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고 너는 와야지
나는 네게로 가고 너는 내게로 와야지
내가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리고
길을 떠나는 것은 네게로 가는 일이지
네가 거적데기까지 떨쳐 버리고
길을 떠나는 것은 내게로 오는 일이지
오다 가다 만나는 날
산기슭에서나 행길에서나 주막에서나
이마를 딱 대고 맞부딪는 날
우리는 그 자리에서 홀랑 벗고 알몸이 되는 거지
얼굴을 붉히는 건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지
오히려 자랑스러움 때문이지
그냥 소중한 목숨 때문일 뿐이지
숨막히는 사랑 때문일 뿐이지
38년 묵은 때야 차츰 씻으면 어떠냐
낮이면 청산이 좋아라 햇빛이 좋아라
밤이면 쏟아지는 달빛 별빛으로 흐르는
선들바람 풀벌레 소리도 좋아라
좋아라 좋아라 좋아라
그냥 알몸으로 얼싸안고 뒹구는 거지
뒹굴며 흐느끼며 한맺힌 회포를 푸는 거지
모든 진실의 진실 몸의 진실을
야윈 몸으로나마 확인하는 거지
서로의 몸 속에 다져 넣는 거지
나는 가고 너는 와야지
나는 네게로 가고 너는 내게로 와야지
나는 철조망 넘어 터진 발 끌며 네게로 가고
너는 지뢰밭 지나 절뚝거리며 내게로 와야지
이것 밖에 우리에겐 딴 길이 없으니
관련 기록 | 선무×통일의집 컬래버 전시 ‘나는 가고 너는 와야지’ 전시실 아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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