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함께 숨 쉬고 성장한 70년의 발자취, 도화교회 이야기
동네의 오랜 역사를 되짚어볼 때,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종교 시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마을의 기록 보관소가 되곤 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도화동 주민들의 든든한 영적 안식처이자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도화교회'의 역사를 사진으로 만나보려 합니다.
도화교회의 첫걸음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1년 11월 15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를 돌보기 위해 세워진 이 따뜻한 공동체는 도화동 최초의 감리교회이자 미추홀구의 6번째 감리교회로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도화동 140번지(현 998-1번지, 현 청운대학교 청운관 자리)에서 약 2만 마리의 닭을 키우는 양계장 주인이었던 송은면 권사님의 가정집에서 드린 첫 창립 예배가 그 위대한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현재의 도화동 119-16번지 일대로 이전하며 마을과 함께 쉼 없이 성장해 온 도화교회. 오늘 소개할 귀중한 사진과 내용들은 도화교회 신도이신 종광복 님께서 제공해 주신 『도화교회(도화행전) 70년사』 에서 발췌한 것으로, 도화교회 측의 따뜻한 사용 승인을 얻어 미추홀시민아카이브에 뜻깊게 공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옛 도화동의 신앙과 삶의 풍경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1952년 6월 1일, 도화교회 제1예배당 입당예배를 기념하여 찍은 단체 사진입니다. 1952년 제2대 담임자로 파송 받은 정흥운 전도사님(앞에서 첫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부임하여 건축하고 봉헌한 첫 예배당의 모습입니다.
사진 속에는 무려 107명의 인물(그중 남자는 41명)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 왼쪽 처마 끝에 소박하게 매달린 종이 눈에 띕니다.
앞줄 중앙에 검은 안경을 끼고 앉으신 분이 바로 도화교회의 초대 담임자이신 강문호 목사님입니다.
사진 속에는 무려 107명의 인물(그중 남자는 41명)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 왼쪽 처마 끝에 소박하게 매달린 종이 눈에 띕니다.
앞줄 중앙에 검은 안경을 끼고 앉으신 분이 바로 도화교회의 초대 담임자이신 강문호 목사님입니다.
이어지는 사진은 신언희 권사님께서 제공해 주신 제2예배당 봉헌예배 기념사진입니다.
1954년 6월 10일 도화동 143번지를 적산으로 불하받아, 같은 해 10월 10일에 건립한 웅장한 벽돌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앞열 두 번째 줄 가운데 검은 안경을 쓰신 강문호 목사님의 모습이 보이고, 그 주변 중앙 즈음에 안경을 쓰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계신 분이 송은면 권사님입니다.
정성껏 지어 올린 예배당 앞에서 환하게 웃는 교인들의 표정에서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1954년 6월 10일 도화동 143번지를 적산으로 불하받아, 같은 해 10월 10일에 건립한 웅장한 벽돌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앞열 두 번째 줄 가운데 검은 안경을 쓰신 강문호 목사님의 모습이 보이고, 그 주변 중앙 즈음에 안경을 쓰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계신 분이 송은면 권사님입니다.
정성껏 지어 올린 예배당 앞에서 환하게 웃는 교인들의 표정에서 벅찬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종이는 도화교회가 보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주보입니다.
고용봉 목사님이 담임으로 계시던 1971년 5월 2일 자 주보로, 담임 목사님의 부임 시점부터 시작된 주보의 발행 호수가 돋보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주보에 적힌 '전화 2607'이라는 낯선 형식의 전화번호인데요.
당시에는 전화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동네에서 대단한 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당시 교회의 수도와 전화 가설은 고용봉 목사님이, 전기 가설은 강두현 목사님이 애써주셨다는 훈훈한 뒷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고용봉 목사님이 담임으로 계시던 1971년 5월 2일 자 주보로, 담임 목사님의 부임 시점부터 시작된 주보의 발행 호수가 돋보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주보에 적힌 '전화 2607'이라는 낯선 형식의 전화번호인데요.
당시에는 전화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동네에서 대단한 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당시 교회의 수도와 전화 가설은 고용봉 목사님이, 전기 가설은 강두현 목사님이 애써주셨다는 훈훈한 뒷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도화교회는 매년 200명 이상의 새 신자가 몰려올 만큼 크게 부흥했습니다.
예배 공간이 부족해지자 1981년부터 주변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고, 1984년 3월 1일 조주호 담임목사님의 집례 아래 도화동 119-16번지 일대에서 역사적인 네 번째 교회 건물 기공예배를 드렸습니다.
첫 기공식 후 10개월 만인 1984년 12월 20일에 벅찬 입당 예배를 드렸으며, 마침내 1985년 3월 30일 높이 솟은 십자가 탑이 돋보이는 신축 교회가 완공되었습니다.
예배 공간이 부족해지자 1981년부터 주변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고, 1984년 3월 1일 조주호 담임목사님의 집례 아래 도화동 119-16번지 일대에서 역사적인 네 번째 교회 건물 기공예배를 드렸습니다.
첫 기공식 후 10개월 만인 1984년 12월 20일에 벅찬 입당 예배를 드렸으며, 마침내 1985년 3월 30일 높이 솟은 십자가 탑이 돋보이는 신축 교회가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0년대 이후 꾸준한 개축과 증축 과정을 거쳐 오늘날 도화동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 잡은 현재 도화교회의 아름다운 전경입니다.
작은 처마 밑에 종을 달았던 1950년대의 첫 예배당부터
수많은 교인들의 헌신으로 지어 올려진 지금의 성전까지.
도화교회의 70년 발자취는
곧 우리 쑥골마을 주민들이 함께 부대끼며 일궈온 삶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교인들의 헌신으로 지어 올려진 지금의 성전까지.
도화교회의 70년 발자취는
곧 우리 쑥골마을 주민들이 함께 부대끼며 일궈온 삶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