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와 예수는 똑같이 민주·평등주의자

당신께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보호무역 정책이 강화되는 것이 우리의 경제에 꽤 큰 부담이 되는 반면, 미국이 군국주의화의 길에서 돌아섰다는 게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로 상쇄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되는군요. 미국이 군국주의화에서 발길을 돌린다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세계 전체에 좋은 결과를 빚어 내리라는 것 또한 반가운 일이죠. 미국으로서도 극우 보수 장기 집권을 벗어났다는 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구요.

커져만 가는 빚더미 위에서 군국주의화해 가는 미국은 사실 전 세계의 무거운 부담이었죠. 그 무거운 짐을 앞으로 4년 더 지고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보호주의 무역정책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질 부담은 그리 큰 게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이번 미국 선거가 미국을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대통령 선거보다는 상하원 선거에서 흑인을 위시한 소수 민족의 대거 진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인류의 역사에 반걸음의 진전이라도 될 것이 아닐까 기대하며 두고 봐야지요. 

이만 당신의 사랑

 

 

기세춘 선생님께

 

묵자의 사상 가운데서 벌어진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 것은 “어진 자를 선출하여 천자(天子)를 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농사꾼, 노동자, 장사치를 가리지 않고 어진 자를 찾아 천자로 모신다고 뚜렷이 말했군요. 지금부터 2천5백 년 전에 어떻게 이렇듯 민주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을까? 다만 놀라울 뿐이군요.

그런데 이 점에서도 묵자와 예수는 너무나 같습니다. 예수가 왕(메시아)의 원형으로 생각했던 것이 이사야 53장에 표현된 ‘고난받는 종’ 이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지적했지요. 하늘나라의 주인은 ‘가난한 자들’이라고 말하지요(눅6:20). 마태복음 5장에서는 올바른 일 때문에 가난을 택한 사람(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음이 맑고 어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 곧 새 공동체의 주인공이 된다고 했거든요. 그의 열두 제자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묵자가 생각하는 義는 겸애(兼愛), 즉 공평한 사랑 아닙니까? 義는 구체적으로 利라고 갈파했군요. 만인에게 利로운 것이 義라는 것 아닙니까? 예수는 그것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지요. 내게 利로운 것은 남에게도 利로운 것이니까 모든 사람에게 그 利로움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천자가 돼야 한다는 거죠. 예수는 그런 사람이 메시아라는 거구요.

기 선생님! 제가 보기에 이것도 유목민 전통에서 온 겁니다. 최소한도의 소유를 공유해야 하는 유목민들,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모래바람을 헤치고 사람과 양 떼를 제 목숨처럼 알고 이끌어 갈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유목민의 생활 공동체였으니까요. 계속하겠습니다.

1992.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