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이야기] ①
시대를 앞선 도전- 모금형 여성주의 공익재단
한국여성재단
게시일 2026.06.09  | 최종수정일 2026.06.11

성평등기금모금 ①

시대를 앞선 도전 — 모금형 여성주의 공익재단

1999년, 한국여성재단의 창립 선배들이 꿈꾼 것은 단순한 비영리 법인의 설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두 개의 험준한 산을 동시에 넘으려는 담대한 서사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주의, 다른 하나는 척박하기 그지없던 기부문화의 토양. 그 거대한 두 장벽을 향해 동시에 싸움을 걸었던 이중삼중의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기부가 불법이던 시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가, 불과 30년 전만 해도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51년 전란 중에 제정된 '기부금품모집 금지법'이 그것입니다. 이 법의 목적은 놀랍게도 '기부금품의 모집을 금지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며 그 생활안정에 기여함'이었습니다. 즉, 국가가 기부를 막는 것이 국민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통제 중심의 논리였습니다.

이 법이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으로 겨우 완화된 것이 1995년이었습니다. 재단이 창립을 준비하던 1999년은 대중모금이 허용된 지 고작 4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기부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전반적으로 낮았고, 가족관계를 벗어난 개인의 자발적 기부란 혈연 중심 가부장제의 대척점에 있는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여성운동 단체들이 국내 자본이 아닌 외국 민간기금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황무지 같던 시대에 한국여성재단의 창립 선배들은 '100만 명이 1만 원씩, 1,000억 원'을 모으겠다는 전무후무한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동전 모으기에서부터 ARS 생방송 모금, 월급 나눔, 유산 나눔, 의료계, 가게 판매수익 나눔, 모금함 놓기, 브로치 제작판매, 국민카드 발행, 콘서트 개최, 여성친화적 기업공동캠페인 등등 비빌 언덕이 되는 일들은 마다한 일 없이 했다.”

— 윤후정 수석위원장, 『딸들에게 희망을: 한국여성재단 10년, 기억과 상상』

여성을 위한 모금이 왜 더 어려웠나

단순히 기부 토양이 척박한 것만이 장벽은 아니었습니다. 모금의 대상이 '여성'이고, 지향하는 목적이 '성평등'이라는 점이 더 큰 산이었습니다. 1990년대 말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은 대중적 공감대를 넓히지 못한 미완의 가치였습니다. 당시의 초기 기부 문화는 주로 가난한 이를 돕는 '자선'과 '구호'의 범위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즉, 직접적인 시혜 대상이 눈에 보여야 지갑이 열리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여성재단이 가고자 한 길은 달랐습니다. 빈곤한 개인을 일시적으로 구제하는 것을 넘어,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왜곡된 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여성운동을 펀딩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구조적 변화를 위해 돈을 내어달라는 요청이었기에, 설립자들은 혹독한 도전을 온몸으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면서 재단 설립 발의자들이 깨달은 것은,
여성을 위한 모금이 또 다른 형태의 여성운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 『여성의 미래를 펀딩하다』, 한국여성재단 20년의 기록 (2020)

모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운동이었습니다. 시민들에게 기부를 권하는 과정 속에서 성평등의 가치를 설득해 내고, 기부하는 행위 그 자체를 성평등 사회를 지지한다는 당당한 정치적 선언으로 바꾸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여성재단이 모금을 정의하는 철학이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모금형 여성주의 공익재단

한국여성재단은 태생부터 다른 재단들과 궤를 달리했습니다. 거대 자산가의 사재로 세워진 개인재단도, 대기업의 자금 출연으로 운영되는 기업재단도, 정부가 예산을 대는 관변재단도 아니었습니다.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여성계와 수많은 시민이 십시일반 힘을 합쳐 만든, 한국의 모든 여성이 주인이자 동시에 수혜자인 특별한 사회적 자산이었습니다.

“개인재단이나 기업재단, 정부출연재단과는 독립성이나 연대성, 개방성, 시민사회성에서 태생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한국여성재단은 한국여성운동사의 빛나는 금자탑이고, 한국여성운동뿐 아니라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이 지키고 키워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 이숙진, 『여성의 미래를 펀딩하다』 (2020)

이 절대적인 주체성과 독립성을 수호하기 위해 재단이 세운 철칙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부 지원 제로(0)'의 원칙입니다.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 제도가 법제화되면서 타협의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재단은 창립 이래 정부로부터의 철저한 재정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을 단 한 번도 흔들지 않았습니다. 국가 권력과 시장 권력의 건강한 감시와 견제라는 시민사회 본연의 비판적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500억을 향한 20년

창립 당시 천명했던 1,000억 원의 원대한 꿈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창립 이후 20년간 한국여성재단이 모금한 총액은 500억 원 이상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중 대다수가 가치에 공감한 기업 후원이며, 시민들의 순수한 피땀이 서린 개인 후원 금액만도 93.4억 원에 달합니다.

20개년 누적 모금액 500억 원 + α
순수 개인 후원금 93.4억 원

단위 NGO들이 수천억 원대 대중모금을 거뜬히 해내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소박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부 자체가 범죄이자 불법이던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성평등을 위한 기부'가 형용모순처럼 배척받던 시대를 지나 이룩한 500억 원은 단순한 화폐의 축적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 선진적 나눔 문화를 가장 선구적으로 제기하고, 올바른 성평등 공익기금의 표준을 정립해 온 눈부신 20년의 투쟁사이자 신뢰의 징표입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대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춤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