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호] ZOOM 1 | 요즘 예능 : 무엇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나
웹진<한류NOW>
작성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게시일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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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미디어산업은 급격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한때 온 가족이 둘러앉아 TV를 본방 사수하던 풍경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개별화된 시청 환경과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이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단순히 주 시청 매체가 TV에서 인터넷과 모바일로 이동한 물리적인 전환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콘텐츠를 접하는 시청자의 소비 방식이 기존 '보편적 공감'에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즉각적으로 보상받는 '카타르시스'로 옮겨갔다는 것, 나아가 달라진 시청자를 겨냥한 콘텐츠 기획과 제작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OTT로 이동한 예능의 권력

한때 예능 프로그램은 지상파의 전유물이었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예능 프로그램을 즐겼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풍경은 사라졌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가족 구성원 각자는 태블릿이나 모바일, 컴퓨터와 같은 자신만의 개인 미디어로, 자신이 보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을 골라서 본다. 부모 세대가 여전히 지상파 혹은 케이블,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본방으로 시청한다면, 자녀 세대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OTT로 프로그램을 선택해 몰아보기를 즐긴다. 최근에는 부모 세대 역시 OTT 시청으로 점점 옮겨가는 추세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1박2일> 시즌1
(출처: 유튜브 'KBS Entertain: 깔깔티비(@kbsentertain_kkalkkal)', 《KBS》)



이러한 변화는 시청률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국민 예능’으로 불렸던 <1박2일>은 초창기(2007~2010년) 최고 시청률이 무려 40%(닐슨 코리아 기준)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현재는 6%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예능만이 아닌 지상파 전반에 나타난 변화다. 2010년대 중반 한국에 본격 진출해 글로벌 OTT 시대를 연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등장 이후, 지상파의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이는 광고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지상파는 주력 플랫폼의 지위가 급격히 흔들리며, 이제는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해 《SBS》가 넷플릭스에 신작 및 구작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한 건 이러한 고민이 드러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간 지상파 3사가 토종 OTT인 웨이브(Wavve)를 통해 콘텐츠를 독점 공급하며 플랫폼 내 영향력을 지키려 노력해 왔지만, 거센 변화의 물결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SBS》의 이탈은 이제 지상파(혹은 케이블, 종편까지)가 글로벌 OTT와의 경쟁에서 전면적 협업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슬로건 ‘넷플릭스브스’로 공식 협업을 선언한 《SBS》
(출처: 유튜브 'Netflix Korea 넷플릭스 코리아', 'SBS Entertainment'
(@NetflixKorea, @SBSenter.official))



지상파 광고 수익의 급격한 축소는 OTT가 제공하는 선택적 시청이라는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간 지상파 콘텐츠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른바 ‘보편적 시청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대표적으로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은 10대부터 60~70대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예능이었다. 반면 OTT에서 방영되는 <흑백요리사>나 <솔로지옥>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특정 취향과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겨냥한다. 광고주로서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모호한 매체보다, 명확한 타깃과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OTT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유튜브는 광고주가 대행사의 매개 없이, 광고주가 원하는 타깃에 맞게 직접 광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렇듯 시청자와 광고가 동시에 이동하면서 예능의 권력이 지상파에서 OTT로 이동하게 된 것은, 어쩌면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2. 공감의 시대에서 카타르시스의 시대로

예능의 권력이 지상파에서 OTT로 이동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이 지향하던 키워드도 달라졌다. 과거 지상파 예능이 황금기를 구가할 때의 키워드가 ‘공감’과 ‘웃음’이었다면, OTT 시대 예능의 키워드는 경쟁, 서바이벌, 리얼리티를 통한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됐다. 이것은 보편적 유대감에서 개별적 쾌감으로 바뀐 현재의 예능 소비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과거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방식은 출연진 간의 끈끈한 유대감과 그들이 겪는 소소한 실패를 통해 형성되는 '내 편' 같은 감각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다수의 시청자가 동시에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보편적 시청 경험’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화된 미디어를 활용하는 OTT 환경에서는 시청자가 각자의 취향에 따라 파편화된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이상 느슨한 유대감이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 취향을 저격하고 강력한 정서적 해방감을 주는 고자극 카타르시스다. 이는 최근 OTT 예능에서 서바이벌 장르가 급부상한 이유다. 

요리사들이 계급을 나눠 치열한 서바이벌을 벌이는 <흑백요리사>, 몸과 몸이 부딪쳐 누가 강한가를 가리는 <피지컬: 100>, 천국도와 지옥도를 나눠 커플이 되면 천국을 맛보지만 선택받지 못하면 지옥을 경험하는 감정의 서바이벌 <솔로지옥>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서바이벌 예능은 승패가 직관적으로 갈리는 광경을 제공하면서, 현실의 결핍을 채워주는 판타지를 통해 고자극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 결핍의 핵심은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대한 갈망에 있다.

<흑백요리사>와 <피지컬: 100>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는 그 경쟁 과정이 투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해당 프로그램들은 학벌이나 혈연, 인맥 같은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장을 떼고,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는 구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현실의 결핍을 채우는 경험을 제공한다. 모든 과정이 카메라 앞에 노출됨으로써 공정한 경쟁으로 인식되는 점도 이러한 몰입을 강화한다. 이는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는가에 따라 대물림되는, 능력의 세습이 은폐된 현실과는 다른 세계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사는 자칫 승자독식을 정당화하고 경쟁 구조를 미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적어도 존재하는 공정함’이라는 판타지에 매료된다. 이는 <최강야구>는 물론이고 <신인감독 김연경>, <극한84>와 같은 스포츠 예능이 각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포츠라는 비교적 공정한 판 위에서, 언더독*의 반란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언더독(underdog):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지는 약자 또는 열세에 놓인 쪽

넷플릭스 간판 K-예능 <흑백요리사>, <피지컬: 아시아>, <솔로지옥 5>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고자극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예능은 사실상 지상파 시절에는 시도 자체가 어려웠다.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엄격한 방송법의 규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OTT 예능은 이러한 통제에서 자유롭다. 보다 과감한 노출과 스킨십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솔로지옥>이나, 치열한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며 때론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피지컬: 100> 같은 프로그램이 가능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규제의 비대칭성은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금기의 영역을 OTT 예능이 사실상 독점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통제 중심의 심의 체계를 자율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3. 도파민 예능의 확산과 그 반작용

선택적 시청은 ‘보고 싶은 것’을 보려는 욕망을 강화한다. 최근 들어 ‘사이다’와 ‘고구마’로 나누어 콘텐츠를 이야기하는 경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사이다 콘텐츠를 더 보고 싶어 하고, 그것이 프로그램에서 구현될 때 ‘도파민 터진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도파민만으로 채우기는 어렵다. 특히 리얼리티 예능의 경우 그 흐름에 제작진이 개입하는 순간 프로그램의 근간인 진정성이 훼손된다. 그럼에도 도파민에 대한 요구가 강해질수록 제작진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흐름에 개입하지는 않되, 편집을 통해 자의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다. 이제 시청자는 더 이상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다리는 고구마가 길어지면 채널은 돌아간다.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숏폼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 짙어졌다. 손가락 하나로 빠르게 소비하고 지나가는 콘텐츠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기승전결의 긴 호흡을 요구하는 예능은 아무리 도파민 터지는 결말을 갖고 있어도 외면된다. 

시청자들의 ‘도파민’ 요구와 더불어 넷플릭스·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들이 신규 구독자 확보가 아닌 기존 구독자 ‘유지’로 정책을 선회하면서, 가볍게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미드폼 예능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도라이버>, <주관식당>, <미친맛집> 같은 예능이나 디즈니+의 <짧아유>, <60분 소개팅> 같은 예능들이 그 사례다. 짧아진 분량은 빠른 전개와 압축적인 스토리, 간결한 캐릭터 관계를 특징으로 하며, 시청자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배속재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현 시청자의 변화를 반영한 편성 전략이다.

하지만 즉각적 보상을 제공하는 도파민 예능은 더 큰 자극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만든다. 말초적인 재미 위주의 소비를 가속화하고, 이것이 리얼리티 예능과 맞물릴 때는 진정성의 훼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고자극을 위한 ‘빌런’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편집 방식은 시청자들이 쉽게 반응하는 단순한 도파민 서사를 만들지만, 출연자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도파민 예능의 확산이 불러온 피로감은, 정반대로 일상에서 ‘틀어놓는’ 가벼운 토크쇼나 일상 관찰 예능, 롱폼 예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반작용을 낳기도 했다. 형식없이 자유롭게 수다떠는 콘셉트의 유튜브 예능 <핑계고>, 나영석 사단이 이끄는 유튜브 ‘채널 십오야’의 예능 프로그램이 주목받는 것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일 만큼 집중하지 않고 볼 수 있는 느슨한 편안함 때문이다. 이렇게 최근 OTT 시대의 예능은 고자극 카타르시스를 지향하는 ‘취향 저격 예능’과 더불어 과거 지상파가 담당했던 ‘느슨한 예능’까지 끌어안는 이중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유튜브 예능을 선보인 <핑계고>와 <풍향고>
(출처: 유튜브 '뜬뜬 DdeunDdeun(@ddeunddeun)')


 

4. K-컬처의 첨병으로서의 K-예능을 위하여

지상파 시절에도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사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가성비 콘텐츠로 꼽혀왔다. 드라마처럼 대규모 투자 없이도 그만큼의 효과를 가져다주는 효자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이는 OTT 시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예능은 타 콘텐츠 대비 훨씬 적은 예산이 투입되지만, 때로 글로벌한 성공을 거두며 콘텐츠 산업 바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흑백요리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흑백요리사>의 글로벌 성공은 불황에 힘겨워하던 요식업계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최근에는 한식 파인다이닝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끌어냈다. 또한 <윤식당>이나 <윤스테이> 같은 K-예능이 현재 해외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K-푸드의 성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저스트 메이크업>, <퍼펙트 글로우>는 물론이고 <보검매직컬> 같은 K-뷰티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은 그저 방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성과를 낸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콘텐츠가 더 이상 방송에만 국한되지 않고 뷰티·푸드와 맞물려 산업과 일상을 바꾸는 시대, 이른바 K-컬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K-뷰티 예능 <저스트 메이크업>과 <퍼펙트 글로우>
(출처: 쿠팡, CJ ENM)


 

 OTT 시대는 새로운 시청 방식이 불러온 변화로 인해 기존 지상파(케이블, 종편 포함)에 위기감을 만들었지만, ‘고자극 카타르시스’에 대한 피로감 또한 점차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상파 예능이 잘 해왔던 공감과 따뜻한 위로의 서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OTT 시대의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기존 지상파 시절의 방식이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는 요구도 늘고 있다. 자극적인 내용과 선 넘는 연출의 유혹, 출연자의 인권 침해 같은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윤리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대가 바뀐 만큼 기존 방송사와 OTT 사이의 규제 형평성을 제고해야 한다. 또한 제작 현장에서의 윤리 가이드라인 역시, 도파민 콘텐츠가 확산하는 현시점에 더 정교하게 보완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시청자 역시 자극적인 콘텐츠 속 도파민의 덫을 벗어나, 서사의 깊이와 진정성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높이기 위해 콘텐츠 리터러시**를 키워나가야 한다.
**콘텐츠 리터러시(content literacy):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의도·맥락·영향을 스스로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

결국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예능은 당장의 고자극만이 아닌 ‘시대의 결핍’을 잡아내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현실이 채워주지 못하는 결핍들을 예능이라는 틀로 가져와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때로는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렇게 힘을 발휘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특성 덕분에, K-컬처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K-콘텐츠는 이제 콘텐츠의 차원을 넘어 K-컬처를 견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예능 프로그램은 보다 적은 예산으로 이를 확산하고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르다. 콘텐츠 업계 전반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는 지금, K-예능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길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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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발행인 박창식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기획·편집 이현지, 김정현
디자인 디자인인트로
발행일 2026년 3월 27일
E-ISSN 2714-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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