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故 문익환 목사님 겨레장에 부쳐

김영환이 문익환 목사의 겨레장을 위해 지은 추모시 <우리가 늦봄이 될께요>. 그동안 그가 행했던 일들에 대한 회상과 자신이 그의 죽음을 듣고 행한 일들과 느낀 기분에 대하여 적혀 있음





우리가 늦봄이 될께요

-늦봄 고 문익환 목사님 겨레장에 부쳐



김영환



목사님 지금 어디쯤 계신가요

삶의 끝, 죽음의 언덕 위에 서서

어디를 바라보고 계신가요

그토록 보고 싶던 금강산 두만강 다 보이시나요

말 달리던 북만주 벌판, 용두레 우물가 밤새 소리 그대로인가요

푸른 숲길, 맑은 시냇가 거닐고 계신가요

윤동주, 장준하, 전태일, 성래운, 조영래, 김병곤 형 모두 나와 반겨 주셨나요

6월 항쟁 때 연세대 이한열 장례식에서 애절하게 부르시던

열사님들 모두 함께 계시고요

이름 없이 해방의 길 쓰러져 간 독립군들, 의병들, 농민군들,

광주 영령들 모두 만나보셨나요



목사님 지금 훠이훠이 어딜 가고 계신가요

"가슴이 아파, 가슴이 답답해"하시더니

이제는 편안하신가요

"통일은 다 됐어. 통일 맞을 준비를 해야 해" 밤잠 설치시며

숨가쁜 나날들 하루같이 일구시던 목사님

죽음의 문 활짝 열고 삶과 죽음 통일하셨나요



꼿꼿이 서서 훌쩍 죽음의 출렁다리 건너가신 목사님

참으로 당신답게 훌훌 털고 가신 건가요



당신은 알고 계셨지요

다가오는 죽음, 얼마 남지 않은 이승에서의 삶

그래 부랴부랴 통일맞이 준비하신 게지요

종로3가 사무실 마지막으로 열어놓고 가신 게지요

나머지 몸에 남은 기 김남주 시인께 넣어주시고

지금 그곳에서도 쉬지 않고 남주 형 살리려고 생명의 침 놓고 계시지요

"남주가 살아날 것 같애, 남주가 살아날 것 같애"

목련꽃처럼 부시게 웃으시더니 먼저 가셨군요

통일맞이 40대 실무자 구하셨구요?



북쪽이 가진 자주성과 남쪽의 민중성을 결합하면

"통일조국 멋진 나라, 멋들어진 민중의 나라가 될거야" 하시더니

모세처럼 통일의 그날 저 앞에 있는데 못 보고 가셨군요

아니 그곳에서 보시려고 높이 올라 터잡고 계시지요



구름 한 점 없는 차가운 밤이었어요

목사님 떠나신 그날 밤

"민족의 별 하나가 떨어졌다"고

택시 기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나뭇가지조차 헐벗어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요 며칠 동안

당신 없는 밤과 낮은 눈물로 보냈습니다

당신 없는 도시에 햇살이 나리고

우리들 꾸역꾸역 살아가지만

땅도 치고 소리도 지르고 가슴속에 화톳불 잠재우려

쓴 소주도 털어넣어 보았지만

가슴을 훑는 이 외로움 가눌 수가 없더군요



목사님 계신 군부독재 시절이 차라리 그리워집니다

목사님 함께 계시다면

지나간 분단의 시절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잠들던 교도소의 그 먹방

검정 이불이 그리워집니다

목사님 따뜻한 손길 등에 토닥토닥 나리던

저임금,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봄이 왔네 봄이 왔어 부르시며 어깨춤 추시던

그 가난의 밤, 후미진 솔밭집 풋고추, 된장찌개가 좋았습니다

민주화운동 유가족의 가슴에 박힌 사금파리 뽑아주시고

손 꼭 잡아주시던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민통령 시절 걸핏하면 연행,투옥,연금되던

그 지긋지긋한 지난날이 당신 없는 지금 그리워집니다

대통령 선거 패배의 그날도 그립습니다

구로구청 포연이 쌓인 그 부정선거 싸움터 이제는

두렵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 고통스런 지난날조차

당신이 계셨으므로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니

당신이 우리의 모든 것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니

나의 꿈 나의 희망, 우리들의 행복이

모두 당신을 딛고 서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니

우리는 당신이 누워 죽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당신을 우리는 북한산 인수봉으로만 알았습니다

눈보라 비바람에 언제나 도시 한편에 웃고 서 있는

아니 그저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天池인 줄만 알았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나니

남과 북이,

노인과 아이가,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왜 모두가 조국의 흙이 되고

왜 모두가 조국의 들풀이 되고

왜 모두가 조국의 꽃씨가 되어

한라산으로 백두산으로 묘향산으로 다니는지

천둥처럼 일깨워주셨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보십시오. 한반도에 흐르는 통곡 소리를

남과 북에 나부끼는 輓章과 한숨 소리를

마른 나뭇가지 헐벗은 풀잎조차

길가에서 떨고 있습니다



어제는 지리산 피아골에서 언 땅을 뚫고

얼음버섯이 솟아올랐답니다

그 대밭에서 나뭇잎 심하게 떨고 있었고요

오늘은 오대산 하진부리 방아다리 약수터 가는 길

고구려 장수 닮은 나무가 새벽녘부터 잡목 더불고

심하게 떨고 있답니다

누가 그러는데, 목사님 묘향산 단군굴에 이끼들이 파랗게

일어나 앉아 있다 합디다

강물들도 아침부터

바다로 모이기로 했답니다



오늘 목사님 우리 곁 떠나

겨레의 큰 길 가시는 날

단숨에 죽음을 넘고,

단숨에 분단을 넘고,

단숨에 분열을 넘고,

단숨에 노쇠한 심장 벗어버리고

통일 기관차 갈아타기 위해

멀리 떠나시는 날



북한강가 모란공원 양지바른 곳

옷가지 육신은 흙 속에 묻고

훨훨 날아다닐 그 계획으로

벌써 마음 바빠지셨지요

벌써 목사님 계신 그 동산 웃음꽃 피셨지요

밤마다 민주 영령들 모여

도란도란 우리 얘기 하실 거죠

소리 없이 축구 시합 응원하듯 민주주의 응원하실 거죠

통일 열어제껴라, 통일 열어제껴라 박수 치실 거죠

분열하는 우리, 돌아앉는 우리

두 손 끌어다 맞잡게 하실 거죠

소외된 이웃들 따뜻하게 감싸안으려고

뵈지 않는 손길 우리에게 보내주실 거죠

이제는 과로도 심장마비도 교통체증도 없는 세상에 가셨으니

얼마나 바빠지실까 목사님,

우리 문익환 목사님



우리가 이제 늦봄 될게요

목사님께서 윤동주 시인 장준하 선생님 길 가셨듯이

목사님 우리에게 윤동주예요

목사님 우리에게 장준하예요



목사님 열어제낀 그 길 내쳐 우리가 가겠어요

민주주의 완성의 길, 통일 조국의 길

더욱 뚫고 넓혀가겠어요

봄과 여름 사이 우리도 지지 않는

꽃이 되겠어요

풀이 되겠어요

목사님처럼 조국의 흙이 되고

그리하여 역사가 될게요

목사님 남겨주신 眼球 칠천만 겨레가 박고

초롱초롱 살아가겠어요



저기 가고 있는 아이를 보니 거기에 목사님 계세요

가끔 입맛 다시며 싱긋이 웃는



창 밖으로 폐타이어를 두른 다리 잘린 사람이

동전 바구니를 들고 기어갑니다

누가 그의 찬 손을 감싸쥐네요

아 저 손, 목사님 손이에요



들녘의 억새풀 하나 낙엽 한 잎

늘어뜨린 겨울나무 가지들

내리는 저녁 햇살

모두가 목사님 몸짓 아닌 것 없네요



이제 됐군요

우리 모두 당신이 될 것 같네요

목사님 놓아주어도 되겠군요

목사님 안녕히 가세요

목사님 평안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