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윤보선도 기소되다니!

당신께!

 

어제는 내가 부쩍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안동교도소 소장이나 상대로 투쟁을 벌인다는 게 나로서는 좀스러워진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요가가 그래서 좋은 거군요. 방에 돌아와서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고 앉아 고요히 심호흡을 한참 했더니, 머리가 개고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판단이 섰어요. 이를테면 어른스러워졌죠. 다시 한번.

그래서 그런지 오늘 새벽에는 정말 아름답고 즐거운 꿈을 꾸었다오. 당신과 같이 누구 장례식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우리는 어느샌가 긴 지하도를 걷고 있었어요. 지하도 끝나는 곳에 다다라 보니까 벽에 쇠들이 박혀 있는데 그 쇠를 잡고 디디며 올라가게 되어 있더군요. 그걸 잡고 디디며 다 올라가서 창문이 있기에 그걸 열려다가 아찔 떨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몸을 추슬러 창을 열고 들어가니, 거기가 지상의 세계, 이화대학 구내였어요. 당신도 용케 올라왔구요. 아! 그런데 거기가 그리도 아름다운 꽃동산일 줄이야! 박순경 박사, 이효재 씨 등 은퇴 노교수들까지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되돌아왔어요. 아니, 그분들이 나의 꿈속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했죠. 그분들은 오늘 새벽 내 꿈에서처럼 일찍이 예뻐 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도 물론 갓 물오른 싱싱한 젊음으로 되돌아갔구요.

76년 3월 9일 새벽 검찰청 대기실 현실로 돌아와 볼까요? 대기실에 들어서니, 거기에 김대중 씨가 앉아 있더군요. 깜짝 놀랐지요. 우리가 오늘 검찰청으로 넘어온 것을 어떻게 알고 인사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김대중 씨는 윤보선 씨에게서 온 선언문에 서명한 것으로 되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가 기소되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윤보선 전 대통령이 기소되다니, 그건 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구요. 내가 맨 마지막으로 대기실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던가 싶군요. 서로 인사들을 하고 조금 서성이다가 차에 올랐지요. 서울구치소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어둑어둑한 때였다고 기억이 되기는 한데, 거기 대기실에서 신현봉 신부가 담배를 권해서 피울 줄도 모르는 담배를 피웠지요. 있는 담배는 다 피우고 들어가야 할 판이니까.

아 참! 신부들이 같이 기소되었다는 것도 전연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군요. 조서에도 신부들이 관련된 것은 내가 전진상회관에서 함 신부를 만나 선언문을 3·1 미사 때에 낭독하게 해달라고 교섭한 일밖에 없는데, 이우정 기도 순서를 넣고, 그 순서에서 선언문 낭독한다고 약속도 하지요. 내가 함 신부를 전진상회관에서 만나는 과정에서 신현봉 신부를 처음 소개받았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문정현 신부는 75년 응암동 한길에서 만난 적이 있어서 구면이라면 구면인데, 조사 과정에서 문 신부의 이야기는 한 번도 거론된 일이 없었거든요.

한마디로 어리둥절할밖에. 모두 조금은 긴장된 것 같았지만, 별로 무거운 심정들은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지요. 나는 주범으로서 이 모든 재판이 나에게 큰 짐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성서 번역 막바지에 이를 마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책임감이 나의 두 어깨를 무겁게 눌렀어요. 그냥 “큰일났구나”, “어쩌면 좋지!” 이 두 마디뿐이었죠.

1992. 3. 4.

 

 검찰청에서 김대중, 윤보선과 신부님 세 분이 함께 기소된 것을 알고 놀랐었던 기억과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기억을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