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족적인 진실

봄길님께





당신 고생이 많은가 봐. 두 달 동안에 영 얼굴이 말이 아니니. 만년 낙천가 박용길이가 왜 그렇지요? 나는 여기서 하루하루 너무나 감사로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밥상을 맞이하고 감사만 외다가 이 감사를 온 겨레의 것이 되도록 해 달라고 빌었는데.



당신뿐 아니라 동환이도, 은숙이도, 영미도, 바우도, 다 건강이 안 좋아 보여요. 건강해 보이는 건 호근이 하나뿐이니, 이제는 정말 내가 빨리 나가서 우선 가족들의 건강을 돌보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구요. 은숙의 노래에 인생이 제대로 담기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의 음악성에 푹 젖어 노래를 부르면, 기쁠 거고, 기쁨은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텐데. 은숙이 지금 생의 중대한 고비인 것 같아. 긴~ 숨을 쉬고 가슴을 쫙 펴고 도레미화솔라시도~를 뽑아봐요. 길게 뽑는 도~ 소리와 함께 녹아 버리면, 온몸에 생기처럼 뮤즈가 차 넘칠 테니까.





바우야





밥을 잘 씹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 줄 아니? 밥알들은 우리 입에서 잘 씹히기를 바라고 있단다. 향기로운 단맛으로 입안을 채우고 싶은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거다. 그게 밥알들을 사랑해 주는 거지. 그리하여 밥알들은 고마운 줄 아는 사람이 되지. 푸성귀를 살리고 싶은 네 사랑, 정말 아름답구나. 그 푸성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네 사랑하는 몸의 일부를 만들어 주는 거다. 채소 많이 먹고 건강하거라.







동주 형





형은 시집 한 권 남기고 갔는데, 난 다섯 번째 시집을 내게 되었군요. 꼭 죄를 짓는 것 같은 심정이군요. 나같이 평범한 시인도 감옥에 들어오면 시가 쏟아져 나오는데, 형같이 타고난 시인이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억울한 죽음을 날마다 숨 쉬며 얼마나 절절한 시들을 짓씹었을까? 그 시들이 살아나왔으면, 형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습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을 텐데, 그 절절한 시들이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간 걸 생각하면 난 죽고만 싶은 심정이 된다오. 



그 시들을 나의 무딘 안테나로 잡아보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잘 안되는군요. 그 생각만 하면, 난 몸살을 앓는다오. 이번 다섯 번째 시집에도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진 형의 시들은 거의 잡히지 않았군요.



그러나 감옥에서 신문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형은 상상도 못 할 거로구만. 그냥 꿈만 같은 이야기죠. 그리고 집필 허가가 나서 얼마든지 시상이 떠오를 때 이를 쓸 수 있다는 게 어떤 일인지, 이건 아마 형도 이해할 수 있을 거요. 시상이 떠오르는데 쓸 수 없다는 건, 이건 고문이라는 거. 그래서 난 한겨레 신문을 펴놓고 거기 어디에 시가 없나 하고 날마다 찾았거든요. 신문 광고란까지. 그런데 시가 없는 날이 없어서 정말 놀랍고 고맙더군요. 



이 시들은 나의 넷째 시집에서 추구하던 진실을 계속 추구하는 것이었죠. 우리가 깨부수어야 할 거짓은 분단 아니겠소? 그러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족적인 진실, 그건 통일이구요. 그걸 나는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양심』을 주제로 몇 편 시를 써 보았죠. 



그 진실이 사랑의 토양이라고 믿고 양심을 일깨우며 진실을 추구하다가 보니 돌같이 굳은 땅을 뚫고 여리디여린 사랑이 싹 트는 게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사랑 노래도 몇 편이 시집에 실리게 되었죠. 아마도 나의 다음 시집에는 사랑 노래가 꽤 많이 실릴 거라고 생각되는군요.



아무리 나의 시가 형의 눈엔 성에 차지 않는 허접쓰레기 같아도, 불을 지르면 뜨거운 불길로 타오르기야 하지 않겠소? 그것으로 위로를 받으며 쓰고 쓰고 또 쓰는 거죠, 뭐. 시집을 낼 때마다 이제 당분간 시를 못 쓰지 싶었는데, 이번만은 그렇지 않군요. 지금 사랑의 노래가 계속 나의 붓끝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니까요.



나의 엉성한 시집을 나의 조카 영미의 미술이 적잖이 보완해 주리라고 믿기는 하는데, 시집이 나오기 전에는 볼 길이 없으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릴밖에.



형이 그리워 목울대 울컥 눈물을 삼키면서.



통일 염원 47년 7월20일  안동에서 아우 익환 올림







이철용 장로님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닐테지요? 난 이 장로가 큰 바다를 누비는 大魚가 되리라고 믿었었는데. 대공을 나는 대봉이 되리라고 믿었는데, 더 쓸 말이 없군요. 한 사람 인생을 사는 것도 어렵지만, 역사를 산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니겠어요? 



문익환



1991.07.20 



 아내에게는 가족의 건강에 대한 걱정하는 마음을, 옛 친구 윤동주에게는 다섯 번째 시집을 내면서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