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당신께

 

당신의 그 맑은 목소리, 그 맑은 웃음이 나를 이렇듯 젊게 하는 힘이라는 걸 오늘 또 절실히 느꼈군요. 시워나가 그렇게 몸이 날렵하고 운동 신경이 발달되어 있어서 정말 좋군요. 문씨 가문은 좀 몸이 무거운 편인데, 내 친손녀, 외손녀가 그렇게 몸이 날렵하다니 내가 괜히 기분이 좋네요. 

오늘까지 대장기맥, 방광기맥, 신장기맥, 비장기맥, 폐기맥에 관한 치료법을 쓰고 내일 위기맥에 관해서 쓰기 시작해야지요. 경락이라는 말을 기맥이라는 말로 바꾸어 쓰기로 했어요. 기가 통하는 맥이라는 게 경락의 뜻이니까. 대장이니, 방광이니 하는 말을 우리 말로 큰배알, 오줌개(통), 콩팥, 지라, 허파로 바로잡아 쓰고 싶은데, 위는 똥집이라고 해야 할 텐데, 어감이 너무 안 좋지요? 고민이 생겼군요. 

호근이 쓴 글 (10월 1일 한겨레)은 새카맣게 먹칠이 되어 나와서 못 읽었군요. 나의 공적을 자화자찬하는 건 뭐하지만, 나의 3단계 통일 방안과 노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통일 방안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북쪽을 그리로 끌어왔다는 데 나의 공적이 있죠.

남북이 다 유엔에 들어가서 적대관계를 해소한 이 마당에 국가보안법을 당연히 폐기되어야 하고,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의 석방도 당연한 주장이죠. 그래야 이 정부의 통일 의지가 진정한 것이라는 걸 행동으로 보이는 거죠. 젊은이들이 늙은이들은 가만있으라고 하면서 저희만 단식 항의를 한다니까, 나도 이제 늙은이니까 젊은이들의 뜻을 따라야지요. 같이 단식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도 이젠 응원석에 올라앉아도 되니까. 국민의 건강 문제에나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과 정력을 쏟으면서.

 

다시 당신께

 

오늘 새벽 꿈엔 황금찬 씨를 반가이 만났죠.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하던 때 하루도 안 만나면 서운했는데, 정말 오래 못 만났군요. 황 시인을 비롯해서 몇몇 그럴 수 없던 친구들 언제나 옛 우정을 다시 꽃피울 수 있을는지! 아쉽기 그지없군요. 우정도 자기 초월이 없으면 언제나 깨질 수 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되는군요. 이해관계와 주의 주장에 얽매여 있는 한 우정은 모래 위에 서 있는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군요. 역시 중요한 것은 대의(大義)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해관계나 주의 주장이 달라도 대의에서는 적어도 일치되어야겠지요. 그래야 우정이 성립되고, 그 우정이 날이 갈수록 돈독해질 수 있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이걸 대의라고 한다면, 이해관계나 주의 주장의 차이는 정말 검불에 지나지 않는 걸 텐데, 역시 무서운 건 이해관계라는 생각이 드네요. 주의 주장이란 이해관계의 합리화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황금찬 씨 등등 옛 다정하던 벗들과 거리가 멀어진 건 이해관계 때문은 아니었죠. 그건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게 아닐까 싶군요. 그가 계속 서정시의 선에 머물러 있다든가, 내가 사회 문제, 민족 문제를 내용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게 우리들의 우정을 갈라놓을 만한 이유가 될 수는 없으니까. 역시 책임은 나한테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그런 우정을 챙길 만한 시간 없이 살아왔다는 게. 우정을 되살리는 노력을 다시 해야 할 것 같군요.

아쉬운 건 명동, 용정의 우정들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일. 동주가 살아 있다면, 그 우정이 한결같았겠지요. 동주가 살아 있다면, 난 시인이 안 되었을 테지만. 윤영춘 선생님이 일찍 가셨다는 것도 아쉽기 그지없고,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끊겼다가 시만으로 옛 우정을 다시 키울 수 있었던 정우가 없다는 건 정말 아쉽기 그지없군요.

정우와 나의 우정은 많은 것을 일깨워 주네요. 그의 믿음은 나의 믿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죠. 그의 믿음은 현실 사회 문제나 민족 문제를 외면한 개인적·내면적인 신앙이었으니까. 이런 신앙의 차이, 이것은 인생관·세계관의 차이인데, 그 차이가 우리의 우정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는 없었거든요.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한겨레라는 사실 때문만으로 우리는 이해관계나 이념, 주의 주장을 넘어 우정으로 서로 껴안을 수는 없을까! 아니, 그 우정을 토대로 이해관계나 이념, 주의 주장을 조정할 수는 없을까! 고위급 회담장에 마주 앉은 남과 북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우정을 키운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일까! 적대국 책임자끼리 만나는 것도 아니고, 같은 겨레로서 민족 공동의 과제를 풀려고 만났는데, 그게 어림도 없는 일이어도 좋을까! 그게 너무나 비현실적인 낭만이라고 한다면, 민간인끼리 우정을 키우는 일이야 마다할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닐까? 현정화와 리분희의 우정은 그 좋은 보기가 아닐까? 내가 북쪽에 가서 만나고 온 사람들에게 우정을 느낀다면, 이건 역적이 되는 일일까! 이런 의문을 제기해 보고 싶군요.

꿈에 황금찬 씨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우정 문제를 이런저런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이번에 나가면 우정의 회복을 위해서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면서. 오늘은 이만. 당신의 늦봄

1991. 10. 4.

 

 꿈에 오랜 친구 황금찬을 보고 우정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옛 우정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