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누룩이 되는 가르침

기세춘 선생님께

 

예수가 처해 있는 상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예수의 제자들을 부르지도 않았고 부른대도 갈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묵자처럼 권력들 사이의 분규와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해결사로 나설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할 수 있었던 평화운동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지요. 로마와 무력항쟁을 일으키려는 젤롯가들에게 무력항쟁을 포기하고 평화의 누룩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현실 인식이 그를 묵자처럼 구체적인 평화운동에 나설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현실 인식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길로써만 성취될 수 있다는 그의 소신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이런 그의 평화의 신념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가 실천한 평화운동의 적극적인 면은 병 고치는 그의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평화는 사회적인 건강이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의 건강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평화는 몸의 건강에 멎는 게 아니죠. 그것은 몸의 건강인 동시에 마음의 건강이죠. 모든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건강을 누리는 사회의 건강이죠. 묵자의 평화운동과 예수의 평화운동을 하나로 묶어야 평화의 온전한 모습을 찾는 것이 될 것 같군요.

석가여래의 평화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우선 그에게는 원수가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평화의 적인 전쟁과 가장 거리가 먼 종교가 바로 불교 아닙니까? 석가여래가 평화에 기여한 최대 업적은 계급 타파였지요. 그는 사회적인 평화의 실천자였습니다.

수메르, 동이족의 전통에서 솟은 인류의 이 세 거봉을 이렇게 정신사적으로 보게 해주신 기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더욱더 진전된 연구로 많은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세요.

1992.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