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백요리사〉시즌2의 흥행은 K-버라이어티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음을 보여준다. 한국 예능의 국제 경쟁력을 설명하는 핵심은 ‘포맷’이다. 〈복면가왕〉, 〈너의 목소리가 보여〉 등 K-버라이어티는 그동안 해외에서 높은 포맷 수출 성과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해외 시장의 높은 수요에 비해 새롭게 공급할 포맷 상품이 부족해지며, 포맷 수출 상위국 순위에서도 한국이 밀려나는 상황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K-버라이어티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세 가지 검토 사항을 제안한다. 첫째, 포맷 정의에 대한 이해를 통한 명확한 사업 방향성 설정, 둘째, 포맷 보호의 중요성 인식, 셋째, 포맷 사업에 대한 장기적 접근 검토가 필요하다. 결국 K-버라이어티가 지속 가능한 글로벌 IP로 성장하려면 포맷을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B2B 사업으로 이해하고, 산업계의 주도적인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
2025년 말 대한민국에서 시청자와 화제성의 모든 분야를 사로잡은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단연 〈흑백요리사〉 시즌2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출, 편집, 출연자, 화제성, 규모, 마무리 등 K-버라이어티(혹은 K-예능)의 모든 측면에서 최고 수준의 완성도와 성과를 보여주었다. 방영 기간 내내 국내에서는 시청량과 화제성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켰으며, 해외에서도 비영어권 TV 쇼 부문 2주 연속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그간 한국 예능은 드라마 장르와 달리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많았다. 드라마는 회를 거듭하며 캐릭터가 발전하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를 갖지만, 예능은 ‘버라이어티’라는 이름 그대로 구성이 다양하고 극본 중심의 흐름을 만들기 어렵다. 여기에 언어와 문화의 장벽까지 더해져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이하 OTT 플랫폼)에서 나타나는 한국 예능, 즉 K-버라이어티 콘텐츠의 성과는 비드라마 분야 역시 충분한 국제 경쟁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국제 경쟁력을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영역이 바로 ‘포맷(format)’이다.
그동안 한국 포맷은 해외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해 왔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해외에서 가장 많이 구매되고 현지화된 포맷 1위와 2위는 《MBC》의 〈복면가왕〉과 CJ ENM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였다. 2020년대 초 팬데믹으로 해외에서 수많은 포맷 제작이 중단되는 동안에도 한국 포맷은 꾸준히 현지화가 진행될 만큼 높은 인기를 유지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졌다.

<복면가왕>의 포맷으로 제작된 미국의 <더 마스크드 싱어(The Masked Singer)>
(출처: 《FOX》, <더 마스크드 싱어(The Masked Singer)> 영상 캡처)
그러나 최근 들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포맷에 대한 해외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해외 구매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상품이 부족한 상황이다. 글로벌 콘텐츠 리서치사 ‘K7 Media’가 매년 발간하는 포맷 산업 보고서 「24-25 Tracking the Giants: The Top Travelling Format」에서는 포맷 수출 상위 10개국에서 대한민국이 제외되는 결과가 나왔다. 세계 1·2위의 포맷 판매작이 존재하고 글로벌 시청 순위 1위 콘텐츠들이 성과를 올리며 K-버라이어티의 경쟁력이 주목받는 시점임을 고려하면, 이는 이례적인 결과로 평가된다.
포맷의 정의에 대해 일반적으로 ‘프로그램의 차별화된 아이디어, 장치 또는 형식’으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글로벌 생태계가 형성된 포맷산업은 이러한 정의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 세계 최대 포맷 산업 커뮤니티이자 세계 포맷인증보호협회인 ‘FRAPA(Format Recognition and Protection Association)’는 포맷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첫째, 포맷은 기존의 IP(픽션, 논픽션, 노래, 영화 등)를 반복적으로 재구현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독특하고 독창적인 가이드를 담은 자산으로 전환하는 ‘행위’다. 이러한 점에서 포맷은 동사(verb)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포맷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지역, 미디어, 플랫폼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안내하는 특정 유형의 지적 재산이라는 점에서 명사(noun)의 개념이기도 하다. FRAPA의 이 정의는 오늘날 전 세계 산업계와 학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정의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K-버라이어티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글로벌 IP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 정의가 함의하는 바를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포맷인증보호협회(FRAPA, Format Recognition and Protection Association) 로고
(출처: FRAPA 홈페이지)
이 정의에서 볼 수 있듯, 포맷은 단순히 ‘아이디어, 장치 또는 형식’으로 단정할 수 있는 개념을 넘어선다. 정리하면 포맷은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갖추고, 그 아이디어를 잘 반영할 수 있는 구성 또는 형식을 포함하며, 이를 방송용 프로그램으로 성공적으로 구현한 제작 노하우와 성공 요소의 집합체를 지적 재산 상품으로 만든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포맷이 단순한 아이디어나 형식, 장치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과거 한국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서 높은 관심을 모았던 중국향 포맷 사업이 얼마나 위험하고 제한적인 모델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당시 사업 방식은 IP 라이선스 계약 없이 한국 제작 인력을 현지에 파견하고, 현지 제작진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히트 프로그램의 제작 노하우를 사실상 이전하는 형태였다. 2017년 이전까지 한국 포맷 산업은 글로벌이 아닌 특정 지역에 한정된 사업이었고, 그 규모와 빠른 현금 매출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뛰어들었다.
당시 현업에서는 포맷을 단지 아이디어 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보호하기 어렵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웃 국가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부산을 방문해 방송 화면을 수신했다는 무용담을 떠올리며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시각도 존재했다. 해외 포맷을 수입해 현지화 제작을 시도한 경험이 없음에도 국내에서처럼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분야에서도 해외에서 대규모 현금 매출이 발생하자 포맷에 대한 정확한 접근은 더 축소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포맷 산업은 팬데믹 기간에도 높은 성과와 경쟁력을 보여주었음에도, 빠른 현금 매출의 규모 앞에서 국내 사업자들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K-버라이어티가 포맷 비즈니스로 진화해 지속 가능한 글로벌 IP 산업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포맷의 정의와 사업 방향성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론에서 언급한 〈흑백요리사〉 시즌2는 방영 수개월 전에도 크게 주목받았다. 그 이유는 중국에서 방영한 〈이판펑션(饭封神)〉 때문이다. 〈이판펑션〉의 기획·구성·진행·연출은 〈흑백요리사〉 시즌1과 유사성 시비, 즉 ‘표절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에는 유명 셰프와 무명 셰프가 경쟁하는 콘셉트, 출연한 한국 중식 셰프의 ‘빠스 퍼포먼스*’, ‘편의점 식재료 미션’, 밤 티라미수와 유사한 ‘밤 크림 케이크’ 등 여러 요소에서 유사성이 드러난 것이 사실이다. 한편 〈흑백요리사〉와 〈이판펑션〉 사례 외에도, 그동안 중국의 신규 프로그램들이 한국의 인기 프로그램들과 유사성 논란을 초래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 빠스 퍼포먼스: 설탕을 고온에서 녹여 만든 시럽을 재료에 입힌 뒤, 물에 담가 겉면을 순간적으로 굳히는 중식 조리 기법으로, 바삭한 식감과 실처럼 늘어나는 비주얼을 강조한 연출

〈이판펑션(饭封神)〉 속 ‘빠스 퍼포먼스’ 영상을 리뷰하는 정지선 셰프
(출처: 유튜브 정지선의 칼있스마(@knifejisun))

밤 티라미수와 유사한 〈이판펑션(饭封神)〉 속 ‘밤 크림 케이크’
(출처: 텐센트 비디오(Tencent Video))
필자는 ‘표절'이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 FRAPA 역시 ‘표절’이라는 용어보다는 ‘유사함의 정도(Degree of Similarity)’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며,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국적의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유사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한다. 만약 원작과 비교 대상이 된 프로그램의 유사성 수치가 70%를 넘을 때는 표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제출된 분석 자료는 법적 다툼에서 공정 경쟁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표절 여부를 떠나 프로그램 간 유사성 시비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초래한다.
1) 유사성 시비가 있는 작품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원작 프로그램이 방송으로 노출된 결과(겉모습)만을 보고 제작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상용화와 현지화를 이끄는 핵심 노하우를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유사성 시비가 있는 작품은 해당 국가의 문화적 역량과 창의적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필자가 한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함께 패널로 참여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방송·플랫폼 사업자 임원이 중국 프로그램의 〈흑백요리사〉 표절 논란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물은 적이 있다. 그때 필자는 “표절 여부를 떠나, 해당 프로그램이 보인 특정 장면과 연출, 그리고 요리에 대한 유사성 시비는 그 나라가 지닌 고유한 음식 문화와 셰프들의 역량이 지닌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3) 유사성 시비가 있는 작품은 글로벌 IP로 정착할 수 없다. 전 세계 어느 사업자도 독창성을 확보하지 못한 IP를 구매하지 않는다.
4) 유사성 시비가 있는 작품은 그 창작과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우려가 있다. 대부분의 제작 스태프는 자신이 참여한 프로그램에 유사성 시비의 소지가 있는지 인지하기 어렵고,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유사성 시비가 불거질 경우, 스태프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해당 프로그램은 그들의 제작 이력과 경력에 오점으로 남게 된다.
해외에서 비드라마 콘텐츠의 포맷 사업은 드라마 포맷(리메이크)이나 비드라마 완제품 유통에 비해 더 큰 영향력과 산업 규모를 지니고 있다. 특히 비드라마 콘텐츠 IP 비즈니스에서 포맷은 지속적인 라이선스 수익 창출과 높은 브랜드 가치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포맷은 매년 라이선스를 갱신해야 하므로, 수출되어 현지화되는 국가가 많을수록, 또 현지화 성공률이 높을수록 부가 수익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런데도 포맷 사업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는 사업 전문성과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맷을 단순한 프로그램 아이디어 정도로만 여기고 사업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단기적인 매출 증대 수단으로 접근할 경우 글로벌 IP로서의 가치를 확보하기 어렵다. 포맷은 해외 소비자가 아니라 해외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 산업으로서, 네트워크 중심의 비즈니스다. 또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공 노하우를 학습해 자국의 버전에 맞게 재개발·재제작해야 하므로, 계약 이후 최소 1년 이상의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포맷 사업은 전문성과 장기적 관점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혹자는 지금 당장의 생존을 위한 먹거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포맷 사업은 공동제작이 아니면 진행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모든 프로그램에 거액의 제작비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IP를 무조건 이양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우리의 창작 역량이 지닌 기회를 사업화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생존에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되묻고 싶다. 서론으로 돌아가 보면, 현재 우리 포맷 산업의 시급한 문제는 상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과거 중국향 공동제작 방식은 다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콘텐츠 IP가 만들어낸 글로벌 성과는 반드시 국내 제작 생태계로 재유입되어야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한국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창작 역량과 제작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포맷은 K-버라이어티가 지속 가능한 글로벌 IP로 정착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사업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고, IP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2009년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글로벌 포맷 사업’이라는 가능성을 제안한 곳은 국내 산업계가 아니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금까지도 그 산업에 대한 지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지원이 이전보다 몇 배로 확대되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노력이 중단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산업계가 직접 그 기회를 찾고 그 가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참고문헌
FRAPA (2019). Definition of Format, URL: https://frapa.org/about-us/
손태영 (2024).『K-포맷 바이블』. 서울: 한울아카데미.
조영신 (2025).『애프터 넷플릭스』. 경기(파주): 21세기북스.
이성민 (2025).『모든 것이 콘텐츠다』. 서울: 좋은습관연구소.
김아영 (2025).『넷플릭스 딜레마』. 서울: 현실문화.
K7 Media (2025). 『24-25 Tracking the Giants: The Top Travelling Formats』. URL. https://k7.media/what-you-get/industry-reports/
Vitrina AI (2025). “TV Formats in English: Acquisition Leads' Guide 2025”, URL. https://vitrina.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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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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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디자인인트로
발행일 2026년 3월 27일
E-ISSN 2714-0431
