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이야기] ④
여성운동이 원하는 것을 지원한다 — 자유공모사업
한국여성재단
게시일 2026.06.08  | 최종수정일 2026.06.11

성평등사회조성사업 - 자유공모/자유주제

여성운동이 원하는 것을 지원한다 — 자유공모사업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방식은 자유공모사업입니다. 재단이 주제를 미리 정하지 않고, 단체들이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사업을 제안하면 재단이 심사하여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단체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는 것은 현장에 있는 단체들 자신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2002년 처음 정기공모가 시작된 이래 자유공모사업은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중심축이었습니다. 2014년부터 2025년까지 12년간 자유주제 공모사업으로만 총 104개 사업이 지원되었으며, 그 의제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흘러왔습니다. 문화와 일상의 영역에서 성평등 담론을 확산하는 흐름, 노동·정치·정책의 제도 영역에 개입하는 흐름, 그동안 가시화되지 못한 주체와 권리를 의제화하는 흐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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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바꾸고, 의제를 만들다

자유공모사업이 지원한 단체들이 이루어낸 성과 중 하나는 언어를 바꾼 것입니다. 언어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한 말 바꾸기가 아닙니다. 현실을 다르게 보게 하고, 문제를 다르게 정의하게 하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일입니다.

2017년 DSO(Digital Sexualcrime Out)는 '디지털 성범죄 아웃-새단어 프로젝트'를 통해 '몰카'를 '성폭행'으로, '리벤지 포르노'를 '디지털 성범죄'로 바꾸는 작업을 했습니다. 오락이나 관음으로 묵인되던 행위를 성폭력의 언어로 재정의함으로써, 가해의 구조를 가시화하고 피해의 심각성을 사회가 인식하게 만드는 인식론적 전환이었습니다.

2016년 한국여성민우회는 채용 과정의 외모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82개 단위의 '사진 없는 이력서' 사용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2021년에는 AI 기술의 성차별적 구조를 분석하여 국내 최초의 '페미니스트 AI 가이드라인'을 제작했습니다. 15개 키워드, 52개 항목으로 구성된 이 가이드라인은 AI가 만드는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용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기술임을 천명한 것이었습니다.

201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낙태죄 폐지 이후의 입법 공백을 메우는 작업에 착수하면서, 재생산을 자유권·평등권·사회권을 포괄하는 기본권의 언어로 재구성했습니다. 피임할 권리, 임신을 중단할 권리, 임신을 유지할 권리, 안전하게 출산할 권리, 양육을 지원받을 권리가 모두 하나의 권리 체계 안에 놓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낙태'라는 단어가 '재생산권'이라는 언어로 바뀌면서, 문제의 프레임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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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던 사람들을 가시화하다

자유공모사업이 지원한 또 하나의 흐름은, 그동안 여성운동 안에서도 충분히 가시화되지 못했던 사람들을 의제의 중심으로 가져오는 작업이었습니다.

2015년 레주파는 도시에 사는 여성 성소수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들이 영상·사진·라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경험을 지원했습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비온뒤무지개재단의 '권손징악'은 한국 최초의 퀴어·페미니즘 접목 시사정치 토크쇼로, 유튜브라는 반페미니즘 선동의 전장에 직접 뛰어들어 가짜뉴스에 맞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2015년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하면서, 장애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주체적 결정권자임을 선언했습니다. 2023년 대구여성장애인연대는 발달장애여성의 사랑하고 욕망할 권리를 선언하며 섹슈얼리티 권리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함을 알렸습니다.

2016년 조각보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말하기 대회'는 중국·일본·러시아에서 귀환한 동포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차별을 직접 증언하는 자리였습니다. 이주여성을 지원받아야 할 취약 계층으로 보는 시각을 해체하고, 스스로 말하고 기록하고 연대하는 주체임을 증명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2019년 보스톤피플은 비혼 1인 가구 여성들에게 자립에 필요한 실무 정보를 제공하는 '독립생활개론'과 생활동반자법의 사회적 수요를 조사하는 정책 제안 활동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2023년부터 비비사회적협동조합은 중장년 비혼 여성 1인 가구의 노후를 위한 공동체 주택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결혼และ 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그 바깥을 선택한 여성들의 삶을 지원하는 실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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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현장을 기록하고 제도를 바꾸다

여성노동 관련 자유공모사업들은 상담과 지원이라는 현장성을 기반으로, 차별을 기록하고 법과 제도를 바꾸는 정책 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2014년 일다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 여성 30인의 삶과 노동을 기록하여 '열정노동'과 '조직 내 위계' 문제를 공론화했습니다. 2024년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자 보호 조치를 명문화한 성평등 취업규칙 모범안을 개발하여 일반 사업장에 배포하고 고용노동부 표준안 반영을 제안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록에서 출발하여 제도를 바꾸는 변화의 경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유공모사업이 지닌 의미

자유공모사업의 평균 선정률은 18.9%입니다. 신청한 단체 다섯 중 하나만이 선정되는 치열한 경쟁입니다. 그럼에도 단체들이 해마다 신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트너단체들은 한국여성재단의 사업을 다른 기관의 공모사업과 구별되는 점으로 이것을 꼽습니다.

“성평등이 무엇이고 어떤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목적성의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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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들이 자신의 활동에 가장 필요한 사업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고, 그 가치를 설명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는 공모. 그것이 자유공모사업이 20년 넘게 한국 여성운동의 현장을 지탱해온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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