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어머니들의 가슴, 찢어진 조국

봄길님께





아주 순조롭게 회복되어 가고 있어요. 하루 세 끼니를 먹기로 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그것이 나의 건강에만 좋은 게 아니라는 게 새록새록 드러나는군요. 앞으로 나가서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과 맞추어 나가는 데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우선 하루 세 번 밥을 축복으로 즐긴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오. 밥 한 숟가락 떠넣고 오래오래 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그 향기로운 단맛이 어떻다고 하면 좋을까? 그건 아무것과도 비길 수 없는 밥만이 가진 독특한 맛이거든요. 밥 먹고 양치를 안 해요. 두세 시간 그 그윽한 향기가 입안에서 감돌거든요. 부식이라야 엷은 된장국인데, 멸치를 넣은 감잣국이예요. 방제명이 한 말이 생각나서 감잣국을 끓여달라고 했지요. 감자는 비타민C가 풍부한데, 감자의 비타민C는 물로 끓여도 죽지 않는다니까. 내가 지금 섭취할 수 있는 비타민 C는 감자의 비타민 C 밖에 없거든요. 오늘 토마토 쥬스를 사 먹도록 해 달라고 했는데, 그것만 되면 비타민 C 문제는 해결되죠. 내일부터는 기름과 고추와 미원을 쓰지 않은 찬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보아서 먹을 만하면 조금씩 먹어 봐야지요. 아무튼 밥과 감자의 농매(녹말의 방언)가 침과 섞여 만들어내는 단맛은 그 향기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농매에 침이 섞여 내 몸에 에너지인 자연 당분을 만들어내니 이 또한 좋구요. 아 참. 방금 점심을 끝냈는데, 점심에 처음으로 김을 먹었는데, 이 또한 전에 없이 맛있군요.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온몸, 온 생활로 구하면, 먹고 입는 것이 덤으로 그저 주어질 거라고 했는데, 이 덤이라는 건 축복이라는 말 아니겠어요? 나는 그 축복을 하루 세 번이나 느끼게 된다는 말이거든요. 



세끼니 먹는 게 좋은 건 그것만이 아니거든요. 우선 당신이 안심할 수 있다는 것, 이것도 꽤 큰일이지요. 밥에 된장국, 그리고 김치 한 가지 놓고 먹는 사람들도 이걸 무한히 즐기며 하늘의 축복으로 감사할 수 있는 길을 뭇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요? 그뿐이 아니라구요. 농민들을 생각하며 하루에 한 번 드리던 기도를 세 번 드리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지. 식사 기도 때는 농민들만을 위해서 기도하기로 했다오. 다른 사람들, 나라와 겨레를 위한 기도는 딴 시간에 별도로 하기로 하구요.



난 요새 통일 조국에 담을 사랑 노래들을 계속해서 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10대 소년•소녀의 가슴에서 싹터 자라가는 사랑을 계속해서 추구해 가는 중. 내 마음뿐 아니라, 몸도 젊어진다는 느낌이군요. 



이번 『살림』에 쓴 안(병무) 박사의 글은 그의 기가 아직 힘차게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어서 정말 기쁘군요. 내일은 그에게 편지를 쓰도록 하겠어요. 아! 얼마나 명쾌한지. 그 한복판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나보다 사물을 훨씬 객관적으로 볼 수 있군요. 그는 권외에 선 방관자 같았는데, 방관자가 아니었군요. 그래서 민중 속에 끼지 않으면서도 민중 신학을 할 수 있겠죠. 



송기원 씨는 역시 소설가가 아니라 시인이군요. 유정모 씨의 작품도 읽은 다음 그에게 편지를 쓰기로 하지요. 어제부터 기에 관해서 쓰기 시작. 이제 『건강과 인생』 저술을 계속해야겠기에 오늘은 이만 총총. 당신의 늦봄





(강)경대 어머니





경대 어머니 밥을 못 잡수신다는 말을 듣고 저는 목이 메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굶었어야 했는데, 경대 어머니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경대 어머니, 경대 어머니 가슴만 찢어진 게 아닙니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찢어진 가슴을 안고 20년이나 노동자들을 제 아들 태일이 같이 사랑하며 천만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찢어진 가슴으로 피를 토하며 살아가는 어머니들이 경대 어머니 곁에 얼마나 많습니까?



찢어진 건 어머니들 가슴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쳐다보는 우리의 하늘도 찢어져 피를 쏟고 있습니다. 우리를 떠받들어 주는 땅도 찢어져 속으로 끙끙대고 있습니다. 동해 바다도, 서해 바다도, 다도해도, 제주도 앞바다도 찢어져 온통 피바다입니다. 꽃잎, 나뭇잎, 풀잎, 어느 하나 찢어지지 않은 게 있습니까? 참새 울음도 가슴 찢어진 울음입니다. 흰 눈 위에 찍힌 토끼, 너구리, 까치, 여우, 곰의 발자국도 모두 핏자국 아닙니까?



아! 조국이 찢겨 있는데, 어찌 경대 어머니 가슴만 찢어졌겠습니까? 이 찢어진 가슴들, 찢어진 조국이 하나 되는 날에야 아물겠지요. 그날의 경대 어머니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의 천배, 만배가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날이 오고 있습니다. 기운 내세요. 경대 어머니!



안동 교도소에서 늦봄 올림



1991.07.11





 아내에게는 세 끼니를 먹는 기쁨에 대한 얘기를, 강경대의 어머니에게는 아들을 잃는 슬픔을 위로하는 글을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