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사회조성사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재단이 일방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단체들이 신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단과 파트너단체, 배분위원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심사와 운영을 총괄하는 배분위원회는 13명의 위원으로 구성됩니다. 여성운동, 학계, 법률,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며, 단순히 신청서를 검토하는 심사자가 아니라 재단의 배분 방향과 원칙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배분위원회는 재단이 5~10년 단위의 중장기적 '성평등사회조성' 목표를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 그해의 공모 주제와 심사 기준을 함께 논의합니다. 어떤 의제에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 어떤 단체를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재단의 철학이 배분위원회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공모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자유공모사업은 단체들이 스스로 의제를 정하고 신청하는 방식입니다. 재단이 주제를 지정하지 않고, 각 단체가 자신들의 활동 목적에 맞는 사업을 자유롭게 제안합니다. 이것이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가장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단체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기획공모사업은 재단이 시대의 필요를 읽고 먼저 주제를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기획공모는 '여성과 아동 폭력의 예방 및 해결', '신생여성단체 지원', '차세대 여성운동 지원' 등 재단이 특별히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한 분야를 선정하여 별도의 공모를 진행합니다. 자유공모로는 충분히 지원받기 어려운 분야나 단체들을 위한 별도의 통로입니다.
긴급한 여성계 현안에 대응하는 수시지원사업은 연중 어느 때나 신청을 받습니다. 미리 정해진 일정 없이, 사회적으로 긴급한 여성 문제가 발생하면 빠르게 지원 여부를 결정하여 현장에서 필요한 자원을 신속하게 공급합니다. 공모는 통상 11~12월에 신청을 받습니다. 다만 이 시기가 단체 운영 일정와 맞지 않는다는 현장의 의견이 있어, 공모 시기 조정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청서가 접수되면 사무처 적격 심사 → 심사소위 서류심사 → 면접심사의 단계를 거칩니다. 배분의 공정성을 위해 엄격한 심사 절차를 유지하며, 중복 지원을 배제하여 형평성을 확보합니다. 또한 재단은 전체 배분의 30% 이상을 수도권 외 지역에 할당한다는 내부 가이드라인을 두어 지역 단체들의 참여를 보장하고자 합니다.
2014년부터 2025년까지 12년간 평균 선정률은 24.1%였으며, 특히 자유주제 공모사업의 평균 선정률은 18.9%에 그쳤습니다. 신청하는 단체들 중 다섯 중 하나만이 선정되는 치열한 경쟁입니다. 2025년에는 27개 신청 단체 중 9개 단체만 선정되어 신청·선정 단체 수가 모두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선정이 완료되면 재단은 파트너단체들을 한자리에 모아 파트너단체 워크숍을 엽니다. 이 자리는 단순한 오리엔테이션이 아닙니다. 재단과 파트너단체들이 그해 사업의 방향과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의 활동을 소개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자리입니다. 처음 파트너가 된 신생단체들에게는 결과보고서 작성 방법, 회계·세금 처리 등 낯선 행정 절차를 함께 고민하고 안내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업이 시작되면 재단은 파트너단체의 활동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재단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라 단체가 스스로 판단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재단의 원칙입니다. 사업 진행 중에는 월별 활동공유서를 제출하며 진행 상황을 공유합니다. 파트너단체들이 한국여성재단의 사업을 다른 기관의 공모사업과 구별되는 점으로 꼽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평등이 무엇이고 어떤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목적성의 사업.”
— 파트너단체 인터뷰,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성과와 발전방안 연구』 (2026)사업이 마무리되면 파트너단체들은 결과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리고 성과공유회를 통해 선정된 사업의 진행과 결과를 함께 점검합니다. 성과공유회는 단순한 결과 발표 자리가 아니라, 각 단체가 그해 활동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함께 나누는 자리입니다. 파트너단체들이 서로의 활동에서 영감을 얻고, 연대의 끈을 이어가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재단은 이 모든 과정에서 '지원자'가 아닌 '파트너'로 함께합니다. 단체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가는 동료로서 자리하는 것. 그것이 한국여성재단이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