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와 도시빈민의 증가, 열악한 노동환경 등 여러 사회문제도 함께 나타났다. 경제성장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여겨지던 당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과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에 사회가 충분히 대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가톨릭교회 역시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힘든 이들을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활동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민은 사회복지 활동을 전문적으로 준비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1972년,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이문주(李文柱) 신부와 안경렬 신부를 독일로 파견하였다.
두 사제는 독일 카리타스의 지원을 받아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리스도적 사회학과 사회사업을 공부하고, 독일 가톨릭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을 접하였다.
독일 카리타스 본부는 두 사제가 카리타스 전국본부의 ‘사목과 애덕활동(Pastoral und Karitas Abteilung)’ 부서를 중심으로 독일 가톨릭 사회복지활동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복지활동을 살펴볼 기회도 제공하였다.
그 가운데 안경렬 신부는 이후 캐나다 국제연구원에서 협동운동을, 미국 뉴저지에서 조직훈련을 받은 뒤 귀국하였다.
그리고 1976년 5월 24일 ‘서울 카리타스기구 설립 담당사제’로 임명되었다.
서울대교구의 사회복지 활동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조직을 만들기 위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복지회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서울 중구 저동1가 27번지 삼일로변에 있던 화교 신자들을 위한 성당 건물이었다.
안경렬 신부가 화교 신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로 하면서 이곳을 복지회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76년 9월 27일, 이곳에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현판식이 거행되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서울대교구의 사회복지 분야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복음의 기조는 하느님과 이웃 사랑이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구체적인 시대와 환경 안에서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 신앙 안에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할 사명을 띠고 있다. … 선의의 소박한 형제애로부터 우러나는 자선사업만으로는 현대의 인간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 다른 모든 분야처럼 이웃 사랑도 전문화, 능률화, 과학화를 통한 봉사가 필연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 이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공동체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가 아닐 것인가?” - 안경렬 신부, 『나눔』 제1호, 1976. 9. 27.
안경렬 신부는 사회복지를 어느 개인이나 단체, 특정 계층 또는 정부에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야 할 공동의 과제로 바라보았다.
또한 정부의 역할과 함께 자발적인 민간 복지활동이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출범 당시부터 개별적인 자선활동을 넘어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사회복지 활동을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복지회는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두고 정의와 평등, 나눔의 정신으로 사회적 약자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설립 이념으로 삼았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우선 서울대교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여러 복지활동을 파악하고 → 연결하고 → 조정하고 → 장려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교구 밖으로도 협력의 범위를 넓혔다.
국제 카리타스와 주교회의 산하 인성회, 각 교구의 복지회와 사회사목 관련 기구 등 국내외 여러 기관과 협력관계를 맺으며 사회복지 활동의 연대를 확대해 나갔다.
1976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출범은 이처럼 서울대교구의 여러 사회복지 활동을 연결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출발점이었다.
1982년 9월 9일, 서울대교구 총대리 경갑룡(景甲龍) 주교의 권유로 최선웅(崔善雄) 신부가 제2대 회장으로 부임하였다.
최선웅 신부의 부임과 함께 복지회는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기반을 모색하였고, 그 첫 번째 과제로 사회복지법인 설립을 추진하였다.
법인화를 통해 재정 기반을 넓히는 한편, 서울대교구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거나 앞으로 시작될 사회복지사업과 시설을 관계 법령에 따라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준비 끝에 1983년 8월 20일, 가칭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설립 인가 신청 서류를 갖추어 주무관청에 접수하였다.
복지회가 추진한 법인은 특정 시설이나 특정 분야의 사업만을 위한 법인이 아니었다.
서울대교구 내에서 법인격 없이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될 사업에 대하여 관계 법령에 따른 시설 인·허가 등의 법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종합적인 성격의 사회복지법인을 지향하였다.
당시 기록에서는 이 법인이 인가될 경우 한국 천주교에서 처음으로 종합적인 성격을 갖춘 사회복지법인이 될 것으로 보았다.
마침내 1983년 12월 24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는 보건사회부로부터 제602호로 사회복지법인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76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출범한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이어 1984년 1월 13일 서울민사지방법원에 등기번호 제589호로 법인 설립등기를 마쳤다.
이로써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는 1976년 교구의 사회복지 전담기구로 출범한 데 이어, 사회복지법인으로서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법인화는 이후 서울대교구 내 사회복지사업과 시설을 보다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새로운 복지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984. 1. 13. 법인 설립등기
1976년의 출범이 서울대교구의 사회복지 활동을 연결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시작이었다면, 1983년의 법인화는 그 활동을 지속하고 확대해 나갈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과정이었다.
이 기반 위에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는 이후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전개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