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늦은 가을비가 내리네요. 일반 사동 같으면 온종일 방에 갇혀 있겠지만, 이 6사 사람들은 다 일하러 나가고 없어서 오후에 한 시간쯤 복도에 나가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뜀박질을 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랄까요!
오늘 새벽에는 내가 피아노 콩쿠르에 출전하는 꿈을 꾸었는데, 눈앞이 캄캄해서 몇 번 두들기다가 망신만 당하고 내려오는 꿈을 꾸었군요. 꿈에는 안 되는 일이 없다는데, 꿈에도 안 되는 일이 있군요.
오늘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건강하고 명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안계희가 벌써 고희라니 사람의 한평생이 정말 눈 깜박할 사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안계희의 불행한 일생 또한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비극이죠.
박순경 박사 출판 축하회 대성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군요. 통일신학을 그리도 뚜렷이 이론화해 주는 이, 이 땅에서 그 말고 누가 있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죠. 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해 주신 분들께 뭐라고 고마운 말을 다 할 수 있으리오! 특히 버드나무 때는 봄님.
당신이 왔다 가더니, 해가 반짝 나서 밖에 나가 운동할 수 있겠네요. 이만. 당신의 사랑
기세춘 선생님께
기 선생님이 예수와 묵자의 다른 점이라고 지적하신 것도 제가 보기에는 차이점일 수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은 뿌리가 같고 바탕이 너무나 같습니다.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에게 놓인 역사적인 정황과 사회적인 처지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다 수메르-동이-유목민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예수에게 온 그 전통은 하비루 전통으로 강화되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좀 다른 것이겠지요.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묵자는 점점 우세해지는 권력과 부가 점점 더 편중되는 농민 문화 앞에서 유목민들의 평등 사회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예수는 에집트-앗시리아-바벨론-페르시아-그리스-로마라는 고대 근동의 대제국주의 세력들 틈바구니에서 아브라함-모세의 전통을 지켜 낸 약소민족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용광로에 여섯 번 들어가서 제련되었다고나 할는지요? 그것은 엄청난 시련이기도 했지만, 고도한 문화들과 만나 대화하면서도 정체를 잃지 않고 다듬어 온 전통이죠.
예수 당시는 로마가 앞서간 대제국들 어느 나라보다도 넓은 지역을 군대의 힘으로 완전 장악하고 철통같은 통치를 펴나가던 시대였지요. 예수의 현실 인식은 무력항쟁으로 민중해방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후 67년에 무력항쟁으로 독립을 쟁취하려는 젤롯당의 영웅적인 투쟁은 결국 유대인들을 그 후 2천 년 가까이 전 세계로 흩어져 천덕꾸러기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예수의 현실 인식이 젤롯당의 현실 인식보다 옳은 것이었다는 걸 이제 와서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거기에 비해서 묵자가 놓여 있던 처지는 매우 달랐습니다. 묵자의 시대는 유목민 후손들인 동이족이 지금의 만리장성 밖으로 밀려나서 고조선 판도를 형성하고 있을 때였지요.
묵자를 위시한 많은 동이족이 중국 대륙에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그 사회의 일원이었지요.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이 제 세력을 확대하고 지키려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처럼 외세의 지배 아래 있은 것은 아니었지요. 공자가 이 나라에서 뜻을 펴보려고 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 다른 나라로, 그 나라에서 받아 주지 않으면 또 다른 나라를 찾아다녀도 아무 모순이 없었던 것 아닙니까?
묵자도 어느 나라에서나 요청이 오면 제자들을 이 나라, 저 나라 가리지 않고 보냈군요. 이것도 내 나라, 저것도 내 나라였죠.
1992.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