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등 사상은 유목민의 전통에서 나왔다

바우, 문숙에게

 

너희가 그렇게 사랑을 쏟아붓던 강아지가 사람이 자랑하는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에 치여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다니, 너희의 아픈 가슴 무어라고 달랠 길이 없구나! 세상에는 그렇게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 많단다.

이제 너희가 왜 공부하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때가 된 거 아닐까? 

내가 공주교도소에 있을 때니까, 꼭 10년 전이구나. 10월이 되면 제비들이 수도 없이 모여들어 까불고 지저귀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제비들이 하나도 없더구나. 다 남쪽 따뜻한 나라로 날아갔지.

그런데 작년, 금년에는 제비를 볼 수 없구나. 참새는 곡식을 먹으니까 살아남아 있는데, 벌레를 잡아먹는 제비는 농약이 묻은 벌레들을 잡아먹고 다 죽었지.

요새 강에 물고기들이 뒤틀린 꼴로 떼죽음을 한 걸 사진에서 많이 보지 않았니?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한 다음 거기는 눈먼 고양이가 생기지 않나, 나무 이파리들이 뒤틀리지 않나, 생명이 죽어 가고 있거든.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너희처럼 먹지 못해서 뼈에 살가죽만 씌운 모습으로 눈이 퀭해 있는 사진도 더러 보았지? 너희가 공부하는 것이 이런 가슴 아픈 일에 보탬이 되자고 하는 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니? 이번에 너희가 겪은 아픔이 너희가 왜 사는지, 왜 공부하는 건지를 생각하게 해준다면 또 하나 마이너스가 큰 플러스가 되겠지. 너희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씀

 

 

기세춘 선생님께

 

묵자가 그리도 지키고 싶었던 지도자를 선택하는 전통이 만주에서는 1946년까지 계속 살아 있었습니다. 만주에 가보면 마을들이 대체로 씨족 원시 공산사회였습니다. 마을 이름이 왕가보(王家堡), 강가둔(姜家屯) 등으로 불렸습니다. 70~80명에서 한 백 명의 일가가 다 한 살림을 했죠. 거기서 둔장(屯長)은 나이는 관계없이 유능한 사람이 선택되었거든요. 이 제도를 중국은 중앙집권에 지장이 된다고 깨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유목민 전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메르인이나 우리 동이족에게는 이 유목민 전통이 살아 있었죠. 수메르는 이민 농경 사회를 기반으로 한 도시 문명을 이루어서 살면서도 그 전통을 잃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별도로 연구해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이 수메르 전통이 이스라엘에 흘러 들어갔을 때는 하비루 전통으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하비루 전통에 관해서는 저의 『히브리 민중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엔 세습적인 왕 제도에 강한 반발이 있었는데, 이것은 이런 전통에서 이해돼야 합니다. 왕 제도가 확립된 다음에도 왕은 양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목자라고 이해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런 전통은 우리에게도 조선 말까지 남아 있었던 것 아닙니까? 현감을 목사(牧使)라고 불렀으니까요.

1992.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