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 한국여성재단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모금 캠페인을 세상에 제안했습니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직관적이고 단순했습니다. 당시 재단 이사로 활동하던 장명수 이끔이(이화학당 이사장)는 "한 사람을 부르면, 그 사람이 다른 열 사람을 이끌고 오도록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대중적으로 유행하던 '칭찬 릴레이'의 선한 영향력 구조에서 착안하여, 마침내 '기부릴레이'라는 혁신적인 모금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본 구조는 정교한 체인형 네트워크입니다. 100명의 이끔이가 먼저 기부를 실천하고, 한 달 동안 매일 한 명씩 새로운 주자를 이어 달리게 합니다. 이끔이 한 명이 31명의 주자를 모으면 '완주'가 되며, 100명의 이끔이가 모두 완주하면 이론상 3,100명의 새로운 기부 동반자가 탄생하는 구조입니다.
“성평등 가치의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성평등 모금캠페인에 무리하게 집중하기보다, 성평등 가치에 이미 우호적인 지도층 이끔이들을 통해 한국여성재단에 충성도가 높은 친구와 가족을 늘려가는 인간사슬형 접근을 선택한 것이다.”
— 이숙진, 『여성의 미래를 펀딩하다』 (2020)성평등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낯설고 생소한 가치이던 시절, 생면부지의 대중에게 무작정 기부를 권하는 것보다 이미 두터운 신뢰를 쌓은 관계망 속에서 나눔을 이어가는 방식이 훨씬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재단은 이를 "Fundraising? Friendraising!"이라 명명했습니다.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넘어 재단의 평생 친구와 연대자를 확장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부가 특별한 소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이들이 적은 돈을 모아 성평등 기금에 보태는 열린 철학, 그것이 이 릴레이의 본질이었습니다.
2003년 5월, 역사적인 첫 기부릴레이의 막이 올랐습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과 故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각계의 상징적인 사회지도층들이 이끔이를 자처했고, 33명의 이끔이와 함께 총 1,528명이 동참하여 약 1억 5,366만 원의 기금을 결집했습니다.
기부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던 시절 이뤄낸 이 성과는 전국 여성단체들의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위한 귀중한 재원으로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일보와 공동 주관하여 1면 헤드라인에 '소외계층 돕는 나눔축제로'라는 타이틀로 소개되었으며, SBS 및 CJ홈쇼핑 특별 생방송 모금을 병행하는 등 기성 언론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국 사회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해마다 굳건해졌습니다. 2004년 58명이었던 완주 이끔이는 2009년 81명, 2012년에는 역대 최다인 82명으로 늘어났고, 총 참여자 수 역시 2004년 2,252명에서 2012년 5,077명으로 대폭 성장하며 재단의 독보적인 대표 브랜드로 안착했습니다.
2009년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매칭펀드 방식의 '고사리손기금'을 론칭해 '나눔을 배우는 나눔'의 가치를 확산했으며, 유한킴벌리와 국군간호사관학교 등 주요 기업 및 기관 임직원들이 단체 참여하며 저변을 넓혔습니다. 대망의 10주년을 맞이했던 2012년 발행된 결과보고서의 타이틀 '나눔의 별, 희망의 은하수가 됩니다'처럼, 크고 작은 작은 기부들이 모여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은하수를 완성해 냈습니다.
100인 기부릴레이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자금의 액수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이끔이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권유하고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왜 여성을 위해 기부해야 하는가'라는 성평등 담론이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로 스며들었다는 점입니다. 모금 과정 자체가 곧 가치 확산을 이끄는 소프트웨어적 여성운동이었습니다.
“100인 기부릴레이는 참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이다. 모금의 결과가 모두 성평등 사업에 사용되기 때문에 릴레이에 하나의 연결고리만 되어도 성평등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게 되는 결과다.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면 기쁘게 실천하는 당연한 의무가 기부다.”
— 조흥식 교수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10년 연속 완주 이끔이그러나 지인 중심의 아날로그식 인간사슬 전략은 세월이 흐르며 충성도 높은 초기 이끔이층의 연령 고령화와 신규 이끔이 발굴의 정체라는 확장성의 장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이후 거시적 정치·사회적 여건의 변화도 초기의 우호적인 인프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참여자 수는 증가했으나 총 모금액이 완만하게 정체되는 현상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반증했습니다. 재단은 이 벽을 깨부수기 위해 '디지털 대중모금'이라는 새로운 대전환의 카드를 꺼내 들게 됩니다. 그 역동적인 전환기는 [모금이야기 ④]에서 계속됩니다.
| 연도 | 완주 이끔이 | 총 참여자 | 총 모금액 | 주요 특징 |
|---|---|---|---|---|
| 2003 | 33명 | 1,528명 | 153,663,000원 | 최초 시작, 한국일보 공동주관 |
| 2004 | 58명 | 2,252명 | 101,285,000원 | - |
| 2005 | 45명 | 1,760명 | 65,000,000원 | - |
| 2006 | 42명 | 2,100명 | 130,000,000원 | - |
| 2007 | 64명 | 2,310명 | 108,473,393원 | - |
| 2008 | 69명 | 2,845명 | 119,119,200원 | - |
| 2009 | 81명 | 4,436명 | 156,015,700원 | SBS 모금방송, 고사리손기금 시작 |
| 2010 | 79명 | 4,158명 | 92,814,730원 | - |
| 2011 | 64명 | 3,227명 | 110,118,350원 | 고사리손기금 확대 |
| 2012 | 82명 | 5,077명 | 125,267,480원 | 10주년, 역대 최다 참여 기록 |
| 2013 | 83명 | 5,000명 이상 | 약 125,000,000원 | 4월로 캠페인 일정 변경 |
| 2014 | 97명 | 4,687명 | 135,884,648원 | 청소년 이끔이 3인방 활약 |
| 2015~2021 | 매년 80~100명 | 매년 3,000~5,000명 | 연평균 약 130,000,000원 | 안정적 패러다임 유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