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서 모든 핵 산업을 몰아내라

당신께

 

어제는 세 교회(한빛, 주민, 향린)와 함께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비는 하루를 보냈지요. 한반도만이 아니라 지구촌의 비핵지대화가 되어야 하죠. 그동안 미·소·영·프 등 핵무기를 개발해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써먹지도 못하는 무기, 사람들이 무서워 떨며 살아가게 하는 무기를 위해서 쓴 돈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엄청나죠. 그 돈을 인류의 번영과 복지를 위해 썼더라면 얼마나 살기 좋은 지구촌이 되었을까요? 지금까지는 미·소의 군사 대결이 그나마 명분이 되어 왔는데, 지금은 그 명분마저 없어졌는데….

비핵화라는 건 핵무기를 없앤다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지요. 일체 핵산업을 중단해야지요. 미국에서는 스리마일 섬 (Three Mile Island)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건, 소련에서는 저 유명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들이 일어났지만, 세계 각처에 있는 핵발전소에서 작은 사고는 늘 있고, 사고가 없어도 핵발전소에서 생기는 방사능이 대기 속으로 나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거든요. 핵폐기물 처리도 문제지만, 그보다 거기서 발생하는 방사능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요? 그 방사능을 파이프로 대기권 밖으로 뽑아내기 전에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데. 파이프로 바닷속으로 내보낸다면 고기들이 다 죽을 거고. 사람들은 죽자고 발악을 하는 것 같군요.

핵 산업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핵발전소 건설을 완전 중단하고 우리한테만 세우라고 하는 까닭을 알아야지요. 내년 미국은 대대적인 금연 운동을 전개한다는데, 우리에게 담배 강매가 부쩍 심해지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저희는 핵발전소를 세우지 않으면서 우리더러 세우라는 거나, 저희는 담배를 안 피우면서 우리더러는 사서 피우라는 거나 똑같은 논리지요. 논리라고 할지, 억지라고 할지. 우리 생명의 희생으로 저희의 핵 산업과 담배 산업을 지탱하겠다는 거, 이거 어디 용납할 수 있어요? 천인공노할 소리죠.

당국은 핵발전소가 해롭지 않다고 강변을 하는데, 해롭지 않은 걸 왜 미국은 안 세우죠? 그것으로 국민이 납득하리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겠죠. 그냥 우격다짐이지요.

나의 책 제목은 “조국은 하나다”로 해도 좋을 것 같군요. 부제로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를 붙여도 좋구요. “통일은 다 됐어”도 좋을지 모르죠. 그 시도 실으면서.

나의 시집 101쪽 사진을 빼라고 했는데, 그대로 실려져 있군요. 다시 찍을 때는 그 사진 빼도록.

오늘은 선희에게로 붓을 돌리려오. 이만 총총. 

당신의 늦봄

 

선희야

 

그동안 몇 차례 편지를 받고도 회답이 늦었구나. 건강은 현상 유지라도 한다니 다행이다. 영규를 멀리 떠나보내고 몹시 허전하겠구나. 문규는 영금이네 살던 집을 세놓고 아파트로 옮겼나 보지? 큰 집에 혼자 산다는 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 빨리 며느리를 보아 손주들을 안아보는 기쁨 맛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만한 신랑감이 어디 있겠니? 그런데 신붓감이 없다니, 어디에 천정배필(天定配匹)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여든 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에 어머니를 먼저 보낸 서러움을 늘어놓는 건 체면 없는 일 같아도, 너한테야 못할 말 아니지. 지금 이 감방에도 아버지, 어머니의 큼지막한 사진이 붙어 있다. 나의 순간순간을 지켜보고 계시지. 내가 잠들어 있을 때도 깨어 빙긋이 웃으시면서. 전태일의 어머니를 비롯해서 사랑하는 자식을 앞세운 위대하면서도 가슴 아프기 그지없는 어머니들이 이 땅엔 너무 많아. 그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시지. 장례식 날 모두 “민족의 어머니”, “통일의 어머니”라고들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어쩌다가 우리는 민족의 어머니를 우리 개인의 어머니로 모시고 살았나 싶어 4.19 묘지 앞 노제 때엔 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단다. 어머니의 인간 승리가 나를 춤추게 했단다.

내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아라. 난 지금 전에 없이 건강하니까. 이 건강의 축복과 감사를 어떻게 만인의 것으로 만들 것인지가 나의 기도요, 생활 목표니까. 나의 시집을 읽어 보아서 알겠지만, 저번 안양 교도소에 있을 때는 꼭 죽는 줄 알았구나.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의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새 세계를 여는 계기가 되었거든. 나의 몸에 있던 여러 가지 병이 다 내가 남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는 계기가 되었거든. 이렇게 병이 하느님의 은총이 되었다. 지금 네가 내 옆에 있으면, 네 병 치료도 치료지만, 네가 가지고 있는 병과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병마에서 구하는 길을 찾는 데 큰 도움도 될 텐데.

지금도 손톱을 지긋지긋 눌러 주는지 모르겠구나. 그건 분명히 네 병엔 좋은 거다. 그와 동시에 이 손 그림의 점들에 파스를 붙여 주어라. 분명히 좋을 테니까. 오빠를 믿어라. 사실 뇌경락을 찾은 건 너 때문이다. 너의 병을 고쳐주려면 뇌경락을 찾아야 한다면서 찾다가 발견한 건데, 네 병 치료에 이용을 못 하다니. 양파를 많이 먹어라. 그게 네게는 제일 좋은 자연식품 약이다. 아침 설거지를 하고 나서 붙였다가 점식 준비 전에 떼고, 저녁 설거질이 끝나고 붙였다가 자리에 들기 전에 떼어라. 반드시 효력이 있을 게다. 이건 문규 아빠에게도 좋을 테니까, 둘이서 같이 하면 더욱 좋겠지. 오빠 씀

1991. 10. 21.

 

 아내에게는 지구촌의 비핵지대화에 대한 생각을, 동생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동생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의 말을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