무대에 올려지는 음악에서 명훈의 진가가 발휘되었군요. 명훈이는 모스크바나 파리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 음악, 교향악을 뛰어넘어 서구의 민중음악인 오페라를 정복했군요. 정말정말 장하구 장하구 또 장한 일입니다.

녹화가 될 텐데 비디오 테이프를 들여보내 주시면 여기서 보고 싶습니다. 꼭 부탁합니다. 오랜만에 용길이와 동기의 정을 한껏 누리세요. 호근이가 신명을 바치는 민중 음악을, 민중 예술을 보고 듣고 갈 기회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럴 기회가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봄길의 늦봄 올림

 

 

교도소로 면회 왔다 간 처형에게 사위 정명훈의 파리 오페라단 음악 감독 취임을 축하하며 공연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 줄 것을 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