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수메르의 전통을 이었다

당신께





어제는 뜻밖에 반가웠군요. 당분간 못 볼 줄 알았거든요. 생기발랄한 젊음을 풍기는 당신을 건너다보면서 행복해지는 자신을 느꼈다구요. 자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젊게 만드는지를 다시 확인한 셈이군요. 정말 고마워요. 나의 젊음이 당신에게서 울리는 것도 새삼 확인한 셈이니까요.



노벨 평화상이 결정되었으니까, 후원회를 해체해야 할 텐데, 『한반도와 세계 평화 연구소』로 발전시키면 어떨까 싶은데, 의논해 주시구려. 그 문제가 나의 관심의 초점이 되어 있으니까요.



91년, 92년 연이어 아시아 여성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군요. 멘쵸(Menchu)도 우리와 같은 인종이거든요. 알라스카와 시베리아가 얼음으로 맞닿아 있을 때 미주 대륙으로 건너간 우리 혈족이죠. 사진을 보니까 아주 복스럽게 생겼더군요. 그의 평화상 수상으로 과테말라의 원주민 인권 문제에 큰 진전이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군요. 그들의 인권 문제에 비하면 우리는 마냥 호강일 정도이죠.



오늘은 이만. 당신을 그리며. 늦봄







기세춘 선생님께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이야기에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있지요. 기근이 심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면 마누라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지요. 그들의 아내가 지방 왕들이 몹시 탐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애굽 사람들이 사라를 보자마자 왕에게 보고하거든요. 인물이 출중하기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고 인종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당시 근동 일대에서 수메르인은 최고의 문명인이었기 때문에 지방민이 수메르인 아내를 거느린다는 게 그렇게 영광이었던 겁니다.



아브라함이 그 일대에서 특별한 존경을 받았다는 증거가 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수하 군대를 거느리고 침략군을 추격해서 쳐서 이기고 포로로 잡혀가던 사람들을 찾아서 개선할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친히 나와서 그를 환영하고 축하한 일이 있습니다. 살램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이죠.



왕이 이렇게 높이 대접하는 사람이었으니 일반 백성이야 더 말해서 뭘 하겠습니까?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은 그 지방민에게 사라를 장사 지낼 땅을 찾아 달라고 요청하지요. 그 요청에 대한 땅 소유자의 대응이 아주 정중합니다(창 23장). 고대 근동에서는 제 고장을 떠난 떠돌이는 천덕꾸러기였는데 아브라함이 떠돌이 신세에 이렇게 정중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어디 가서나 이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수메르인뿐이었습니다. 그는 분명 수메르인이었는데,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그를 셈족의 후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에게는 수메르의 전통과 셈족의 전통이 같이 흘러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은 예수가 묵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생각하시죠. 예수가 묵자보다 5백 년이나 늦게 나타나셨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각기 다른 문화가 서로 스며들며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을 문화전이 (cultural transfusion)라고 하지요. 고대 사회에서도 이런 현상은 상당히 멀리까지 넓게 번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묵자의 영향이 예수에게까지 미쳤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예수는 이스라엘 종교의 전통에서 이해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그런 추측을 하리만큼 묵자와 예수는 너무나 같은 점이 많군요. 거의 쌍둥이 같은 느낌마저 드는군요. 역시 한 줄기에서 뻗은 두 가지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줄기가 바로 수메르 전통 아니겠습니까?



1992. 10. 23





 이 편지 중 아내에게 보낸 전반부는 살림 12월호에 실렸다(아카이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