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수마찰과 경락

봄길님

 

세상에는 경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있었고 지금도 있는데, 냉수마찰이 경락에 그렇게 좋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군요. 적어도 내가 그동안 읽고 얻어들은 이야기 중에는 없었어요. 냉수마찰을 하면 피부에 좋다든가 혈액순환이 잘 돼서 좋다는 정도지요. 그런데 요새 내가 냉수마찰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냉수마찰이 경락 전체를 종합적으로 고루 자극해 주는 막강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 난 왜 이렇게 남이 무심히 넘기는 걸 무심히 넘기지 않고 거기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야 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요. 냉수마찰이 경락 요법의 완성이라고 해도 되겠군요. 무릎 아래와 팔꿈치 아래만 해도 좋아요. 발과 무릎 아래 다리를 위로 향해, 손과 팔꿈치 아래는 심장을 향해서 안쪽으로 미는 거죠. 그 이상 경락을 강화할 방도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밥을 먹고 난 다음 하루 세 번 경락을 총가동시키는 방도를 이야기하지요. 위경락은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손바닥 쪽 가장자리에 있거든요. 그걸 손가락 끝쪽에서 좀 세게 누르면서 밀어 올리면 돼요. 14경락 다 할 것도 없어요. 위경락만 자극해서 가동해 놓은 다음 오른손 왼손 다섯 손가락 끝을 가볍게 대고 있으면, 온 경락이 자동으로 완전 가동이 돼요. 긴장을 풀고 누워서 고요히 숨 쉬고 있으면 좋지만, 식구들끼리 친구들끼리 즐거운 담소를 하면서 그러고 있어도 돼요. 편안하게 평상시보다 조금만 길게 숨을 쉬면서. 이 두 가지만 하면 의약은 저리 가라고 해도 된다는 게 나의 확신. 유가족 어머니들 몸이 매우 안 좋으신데, 이걸 가르쳐 주시오.

토요일 당신의 편지 37 ~ 40신까지 들어와서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오. 바우의 재밌는 편지도. 그놈은 남달리 유머가 있어서 좋군요. 인생을 그만큼 여유 있고, 즐겁게 살 수 있겠다는 걸 말해 주는 거죠. 무슨 생각으로 클라리넷을 하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클라리넷은 건강에도 좋을 거예요. 목관 악기는 숨을 깊이 들여 마셔야 하거든요. 그 점은 성악과 같은 점이지요. 게다가 그 음악을 즐기게 된다면, 더더욱 좋구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 소리가 어쩌면 바우의 인품에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바우, 열심히 해서 할아버지도 즐겁게 해 줘.

요새 김준엽 씨 회고록을 읽는데, 장준하의 돌베개와 함께 읽으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좋군요. 중국에 가기 전부터 중국에 관심이 있어서 중국사를 전공하던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낀 걸 쓴 거고,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려는 뚜렷한 의식을 가진 사람의 기록이어서 좋군요.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구요.

그 책에 희선 씨 할아버지 사진이 있군요. 金學奎 장군이라고. 돌베개에도 나오지요.  金學奎 하면 내 외조부님과 한 학렬이군요. 희선 씨 며칠 전 한겨레에 기고한 글 구구절절 옳은 말인데, 역사란 그런 논리로만 전개되는 게 아니거든요. 정의를 바탕으로 한 바른 이론과 힘의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역사는 진전된다는 걸 한 70년 살고 보니 좀 알게 되었군요. 똑똑한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이라고는… 그런데 똑똑한 것만 가지고는 또 안 된다는 것도 70년 인생 경험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슬슬 속아도 주는 어수룩한 데도 있어야 하거든요.

오늘은 건강에 관한 글보다는 사랑 노래를 좀 쓰려고 해요. 바둑알이 없어서 무얼로 대용하는지 아세요? 땅콩 껍데기 벗긴 건 백이고, 그대로인 건 흑이고. 요새 토마토를 먹는데, 얼마나 신선하고 잘 익었는지, 이렇게 좋은 토마토는 만주 우리 마당의 걸 따먹던 때 맛은 안 되지만, 오랜만에 맛있는 토마토를 먹고 있어요. 아직 짜고 단 것은 삼가고 있죠. 고기나 땅콩 조금씩 먹어 보는데 별 지장 없이 소화하네요. 김치류는 물에 헹구어 먹구요.

그럼 오늘은 이만 (20,000) → 바우의 유머 당신의 사랑 늦봄 

 

 

방제명

 

왜 사람이 그래? 앞으로 나를 형으로 계속 모시려거든 술을 딱 끊고 밥을 먹으라고. 그런 건 기백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그냥 똥별이야. 똥별로 무얼 한다는 거야? 어제저녁에는 내 몸이 아주 새 경지에 들어갔다구. 숨을 쉬는 듯 마는 듯 아주아주 가볍게 숨을 쉬는데, 온몸에 기가 터질 듯 했다구. 한 세 시간 동안. 형은 지금 이 정도야. 그런데 제명인 술로 세월을 보낸다구? 그건 자포자기야. 무엇 때문에? 형 때문에? 형 때문에 자포자기할 필요는 없어. 나를 따르려거든 나처럼 제 몸을 철저하게 사랑하라구. 그러지 않으면, 내 동생 될 자격이 없으니까. 알았어? 술을 끊었다는 편지를 기다린다.

 

형 씀

1991.07.22

 

 아내에게는 냉수마찰이 경락에 좋다는 것과 김준엽의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얘기하고, 방제명에게 술을 끊고 건강에 유의하라는 권하는 얘기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